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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5년 3월 16일 12시 45분 등록

단상1.


뉴욕에 있는 동안 허드슨강(Hudson River)을 따라 북쪽으로 3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하기 전날, 그리고 여행하면서, 일부 구간 자동차 도로가 폐쇄되었을 정도로, 눈이 많이 왔다. 뉴버그의 유서깊은 비앤비에 묵으면서 허드슨 강을 따라 작은 도시들을 방문하며 다녔다. 조금 떨어져있기는 했지만 캐츠킬 마운틴 발치에 위치한 작은 예술가 마을 우드스탁에도 다녀왔다. 조셉 캡벨이 칩거하며 책을 섭렵했던 바로 그곳(그 이야기는 기회있으면 나중에). 스톰킹 마운틴을 하이킹 하려던 계획은 취소되었지만 어디에난 간직된 미국 이민 역사의 흔적들과 얼어붙은 허드슨강 주변의 색다른 겨울 정취를 원도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공부는 늘 여행에 돌아와서 시작된다. 천지가 눈이다보니 한국에서 보기 힘든 제설차(snowplow)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눈치우는 것에 ‘플라우‘(plow=쟁기)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제설차 모양이 ’쟁기‘와 비슷하고 하는 일도 다르지 않아서일까. 플라우란 단어 때문인지, 제설차를 볼 때마다 논에 모내기를 하고 밭에 씨를 뿌리기 위해 쟁기로 땅을 갈아엎는 풍경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것은 어린 시절 봄마다 보았던, 내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드넓은 이국의 도로를 달리다 땅이 시원스럽게 갈아 엎어져있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행복했다. 들판을 가득 채운 곡식, 야채, 꽃들의 모습을 미리 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쓰기‘가 쟁기질이다. 곡식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마음 밭을 갈아엎고, 돌을 고르고, 거름을 치는 일이다. 쓰고 있는 한, 마음은 점점 비옥해질 것이다. 씨가 잘 안착해서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풍성한 열매를 맺어줄 비옥한 땅, 내 마음. 

   

단상2.


미국 다녀오고 시차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미뤄둔 일은 많은데 손에는 안잡힌다. 마음이 갈팡질팡 시소를 탄다. 잠을 자다가도 이런 심리적 불균형에 놀라 위기의식을 느낀다. 눈 감은 채 마음을 진정하려고 숨을 크게 쉬어본다. 그러나 범람하는 생각들이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이에는 이, 생각에는 생각? 그러나 생각이 범람할 때는 생각으로 마음을 평정할 수 없다. 떨치고 일어났다. 밤10시. 잠시 눈 좀 부치겠다고 초저녁에 잠에 들었으니 그새 여러 시간이 지난 것이다. 마침 둘째가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었다. 잔잔한 노래지만 규칙적인 비트가 있어 몸을 흔들거리기 안성맞춤. 고양이를 안고 부드런 털에 얼굴을 묻은 채, 몸이 이끄는대로 집안을 옮겨다녔다. 막춤이다. (자평컨대) 말이 막춤이지 제법 리듬을 타는 괜찮은 춤이다.


5분쯤 추다보니 몸 안으로 신선한 공기가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사색은 좋다. 그러나 잡생각은 아니다. 사색과 잡생각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다. 그러나 기준은 있다. 괜한 고민과 걱정들로 마음이 짓눌리면 잡생각이고 내적인 고요를 잃지 않으며, 때로 잔잔한 기쁨까지 선물한다면 사색이다. 잡생각은 파괴력이 있다. 잡생각이 깊어지면 순식간에 염쇄주의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잡생각을 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빨리 탈출해야 한다. 가장 좋은 탈출은 즉시로 몸을 움직이는 것.(혹은 공책을 펼치는 것). 몸을 움직이다 보면 (손을 움직여 쓰다보면) 감정은 어느새 잦아들고 그 공간에 평화가 깃든다.

  

단상3.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이 적잖이 짐이다. 할 일이 많을 때는 더욱. 한 두페이지도 아니고 30-40쪽을 가볍게 넘으니 하루 이틀 쌓이면 금방 책 한 권 분량이 된다. 대충 읽고 버리는 걸 못해서, 그리고 활자로 된 걸 그냥 버리는 게 죄스러워서 미련스럽게 다 읽느라 시간을 엄청 뺏기곤 했다. 신문 한 두가지는 아침마다 꼼꼼히 챙겨서 시대적 감각을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한 때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압박을 느끼면 그냥 버린다. 게임하듯 버린다. 신문을 끊으면 되는데 끊지는 못하고 있다(설명하려면 길다). 그래서 눈 질끈 감고 버리는 ‘연습’을 한다. 신문을 버리지만 실은 죄책감을 버리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을 존중하기 위해서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버린다. 더 버리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 신문이 있건 말건 상관하지 않는 수준이 아직은 아니다.


보름 만에 집에 왔으니 돌아가는 소식이 궁금해 쌓아놓은 신문을 펼쳐볼 만도 하지만 쌓인 채로 갖다 버렸다.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도 바로 바로 베란다 재활용 박스로 직행이다. 그런데 어제는 문득 허영만 화백의 만화 <커피 한잔 하실까요>가 보고 싶어 버리려던 신문을 펼쳐 들었다. 만화를 읽고난 후 앞으로 몇장 넘기니 혜민스님이 한비야씨를 인터뷰한 글이 있었다. 아하, 동시성! 감사일기 덕에 요즘 '감사'만 생각하고 있어서일까 신문 한 면을 다 차지한 긴 글에서 아래 문단만 유독 눈에 들어왔다. 


“누가 내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장 공책과 연필을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고는 오늘 하루 가장 행복했던 순간, 혹은 감사한 순간을 적어보라고 할 거예요. 처음에는 그런 순간이 있나 하겠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반드시 떠오를 거예요. 소소할수록 좋아요. 습관적으로 쓰다 보면 감사한 일과 행복한 일이 점점 더 많아질 거예요. 이렇게 조금씩 일상의 작은 행복을 감지하는 촉과 행복의 잔 근육을 키워가면 되는 거 아닐까요? ...행복을 느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요.”


그러니 공책과 연필을 들고 있는 당신이라면 행운아다. 그 공책에 감사일기를 쓰고 있다면 더욱.


단상4.


한비야씨는  일기쓰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나에게 쓰는 것은  일상이다. 노트든 메모장이든, 수첩이든, 빈종이든 어디에나 쓴다. 일기의 도를 넘었다. 효율을 생각하고 계획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면 그간 십 수권의 책도 지었을 것이다. 지난 3달간 감사일기 쓴 분량도 만만치 않다. 내 노트를 보고 놀란 세째가 물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쓰는 거야? 굳이 다시 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아이는 효율을 묻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효율 없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글이 내게 준 효용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내가 쓴 글들은 쓰는 순간 제 몫을 다 했다고 나는 믿는다. 쓰면서 나는 어려운 시간들을 통과했고, 쓰면서 흔들리는 순간들을 다잡았고, 쓰면서 나 자신을 설득했다. 쓰면서 앞으로 걸어왔고 쓰면서 나다움에 다가섰다. 쓰는 것이 나에게는 견딤이며 탈출이다. 쓰고 있지 않으면 나는 금새 어둠에 갇히고 서있는 것 같다가도 넘어진다. 나는 쓰는 것으로 매 순간 내 삶을 세우고 나아가 내 손이 닿는 사람들을 세운다. 내 손이, 내 입이, 내 발이 귀한 건 내가 쓰고 있기 때문이다.  


단상5.


한비양의 ‘아궁이론’에도 눈이 간다. 나는 벌리는 형이다(서치라이트형). 길을 걸으며 길가에 핀 꽃 냄새를 일일이 맡는 형이다. 당연히 모두 나에게 ‘집중’이라는 이슈를 던져준다. 그런데 그녀는 집중이 강점이다.(스포트라이트형). 10개의 장작을 하나씩 넣고 서서히 뎁히기보다 10개의 장작을 한꺼번에 아궁이에 넣고 단시간에 물을 끓이는 형이다. 모든 근성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벌리는 것도 마찬가지. 다양함을 즐기고 배려하는 반면 자신의 우선순위에 집중하는 능력은 약하다. 집중을 잘하는 사람은 성과는 확실히 내지만 주변을 살피고 다양함을 변주하는 능력은 떨어진다. 성과위주의 사회에서는 곧잘 집중은 장점이고 그렇지 못한 건 단점이라 단정한다. 어떤 것도 완전히 옳거나 완전히 그르지 않다. 집중이 필요하면 집중을 연습하면 되고 주변을 좀 더 신경쓰는 것이 필요하면 그것을 연습하면 된다. 나는 그것을 알고나서도 세상과 내 주관 사이에서 자꾸 흔들렸고 지금도 완전히 균형을 찾진 못했다. 잘 생각해보면 집중의 이슈에 있어 나는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집중력이 없지 않다. 아니 꽤 있다. 문제는 내게 정말 중요한 것 보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집중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런 경향이 내게 많다는 것이다. 흔들림과 스트레스는 거기에서 온다. ‘진짜’ 나에게 중요한 것에 에너지를 몰아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나의 집중의 이슈다. 알면서도 못하는 건, 아직도 세상 가치와 줄달리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집중의 이슈는 ‘순서’를 돌려놓는 일이다. 세상 먼저가 아니라 나 먼저. 내가 채워지지 않고서는 누구도 채울 수 없다. 자신을 먼저 진심으로 존중하면 멀어질 것 같던 세상이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이 순서를 바꾸면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효율에 반기를 들고 노트에 가장 느린 글을 쓰는 나는 자주 짜릿하다. 좋은 삶을 위해 필요하면 무엇이든 ‘연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고마운 적이 있었던가. 만 개의 선택지 앞에서 지금 당장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나를 밀어주는 것, 그것이 내게는 ‘쓰기’다. 

 

<10 Reasons:나는 왜 감사일기를 쓰는가>: http://cafe.naver.com/creativitycoaching/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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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감사일기 3기 모집

하하, 벌써 3기입니다. 한 해의 시작이 아직 미진하거나, 건조한 삶에 윤기를 더하고 싶다면 함께 감사일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3월 20일까지 loishan@hanmail.net 으로 신청을 받습니다. ‘왜 감사일기를 쓰고 싶은지’ 이유를 20줄 이상 적어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 달 동안 온라인으로 진행하되, 3월 21일(토요일) 오프 모임(오리엔테이션 워크샵)을 갖고, 22일부터 시작합니다.(전화:010-9876-6719). 자세한 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http://cafe.naver.com/creativitycoaching/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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