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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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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6일 18시 42분 등록

가야의 뼛속, 신어(神魚)

(김해 신어산 631.1m) 경남 김해시 삼방동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 쉴 때도 잘 때도 심지어 죽을 때도 깜박거림 한번 없이 살다 죽는다. 물고기는 오직 자신이 해야 할 바에 열중할 뿐이다. 불가에서는 무릇 정진에 뜻을 품은 자는 이러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결코 감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물고기의 뜬 눈을 사찰의 소리와 상징, 그리고 이름에 새겨 두었다.

 

 신어산은 눈 뜬 자, (, 깨달음, 부처, 見性 )을 보리라는 의미를 이름 전체로 받아들인 산이다. 그래선지 모르지만 신어산 정상에 서서 눈을 감을래야 감을 수 없다. 일년 중 며칠 되지 않는 맑은 날씨이기도 했거니와 가을에 난반사하는 따스한 빛은 가시거리를 더해 신어산을 둘러싼 모든 산을 조망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가을 산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눈을 부릅뜨니 찾아진 김해 진산, 신어산이다.

 

 신어산의 능선은 순하다. 도심의 산이라 오르는 길이 많을뿐더러 오르는 길이 사납지 않아 처음 오르는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길에 접어들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산의 매력은 조망이다. 북으로 영남알프스 자락, 서방으로 금정산, 동쪽으로 불모산 등 영남 일대의 빼어난 산을 모두 볼 수 있다. 뿐인가, 태평양의 바다와 강이 만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동낙동강과 서낙동각이 도도히 흘러 바다와 만나는 장면을 목도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삼각주의 오랜 시간까지 가늠할 수 있다. 누런 김해 벌판과 오랜지빛 석양이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은 서비스다. , , , 바다단언컨대 이 땅에 이런 산 없다.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는데 가을 찬바람에도 이마에 땀이 날 정도가 되면 능선에 올라선다. 오르막과 완만한 능선을 오락가락하며 산과의 밀당이 이어진다. 높은 산, 그늘 하나 내어주지 않고 발 디딜 스탠스조차 제공하지 않는 바위산 그네들에 비하면 이 산은 인간적이다. 그렇다고 너도나도 받아주는 밋밋한 둘레길류의 가벼움도 없다. 땀으로 젖어 달아오르게 하고 젖은 땀은 이내 바람으로 식혀준다. 젖었다 식었다를 반복하며 신어산과 합일한다.

 

능선에 이르면 정상까지는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다. 주위 산군들을 보며 걷는 아름다운 길이 이어진다. 신어산 정상에서는 부산 경남 지역의 진산들을 조망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신어(神魚)가 사는 금정(金井)의 조화인가, 고당봉, 원효봉, 파리봉 등 금정산 형상 전체를 남북으로 쫘악 볼 수 있다. 부산 도심에서나 볼 수 있는 금련산, 황령산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게 보이고 백양산, 엄광산, 구덕산, 시약산, 승학산이 바다로 달려가는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산 사이에 우뚝 솟은 문명의 이기는 해운대 마린시티의 초고층 아파트들이다. 이들도 이제 하늘 장면 하나를 꿰찼다. 부산에서도 보지 못하는 부산의 진면목들이 신어산 앞에서 엎드린다.

 

시선을 남으로 옮겨보자. 눈 앞에 펼쳐진 김해 벌판 사이로 낙동강 본류가 흐르고 우측으로는 본류에서 나와 다시 본류로 들어서려는 서낙동강이 평야는 아랑곳하지 않고 굽이쳐 들어간다. 희미한 실루엣의 거제도와 바다에 떠 있는 가덕도 연대봉, 그들과 닿을 듯 말 듯 한 명지 신도시가 신어산에서는 이어져 있다. 그들과 무관하게 바다로 뛰어드는 다대포와 낙동정맥 끝자락 몰운대의 마지막은 가을 햇빛이 스푸마토 기법으로 빚어낸 명작이다.

 

북방으로는 무척산과 천태산, 토곡산이 나란히 그러나 명암을 달리하고 있다. 양산의 정족산, 원효산, 천성산도 보인다. 그 뒤 더 희미한 먹물로 영남알프스 준봉들이 나도 있소하며 서 있다. 서쪽으로 장유신도시와 굴암산, 눈을 크게 뜨면 불모산 철탑이 보인다. 그리고, 크고 작은 연봉들의 물결 같은 도도함, 그 알 수 없는 연속성에 산의 이름을 맞히는 일들이 더 이상 무의미해 진다.

 

신어산은 김해의 산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하는 낙남정맥의 우렁찬 시작이 경남을 오롯이 관통하고 강에 가로막히기 직전, 마지막 힘을 다해 솟아 올린 산이다. 시간을 소급하는 일은 언제나 상상이 가미되지만 이 천년 전 이 땅에 나라 하나가 세워졌다. 가야의 수로가 위민의 높은 뜻을 꿈꿀 때 수로는 이 산에 기댔다.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가냘픈 부족연합의 숨통을 이어가기 위해 군사를 키우는 대신 선택한 위민의 방식은 불교라는 종교와 예술이라는 높은 문화였다. 후대의 역사는 그 시기를 삼국시대라 명명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가야를 표피적인 체제 면모만을 잣대로 해석하는 일을 경계할 일이다. 가야연합은 깊고 넓은 문화의 힘으로는 한반도에서 힘의 진공상태를 이루던 엄연한 문화국가였다. 그 중심에 신어산이 있었으니 벌써 그 곳에 가야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이천 년이 훌쩍 넘었다.

 

오늘날 역법으로 서기 42, 주변 여섯 부족 중 가장 강력한 부족의 수장이었던 김수로는 부족을 통합하고 초기 국가 형태인 가야를 건국한다. 이때 인도 남동부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許黃玉)을 왕후로 삼는다. (지금도 김해金氏와 김해許氏는 동성동본으로 본다) 그녀와 같이 온 그녀의 오빠 장유화상은 인도불교를 이 땅에 전파하고 부족연합의 통일성을 위해 신어산 자락에 사찰을 세우니 그곳이 지금의 은하사다.

 

신어(神魚)는 그 시기 가야불교의 독창적 문양이며 이는 절의 대웅전 대들보 위에 용문양의 물고기 형태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수로왕과 허왕후의 신혼여행지라 전해지는 김해 장유동 장유사, 수로왕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한 무척산 모은암, 수로왕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천태산 부은암 등은 모두 이때 지어진 절이다. 그리하여 현재 은하사 총무스님인 현려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전에 금강산(金剛山)으로 불리던 것이 인도 남방불교 전파에 힘입어 그 특유의 문양을 이름으로 빌려 신어산(神魚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수 천 년, 가늠하기도 힘든 시간을 놓아두고 이제 산을 내려선다. 감탄만 하느라 벌써 시간이 꽤 흘렀다. 꽤 흐른 시간이 신어산 앞에서 우스워지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우리에겐 이 시간이 가장 소중한 것을. 정상에서 다시 온 길로 5분여를 내려가면 쉼터 삼거리에 닿고 여기서 영구암 방향인 좌측 길을 잡는다.

 

인생이 그러하듯 이 산도 내리막길이 가파르다. 비록 데크 계단이 놓여 있지만 한 손은 반드시 난간을 잡아야 하는 길이다. 올라가느라 정신 없이 세월을 보내고 삶의 에너지를 다 쏟았으니 내려가는 길은 유난히 힘겹다. 예기치 못한 때, 알 수 없는 운명으로 우리는 늘 인생의 내리막을 맞닥뜨린다. 내려갈 줄 몰랐다는 변명은 구차하다. 그러니 산이든 인생이든 내리막엔 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걸어야 한다. 가파르게 5분여를 내려서면 깎아지른 절벽에 어찌 지었는가 싶게도 영구암이 있다. 내려서자, 내려가자, 내려놓자, 말하는 그 자리에 신어산이 통째로 메시지를 전하듯 수행처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산 없다. 곧 다가올 봄엔 없는 시간을 내어 연두로 뒤덮인 이 길을 허밍을 부르며 내려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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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7 20:46:47 *.52.45.248

꼭 가고 싶은 아니, 가봐야 될 곳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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