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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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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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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3일 16시 14분 등록

떠난 자리  

 

아무도 없는 산길을 혼자 걷다 말고 멈추어 서 보라. 눈을 감아야 한다. 귀를 기울인다.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들린다. 이 세계가 감추어 둔 적막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귀청을 때리며 윙 하는 고요의 소리가 들린다. 마치 중력파가 나를 스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지구의 자전 소리 같기도 하다. 꼼짝 않고 멈추어 서면 내 주위의 정적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적막으로 바뀌는데 그때의 적막은 소리의 역치를 넘어선 것들이다. 그것은 혼자일 때라야 들린다. 혼자인 자신을 마주할 때 들리는 소리다. 깊은 밤입을 꼭 다문 채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방에서 무릎을 감싸고 앉아 있으면 들린다. 고독이라는 게 데시벨로 전환되면 나올 법한 소리다. 외로움을 마지막으로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라오스 이야기를 하며 외롭다고 징징대면 안 되는 것이었다. 독자들을 위로하지 못할 망정 위로 받아선 안 되는 일이었다. 끝으로 딱 한번 징징거림을 허락해 주신다면 다신 안 그러겠다 

 

때는 가족과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전의 일이다. 아이들도 아내도 한국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면서까지 와야 할 나라가 어떤지, 과연 살만 한 지 미리 보기를 원했다. 4일 정도 짧은 일정으로 라오스를 다니러 온 적이 있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좋은 숙소를 구해야 한다. 호텔을 예약하러 갔더니 군인이 총구를 드러내고 두 번의 몸수색 끝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침 그곳이 미국 대통령이 국빈방문에 묵는 호텔이었다. 그러려니, 기꺼이 참았다. 이보다 더한 굴욕도 참을 수 있다. 호텔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넓은 수영장에 아들이 기뻐했고 참파 꽃을 좋아하는 아내는 그 꽃으로 둘러싸인 이 곳을 좋아했다. 천지 모르고 뛰어 다니던 딸은 말해 무엇하리. 손가락, 발가락은 왜 다섯 개야묻는 천진한 아이를 숙소에 두고 출근 길에 나섰다. 그건 아빠도 참 궁금하다고 말했고 아이와 헤어져 사무실에 와서도 궁금했다오랜만에 만난 가족을 두고 출근해야 하는 건 잔인하다. 아이들과 아내는 내 퇴근 시간에 맞춰 나를 보기 위해 툭툭이(삼발 오토바이)를 타고 또 낯선 길을 걸어 내가 있는 곳까지 왔다. 오는 중에 곡절을 겪었는지 땀에 흠뻑 젖었지만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다음 날 방비엥 (수도 비엔티안에서 차로 3시간 떨어진 여행지) 으로 향했다. 카약킹, 튜빙, 동굴탐험을 차례로 했고 미끄러운 진흙 위를 뒤뚱뒤뚱 다녔다. 붉은 흙을 얼굴에 묻히고 벽에 새기며 놀았다. 블루라군에서 차가운 물 속으로 거침없이 다이빙 했고 구경하던 모든 이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다시 돌아온 비엔티안에서 아름답게 떨어지는 저녁 노을을 보고는 곧 바로 메콩 강변으로 달렸다. 아쉬운 비아라오 (Beer LAO) 한 잔에 떨어지는 주황색 거대한 태양이 슬프다. 여행은 꿈같이 흘렀다나흘이 이리도 짧았더냐. 즐겁게 웃는 아이들은 곧 떠나게 될 테지. 그날 밤, 아쉬움에 비워버린 소주, 맛 나던 아내의 부침개, 김치와 멸치무침. 사소한 먹거리가 눈물 나게 맛나는 양식이 되어 삶은 이리도 소중하다 일깨웠다. 잠에서 깨기 싫은 날, 가족이 돌아가는 날 아침이다. 억지로 억지로 일어나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를 하고 나오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딸, 이 아이들을 보내고 나는 견딜 수 있을까. 점심시간에 잠시 나와 숙소에서 곧 떠날 가족들과 함께 먹는 밤, 흰 쌀밥. 아내가 정성껏 그렇지 정성껏이란 말은 이런 경우에 쓰여야 한다. 아주 먼 나라에서 회사를 다니는 남편을 보러 왔고 남편이 점심을 먹으로 숙소에 왔을 때 그 남편을 생각하며 지은 밥. 정성껏 만들어 낸 밥을 방 바닥에 펼쳐 놓고 네 식구가 둘러 앉아 맛나게도 먹었다. 나는 세 그릇을 비웠고 좀처럼 많이 먹지 못하는 딸도 밥을 또 달라며 아우성이다. 제 자식이 밥 달라는 소리, 이것 보다 듣기 좋은 소리가 있을까 

 

그날 밤에 아내와 아이들을 한국으로 보냈다. 기약할 수 없는 어느 날에 다시 보자고 했다. 무거운 마음을 어찌해야 할 지 나는 모른다. 그들도 나만큼 무거운 걸음으로 공항을 빠져 나갔다. 손 흔드는 아이들 표정, 끝까지 점으로 보일 때까지 흔들던 조막손을 볼 수 없을 때까지 지켜봤다. 아내는 슬픔과 아쉬움, 처연함과 그리움, 외로움이 한데 뒤 섞인 표정이었고 끝내 내 눈을 바로 쳐다 보지 못했다.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지만 가로막힌 출국 심사대가 원망스럽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가려졌다가 보였고 다시 가려졌다. 출국장 안으로 보내고도 한참을 물끄러미 섰다가 돌아온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숙소로 돌아오니 그네들이 남겨두고 간 목소리만 남아 고막을 때린다. 딸이 그린 그림을 쓰레기통을 뒤져 건져 낸 다음 책상 위에 바르게 펴서 올려 놓는다. 아들이 그린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 그림에 앞이 흐려지며 털썩 주저 앉았다. 세탁기에 다 돌아간 빨래를 꺼내니 아내가 입던 치마가 보이고 정성스레 털어 빨래 건조대에 걸었다. 아내의 화장품이 냉장고에 있고 편하게 입던 티가 여전히 남아 있고 칫솔도 남아 있다. 어느 강심장이 슬픔을 억누를 수 있을까. 혼자 통곡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래 외로움, 우리가 외로움을 발설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짊어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 외로움조차 이리도 받아내기가 힘이 든다. 외롭다 외롭다 떠들면 그 감정을 받아주며 인간적인 예의를 차릴 감정적 여유가 우리에겐 없는 것이다. 네 외로움이 들어 올 마음 자리가 없고 내 외로움을 나눌 여유 자리가 없는 것이다. 모두 외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로움은 홀로 삭혀야 하는 것이다. 홀로 삭히는 외로움을 감당하는 자들은 발랄하고 활기찬 일상의 끝머리에 침묵의 그늘이 보인다. 외로움의 그늘은 숨길 수 없다. 그들은 또 우리는 밤마다, 혼자일 때마다 귀청을 때리는 외로움에 난청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외롭다 느끼는 자들아, 그러나 이것 하나는 기억해야 한다. 외롭지 않은 인간은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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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08:10:33 *.111.17.93

외로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오랜만에 짧게 함께 한 가족을 떠나보내고 그리움에 외로움에 사무치는 작가님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작가이면서 화가인 김정운 씨의 "더 외로워야 덜 외롭다"라는 책 제목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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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5 06:33:48 *.144.57.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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