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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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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4일 09시 57분 등록

오롯이 좌절할 필요도 있다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EBN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화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던 말이죠.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딸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자, 아버지는 딸이 좌절하지 않도록 뒷바라지를 합니다. 결국 취업까지 관여하는데, 나중에 이를 안 딸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좌절해야 한다면 저 혼자서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른이잖아요. 아버지가 매번 이렇게 제 삶에 끼어들어서 좌절까지도 대신 막아주는거 싫습니다."

 

이 대사를 듣고 자연스레 부모님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잔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요. 밥만 제때 먹으면 만고 땡이었습니다. 딱히 공부하란 말씀도 안하셨고, TV를 많이 보지 말라는 말씀은 많이하셨네요. 아무튼 뭘 하든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으셨고, 거의 모든 선택을 제가 직접 하게 두셨습니다. 덕분에 어느 고등학교를 가고, 어느 대학을 갈지, 여행을 갈지 말지, 일을 할지 그만둘지 등 인생의 모든 결정을 직접 했습니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오롯이 행할 수 있는 특권은 누렸지만, 덕분에 저의 20대는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일에서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뭘 잘하는지 도통 몰랐기 때문에 20개가 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10개가 넘는 직업을 전전하며 직접 경험하고 배워야 했습니다. 가장 길게 일했던 건 2년 정도, 가장 짧게 일한 건 3일 정도였로 커리어가 아주 난잡했죠


30대 초반까지 수없는 실패를 거듭하며 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채로 보내면서, 많이 좌절했는데요.  

그런 상황에서도 잘 한게 하나 있다면, 경험하며 발견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모두 기록했다는 겁니다. 무엇을 못하고 무엇을 잘하는지를 돌아보면서, 내가 어떤 식으로 일할 때 성과를 잘 내는지, 어떤 종류의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언제 힘이 나는지, 뭘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무얼 할 때 힘이 빠지고 잘 안되는지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기록해갔습니다


그게 10, 20년 쌓이니 실수의 연속이라 생각했던 궤적에 어떤 흔적들이 남기 시작했고, 이후 일과 라이프스타일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그만둬야 하는지 혹은 절대 그만두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은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말은 들어야 하고 어떤 말은 흘려도 되는지, 무엇을 참고해야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콩나무가 될 것인가 콩나물이 될 것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실수와 실패가 없었다면,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수하면서 밤잠 이루지 못하고 곱씹었던 그 시간들이 무엇이 내것이고 무엇이 내것이 아닌지를 알려주었거든요


무엇보다 저는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기획하고 실행하는 자유와 자율을 매우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권한을 가지고 직접 일하는 방식을 정하고 의사결정할 때 가장 힘이 납니다. 그런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조직에 소속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싶은대로 하는 것입니다. 조직에서 일을 할 때 많이 좌절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에겐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하고 기획하고 책임지고 실행하는 프리랜서라는 방식이 매우 어울리는 방식이죠.

 

뇌는 실수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합니다. 실수가 중요한 이유죠. 특히 실패 이후의 마인드가 매우 중요한데요. 그대로 좌절해버리면 뇌는 실패를 회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실수나 실패를 하더라도 이를 통해 배울 게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뇌는 그를 통해 뭔가를 찾아냅니다. "긍정적으로 살아라"고 말하는게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정서적으로만 좋은게 아니라 뇌는 긍정적일 때 가장 잘 배우기 때문이죠. 우리 뇌는 기본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뭔가 즐겁고, 궁금하고 알고 싶을 때 그를 받아들이고 확장해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실패하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뇌는 배우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한창 실패하던 20대에는 부모님의 무신경을 좀 원망했었습니다. 너무 방임해서 내가 이런 좌절을 겪는구나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참 감사합니다. 제가 오롯이 실수하고 실패하도록 놔두셔서요. 모든 경험을 하도록 놔두셔서요.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경험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남에게 물으면서 살아가게 될 테니까요. 많은 부모님들이 귀한 자녀들이 실패하거나 실수하지 않길 바랍니다. 하지만 가끔 잊어버리는 게 있습니다. 그렇게 아픈 실수와 실패가 실은 자녀들을 가장 단단하게 만들어줄 갑옷이 된다는 사실을요

정채봉 시인이 쓴 <콩씨네 자녀교육> 시로 이번 글을 마무리합니다.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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