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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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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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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6일 16시 37분 등록

     

"왜 묘지 같은 데를 좋아하세요?"

 

 

파묵칼레의 언덕을 넘으면 광활한 유적지가 있고, 그 끝에 석관이 즐비한 "네크로폴리스"를 놓치지 말라는 내 말에 멤버 하나가 묻는다. 안그래도 전날 이스탄불에서도 묘지에 심취했던지라 내심 찔끔한다. 여행다니다보면 유럽에서는 묘지가 우리처럼 기피시설이 아닌지 동네 안에 있는 수가 많은데 그 때마다 눈길이 가곤 했다. 묘지에는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절대명제를 떠올리기 때문일까 부산스럽던 마음이 가라앉고 시선은 차분해진다. 한때 나처럼 살아있던, 그러나 지금은 무거운 땅에 눌려있는 시신이 빚어내는 공기가 착 가라앉아있다. 묘지가 품어 온 시간 덕분도 있을 것이다. 마모되어 가는 묘비석은 완벽한 허무 그 자체다.


 

이스탄불의 골든혼을 내려다보고 있는 무덤의 주인공들은 죽어서도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운영할 정도로 가파른 언덕을 가득 채운 네모난 무덤 주위에 싸이프러스가 호위를 하고 있다. 갖가지 모양의 묘비석들이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원기둥에 칼 모양, 버섯 모양이 있는가하면 심지어 터번을 두른 것도 있다. 가장에 대한 예의일까 묘비석에 터번이라니, 터키사람들의 유머감각이 보이는듯하다. 길쭉한 것들과 올망졸망 작은 것들이 함께 한 모습은 죽어서도 단란한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부부.jpg

 

그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절로 부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것이었다. 우아한 옷을 입고 서 있는 품위있는 부부가 보이는 것 같다.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다운 사람들이 평생 좋은 삶을 꾸려나가다가 죽어서도 나란히 서 있는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묘지 산책에 심취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기운다. 황금빛 햇살이 좁은 만 건너편 언덕을 비치는 순간 천지가 찬란하게 빛이 났다. 이래서 여기가 골든혼(금각만)이었나 눈이 휘둥그레해진다이 다음에 여행하다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해 오던 것에 균열이 인다. 이만한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면 죽어서도 외롭지 않겠다. 더구나 몇 십 년동안 동거동락해 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면..... ! 이래서들 같이 모여 사는 거구나, 모듬살이에 서툰 종족에게 한 가닥 변화의 바람이 인다.

 

 

그리고 오늘, 파묵칼레의 "네크로폴리스"에 왔다. 석회층이 쌓여 하얀 목화성으로 유명한 파묵칼레의 유적지 "히에라폴리스"는 내가 각별하게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곳이다. 기원 전 4세기 무렵의 고대도시였다는데 규모가 꽤 크다. 완벽하게 보존된 원형극장의 위용이 대단하고 나머지는 거의 부서진 잔재 뿐이지만 굴러다니는 기둥의 굵기만 봐도 도시의 규모가 짐작된다. 장정 서 너명이 들어가도 될 정도로 커다란 옹기를 보라! 무엇보다도 터가 넓다. 평평하고 길게 이어지는 터전이 그들의 토목이며 관개 기술이 발달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히에라폴리스의 끝에 '네크로폴리스(죽은 자들의 도시)'가 있다.

 

 

 

네크로폴리스 또한 고대도시의 규모를 잘 보여준다. 석관이 1200기에 달한다든가 뚜껑을 씌운 형태가 잘 보존된 것부터 허물어져 서둘러 흙이 되어가는 것까지 제멋대로 쌓여있는 모습은 어김없이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킨다. 이 곳에 누워있는 사람들도, 아니 이미 백골이 진토되기를 수천 번 반복했을 혼령들도 골든혼 해안묘지의 주인 못지않은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유장한 역사를 느끼게 해 주어 여행자를 한없이 작아지게 하니 죽어서도 현자 노릇이랄까. 이렇게 마음에 와 닿는 유적지에 오면 나 자신이 한 톨 먼지보다 작게 느껴진다. 우주의 역사가 180억년 정도 되고 그 안에서 따져 보면 80년 인생은 0.2초라는데, 바로 그것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 0.2초 안에 얼굴 붉히고 마음 불편해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데 마음은 숨통을 찾는다.

 


숲.jpg

 

게다가 여기에는 새들의 합창이 있었다. 어디선가 폭포 소리 같기도 하고 개구리울음소리 같기도 한 것이 들린다 싶었는데 세상에 새떼였다. 싸이프러스 숲이 새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새들은 정신없이 몰려다니며 구경꾼의 혼을 빼 놓았다. 한참을 넋놓고 새구경에 빠져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지만 디카로는 어림도 없다. 우리나라 것보다 훨씬 몸이 작고 가벼운 제비떼는 부지런하기도 했다. 재잘재잘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아이들처럼 활기차서 오래된 혼령들이 심심하지 않을 것이었다. 일몰을 보기 위해 서운한 발길을 돌린다.

 

 

뱅기.jpg


 

이번에는 경비행기다. 아까부터 노을을 배경으로 파묵칼레 하얀 언덕의 창공을 누비며 날고 있던 경비행기가 내 머리 위로 날아 온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엔진이 달린 행글라이더라고 불러야겠지만 하늘로 솟구치는 형상의 부메랑이 너무도 도전적이어서 와! 함성을 지른다. 타고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경비행기가 오늘 묘지산책의 대미를 장식해 준다. 그래! 산다는 건 재잘대며 쉬지않고 들락거리는 새떼같고, 맨몸으로 창공을 날고 싶은 용기에 어울리는 것이지, 무거운 흙에 눌려 있는 것은 나중 일이다. 앞으로는 묘지에 대한 탐닉이 덜해질 것 같다. 나는...... 조금은 치열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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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6 16:39:33 *.245.79.69

4주간 터키로 글쓰기여행을 왔습니다.  온전히 소풍으로 만들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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