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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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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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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5일 16시 24분 등록

이렇지 않았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한 번 좋았다 하면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고 어떻게든 가까이 하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기필코 그 뜻을 이루곤 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 해도 뭐 별다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연말이라면 새해 첫인사를 건네고 싶어 그의 사이트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땡! 하고 연도가 바뀌자마자 인사말 한 줄 남기고 오는 정도. 쇼핑으로 치자면 참 충동구매도 많이 했는데, 마음에 드는 것을 가졌을 때의 만족감이란 그 달의 예산 따위는 끼어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만한 것이었다. 요컨대 전에는 하나의 감정이 대리석같이 단단하고 백설처럼 순수하여, 추호도 의심할 바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막무가내의 심정이 되지가 않는다. 좋으면 좋다, 갖고 싶다그것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좌우가 다 보이는 까닭이다. 좋다는 감정이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잠깐 참으면 생길 이득이 눈앞에 좌르르 펼쳐지니, 충동구매를 않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재미가 없다. “, 심심하다. 이번 주말에 뭐 할래? 검색해 보니 군산이 당일치기로 갈 만 하던데 갈래?” 얘기를 꺼냈을 때 아이들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여도 하나도 서운하지 않은 것은, 나조차도 반드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도 좋고, 안 가도 좋고,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  감정이라는 유리창에 먼지가 덕지덕지 낀 것 같다. 주말마다 우리집에서는 똑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만만한 곳 몇 군데 거론하다가 멍하니 TV, 나가봤자 영화, 습관적인 외식으로 마무리.


그렇다 보니 기억조차 빠르게 잊혀진다. 오남매 중에서 나를 가장 예뻐해 주셨던 아버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 하면 애틋하기 짝이 없고, 아버지 생각을 해서라도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결연해지곤 했는데 이제는 내 담담함에 내가 당황할 정도다. (돌아가신 지 17년이 되었다) 그런 식으로 청춘과 결혼생활과 원장시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다 사라진다. 모든 것이 아득하고 낯설어 정말 내게 일어났던 일인지 의심스럽다. 기억이라는 토대가 사라지니 지금 여기 살아 움직이는 내가 홀로그램이라도 되는 양 괴기스럽다. 책을 쓴 지는 오래 되었지만  강좌가 그런대로 돌아가고, 아이들 무난하게 자기 역할 하고 있어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다. 나는 속절없이 시들어가고 있었던 거였다. 벌써 이 정도면 10년 후, 20년 후의 정신건강은 어찌 되는 건지 갑자기 아찔해진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무서운 소멸의 길을 갔을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천천히 시들어간 거였구나. 오랜 기간을 두고 서서히 감정이 불투명해지면서 행동이 줄어들고, 마침내 삶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지고 조용한 체념에 이르는 것!  아직은 늙은 나를 상상할 수 없지만, 분명히 전과 달라진 내 모습에서 단서를 느끼고 불현듯 두려워진다. 젊은날의 무대뽀 기질이 약해졌다면 이제 전적인 의지를 가지고라도 경험을 선택해야 하리라.


마치 꿈에서 신탁이라도 받은 듯 눈이 번쩍 뜨이는데 <12>을 보며 킬킬거리는 아들이 눈에 들어온다. <1 2>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1 2일을 가서 느끼는 게 진짜 아닌가?  삶을 구경만 하는 데는 절대 반대다. 그러자 두 어 달에 한번씩 1 2일 떠남으로써 누구나 시청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게하는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프로그램의 주제는 <재미있게 사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도 좋을 것이다. 취미를 통해 남다른 재미를 맛보며 촘촘한 일상을 꾸리는 사람들 혹은 아예 스몰비즈니스로 발전시킨 사람들을 탐방하여 이야기를 듣고, 조금씩 체험해 보면서 스스로 변화한 것이 있으면 글도 쓰고!  불현듯 내게 날아 온 이 씨앗이 아주 마음에 든다.  나와 내 아이들처럼 마음은 있지만 여가를 TV와 영화와 외식으로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경험! 어쩌면 그것이 살아있음의 동의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건, 적극적으로 경험을 만들고 붙잡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  제가 운영하는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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