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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3일 22시 32분 등록


당신이 춤을 잘 추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서 춤을 춰라.

                                                                                          – 데이브 베리

 

Happy funny dancing.png

출처: http://quotespictures.com/nobody-cares-if-you-cant-dance-well-just-get-up-and-dance/

 

어렸을 때 가장 부러웠던 친구는 누구였나요? 저는 '수미'라는 친구였습니다. 구불구불한 긴 머리에 하얀 얼굴, 그리고 커다란 눈을 가진 수미는 마치 인형 같았습니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학교가 끝나고 함께 집에 가곤 했던 친구는 언젠가부터 혼자 가라고 했습니다. 친구를 데리러 온 엄마와 같이 벌레를 배우러 간다고 하면서요. ‘벌레를 뭐하러 배우나?’ 이상하긴 했지만 그냥 혼자 집에 갔습니다.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놀러갔더니 거실 벽에 예쁜 날개옷을 입고 화장을 예쁘게 한 친구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는데 친구는 친절하게도 날개옷을 가져다 보여줬습니다. 그전까지 방과 후에 배우러 다닌다고 생각했던 벌레는 바로 발레였습니다. 그 전에 발레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터라 제 귀에는 벌레로 들렸었나 봅니다. 부러워하는 저를 보면서 그 아이는 너도 같이 하자며 직접 몇 가지 동작도 보여줬는데요. 정말 부럽고 샘이 났지만 발레를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그날 집에 돌아가서 발레를 하고 싶다는 말도 못 꺼냈습니다. 말을 해도 안 시켜줄 것 같았습니다. 그보다 먼저 너 같은 애가 무슨발레는 수미처럼 인형같이 예쁜 애만 하는 거야라는 열살 짜리 꼬마의 혹독한 자기검열 때문이었지요.

이후 학예회나 발표회 등에서 발레 공연을 몇 번 봤는데요. 하늘하늘한 발레복을 입고 예쁘게 춤을 추는 아이들은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그 아이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부러웠지만 한편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나는 할 수 없는 것을 안 한 것 뿐이었으니까요.

 

중학생이 되자 체육 시간 외에도 1주일에 1~2시간씩 무용시간이 있었습니다. 첫 무용시간,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신 무용 선생님은 역시나 인형처럼 예쁜 분이었습니다. 수업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배우게 될 발레 동작 하나만 보여줬는데도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 였지요. 날이 따뜻해지면서 무용실에서 실기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드디어 나도 발레를 배운다는 생각에 들떴던 것 같습니다. 발레리나처럼 토슈즈를 신는 건 아니었지만 나름 연습용 슈즈를 신고 바를 잡고 다리를 올려봤습니다. 우아한 발레리나를 그리며하지만 거울 속에 제 모습은 엉거주춤, 우스꽝스럽기만 했습니다. 누가 볼까 얼른 다리를 내리고 반 아이들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 5년 넘게 무용 수업을 했는데도 별다른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무용은 생각보다 재미없었나 봅니다. 아니 역시 이번에도 발레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 굳게 믿고 제대로 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할 수 있는 것, 없을 것 같은 것들을 스스로 나누고, 못 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예 시도도 안 했더랬습니다. 특히 춤이나 운동처럼 재능이 전혀 없다고 생각 남들 앞에 보여줘야 하는 것들 말이지요. 잘 못하면 부끄럽고 망신스러우니까요. 그러느라 잘 하는 건 책읽기와 글쓰기 밖에 없었습니다.

 

바보야 문제는 춤이 아니야

춤을 못 춘다고 해도 크게 불편할 건 없었습니다. 소풍이나 축제 때 반 대표로 무대에서 춤을 추는 아이들을 보면 다시 부러움이 솟았지만, 그런 날들은 일년에 몇 번 안 됐으니까요. 오히려 춤을 잘 추는 아이들을 선생님들은 요주의 인물로 꼽고 감시의 눈길을 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춤만이 아니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언젠가부터 글쓰기가 싫어졌습니다. 초등학생때는 온갖 글쓰기 대회에 나가서 늘 상을 받을 정도로 글쓰기 만큼은 자신 있었는데요. 이후 학교 공부에 집중하게 되면서 몇 년간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간 후 갑자기 글을 쓰려니 글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선배들이나 친구들이 쓴 글을 읽으면 너무나 멋있고 훌륭해 보였습니다. 그런 멋진 글을 쓰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용기를 내 써봤지만 그냥 찢어 버렸습니다. ‘그런 못난 글을 누군가 읽게 놔두겠다고…? 사람들이 읽고 비웃을 걸!’이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10년쯤 전에 내 안의 욕망을 가로 막았던 자기검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이제 저는 그나마 잘했던 글쓰기마저 잘 할 수 없이 자기검열의 늪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은 이런 자기검열, 내면의 속박된 자아를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저서 <신화와 인생>에서 그는 이 용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삶에서 삶을 재창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춤은 커녕 글도 못 쓰고, 어떠한 새로운 도전도 못하며 보냈던 20. 저는 마치 용이 지키는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처럼 살았습니다. 저는 어떻게 용이 지키던 감옥을 탈출할 수 있었을까요? 용과의 싸움은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이번주도 건강한 한 주 보내세요.

 



참고문헌

<신화와 인생: A Joseph Campbell Companion: Reflections on the Art of Living> 조셉 캠벨 저, 박중서 역, 갈라파고스, 2009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1. [출간소식김글리 모험 에세이 『인생모험』

그녀의 맵짠 글을 다시 볼 수 있어서 기쁩니다동태눈을 한 사람에겐 두 눈을 반짝거리게 하고 번아웃에 지친 삶을 길바닥에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사람에겐 빛나는 딴짓으로 인도하는 붉은 책이 드디어 나왔습니다출간 과정 또한 신선해서 일반 독자들의 펀딩이 진가를 확인하게 했습니다이대로 살아도 괜찮을 걸까? 5개의 질문과 20년의 방황마침내 찾아내고야 만 진정한 나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김글리 연구원의 진짜 나를 만나는 특별한 여정으로 초대합니다:

http://www.bhgoo.com/2011/858837


2. [모집] 1인회사연구소 8기 연구원 모집

1인회사 연구소 & 유로 에니어그램 연구소 수희향 대표가 <1인회사 연구소 8기 연구원>을 모집합니다지난 7년간 연구소를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실질적인 프로그램으로 거듭난 <8기 연구원 과정>은 자신의 뿌리 기질을 찾아 1인 지식기업가로의 전환을 모색합니다콘텐츠 생산자가 되기 위한 책읽기를 마스터하여 진짜 1인 지식기업가로 전환을 이루고자 하시는 분들의 참여 기다립니다book@bookcinema.net 으로 프로그램 참여 및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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