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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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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3일 08시 04분 등록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죽음'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제가 처음 죽음을 처음 맞닥뜨린 건 5살때입니다. 뒷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상여가 나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아이고 아이고 서글프게 곡을 하며 따라갔습니다. 뒷집할배는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못내 궁금해 상여가 멀어질 때까지 한참을 따라가며 지켜봤습니다. 그뒤 뒷집할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게 제가 목격한 첫 번째 죽음입니다. 

 

그 뒤로 여러 죽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누가 교통사고가 났다더라." "누가 목을 맸다더라." "누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더라." “누가 농약을 마셨다더라.” 모두 저마다 사연이 있었고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그리 가까운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그들의 죽음이 제 일상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죽어서 영영 떠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와닿지가 않더군요. 2주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지지난 토요일, 간만에 가족들이 다 모였습니다. 할머니가 편찮다는 아버지의 기별에, 5남매가 모두 서둘러 고향을 찾았습니다. 몇 년 만에 8식구가 모두 모여 함께 저녁을 먹으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다행히 할머니의 얼굴은 좋아보였고, 이렇게 다 모이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얼마 전 어깨뼈가 부러져 병원에 있다 막 퇴원한 할머니는 기력이 부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를 다 알아듣는 것처럼 미소를 지었습니다. 할머니가 올해 들어 부쩍 기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편안한 얼굴을 뵈니, 조만간 다시 털고 일어나실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무색하게도, 한 시간 뒤 할머니는 갑자기 숨을 거뒀습니다. 자손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치 잠자듯 조용히 가셨습니다. 다급히 119 구급대를 불러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한번 멈춰진 할머니의 심장은 다시 뛸 줄 몰랐습니다. 곧바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할머니는 “의학적 사망상태” 판정을 받고 흰 천으로 가려졌습니다. 의사는 할머니의 괄약근이 풀렸고 동공도 반사하지 않는다며, 이제 영안실로 모시겠다고 친절히 알려줬습니다. 사망판정을 받은 할머니의 얼굴은 더욱 하얗게 질려갔고, 몸은 점점 싸늘해졌습니다. 평생을 우리와 함께 보냈던 할머니가, 더 이상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그날 이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화장터를 예약하고, 장례준비에, 할아버지 이장까지 함께 준비하느라 3일이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몸이 바쁘니 다행히 할머니를 생각할 여유가 없어 슬픔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무사히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몸은 돌아왔는데 어쩐 일인지 현실감각이 온전히 돌아오질 않습니다. 자다가도 ‘할머니가 더 이상 영영 없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곤 했고, 누군가를 영원히 상실했다는 고통이 때때로 올라왔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여전히 이렇게 멀쩡히 숨쉬고 살아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저는 죽는 걸 늘 봐오다보니까, 사는 게 특별한 일 같아요. 매일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데 무사하게 살아가는 거 자체가 기적이에요.”

 

모 법의학자가 한 말입니다. 시신을 부검하며 최전선에서 죽음을 접하는 그에겐, 죽는다는 게 특별한 게 아닌 ‘일상’입니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며 제가 한 생각도 그랬습니다. 한 순간에 숨이 멈춰지는 걸 보고나니 죽음이 생각보다 우리 곁에 참 가까이에 있구나, 싶었습니다. 예전에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 삶에 질질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죽음의 공포를 끌어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잊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건 죽음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 즉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죽음을 목격하고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덜어졌습니다. 심장이 멎고, 숨이 멎는 순간이 그야말로 찰나더군요. 죽는다는  특별한 일이 아니구나이렇게 편안하게  수도 있구나누구나 한번은 이런 순간을 맞이해야하는구나.  

 

죽음을 표현하는 말인 '돌아가시다'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주로부터 태어나 다시 우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돌아가야할 때’를 맞이 할 것이고, 이 모든 것들과 이별을 해야 할 순간을 맞을 겁니다. 죽음이 생각보다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게, 새삼 놀랍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은 호시탐탐 내 목숨을 노리는 ‘괴물’이기보단, 내 곁에서 일상을 함께 하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줄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친구의 손을 편안하게 잡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할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며,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잘 죽고 싶다. 

IP *.181.106.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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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3 10:19:24 *.52.254.45

쉬운 것 같은 데 어려운...   

잘 사는 것이 잘 죽을 수 있는 것 같은 생각... 

상당히 많은 사람이 '왜 사세요 ?' 라는 질문에 

'죽지 못해 삽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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