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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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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0일 17시 55분 등록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리스의 미코노스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썼다. 그는 그 작품으로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사람들은 미코노스에 가게 되면 그 사실을 떠올린다. 그는 여행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산문집에서 일본에 있으면서 관계를 소홀히 하면 욕을 먹지만 멀리 떨어져있으면 그것이 경감된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으니 그는 자기의 기질에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중진소설가 김영하, 김연수도 여행을 자주 한다. 김영하는 위대한 개츠비의 번역을 붙잡은지 오래 되었는데 영 진전이 없다가 뉴욕에 체류하게 되면서 바짝 엄두가 나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작품의 배경이 된 곳에 머물다보니 감흥이 고조되었던 것이다. 김연수도 겨우 이것뿐인가 질문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할 권리라는 책을 썼을 정도이다. 그들은 소설만 안 쓴다면 소설가도 꽤 괜찮은 직업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김영하의 수필에서 깊은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그는 갑작스럽게 식물인간이 되어 온 몸이 마비된 <잠수복과 나비>의 저자를 거론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저자는 유일하게 감각이 남아있는 왼쪽 눈꺼풀을 움직이는 것을 신호화하여 13개월만에 <잠수복과 나비>를 쓴 뒤 사망했다. 그는 초인적인 의지로 최악의 조건에서 책을 쓰는 투지를 보여주었지만, 그러나 13개월 만에 책을 쓰는 것이 결코 느린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영하 자신은 일 년 동안 단 몇 줄도 쓰지 못한 적도 많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과 한 자리에서 거론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작은 점방을 운영하는 글쓰기코치지만 그게 어떤 상황인지는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 있다는 것은 삶에 허락된, 흔치않은 축복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은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김영하나 김연수 둘 다, 자기가 보려고 조금 긴 글을 썼는데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사서 읽어서 기절할 만큼 놀랐다고 하거니와, 때로 멋모르고 열정으로 쓰는 글이 독자의 심장을 관통한다. 그러나 글을 오래 쓰다 보면 이제는 에 대해서도 알고, 방어할 것이 많아져, 토해내는 즐거움보다는 완성에 대한 부담으로 초조해진다. 이름에 대한 책임감도 생길 것이고, 무엇보다 진솔한 경험도 딸릴 것이다. 바로 여기, 보통사람이 겪는 체험에는 한계가 있다. 비슷한 일을 반복할 때는 감흥도 판박이가 되어간다. 글쓰기는 감흥의 산물인데 더이상 나올 것이 없으면 최악의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여행을 한다. 한 자리에서 거론하기 거듭 민망하지만^^ 나도 같은 이유로 여행을 한다.


새로운 체험은 새로운 감흥을 불러온다. 생애의 처음 사랑이  처음이라는 이유 때문에 엄청난 아우라를 지니는 것처럼, 낯설거나 다른 체험에 부딪히는 것은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다. 더구나 반복에서 오는 천편일률을 혐오하는 성격이라면 새로움에 대한 갈구는 더욱 커진다. 그래서 보들레르도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를 외쳤을 것이다.


나도 누구못지 않게 반복을 싫어하는 기질을 타고났다. 여행을 다니며 3박이나 5박을 하는 숙소를 내 집이라 여긴다. 심지어 크루즈에서 기항지에 내렸다가 돌아오며 불켜진 배를 바라보았을 때 가슴가득 안온한 기운이 퍼지는 것을 느꼈다. 물 위에 뜬 집, 나의 오두막(cabin)이 한없이 반가웠다. 아침에 선실에서 눈을 뜰 때마다 감회에 젖곤 했다. 내가 지금 바다 위에 떠있다는 사실, 그것도 그 이름도 찬란한 에게해에 누워있다는 이질감에 도취되는 기분이었다. 크루즈에 대한 글을 한 편 쓰며 <난생처음 크루즈>라고 붙인 것은 자랑을 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생애 처음의 경험을 할 것이 남아 있다는 데 대한 감흥이었다. 감흥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여행은 감흥을 고조시킨다. 그러니 글쟁이와 여행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여행하며 글 써서 먹고 사는 것이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이 되어볼 기회를 주는데 글쟁이는 자기가 접한 풍광을 녹여내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기까지 하니, 일회적인 삶을 무한대로 확장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도 감히 창작의 말석에서 글쓰기여행에 눈을 떴고, 내 취지에 동의하는 멤버들과 같이 터키로 4주간의 여행을 왔다. 그대에게도 글을 쓰는 축복과 여행하는 권리가 도래하기를 기원한다. 둘을 동시에 하면 더욱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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