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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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근 선생이 쓴 <마음이 단순해지는 선화>에서 본 사진 한 장이 가슴으로 파고듭니다. 어느 날 계룡산 동학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속 배경은 흙으로 담을 짓고 담벼락 곳곳에 돌을 박고 맨 위에는 기왓장을 얹은 돌담입니다. 돌담에는 얇은 수평모양의 돌들을 이어 네모난 액자를 만들고, 그 안에 기왓장들을 가로 세로로 박아 물이나 꽃 형태로 배치했습니다. 담벼락 한편에 붉은 담쟁이 줄기 하나가 기역자 모양으로, 그러니까 좌에서 우로 뻗치다가 아래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담쟁이 줄기의 선과 돌담의 기왓장 무늬의 대비가 절묘합니다. 자연의 작품과 인간의 작품 간의 감응입니다.
김홍근 선생은 “기어오르는 붉은 담쟁이와 눈이 마주쳤다. 내게 말을 걸어온다”며 담쟁이가 그에게 하는 말을 전합니다.
“천지에 가득 찬 가을 기운을 보러, 사방을 다 쏘다닐 필요는 없어. 나 하나로 충분해. 하지만 나 하나 물들이기 위해 천지가 다 동원되었지.”
그는 미소 지으며 대답합니다.
“나도 그래. 인간을 알기 위해 인류를 다 분석할 필요는 없어. 나 하나면 충분해. 하지만 지금의 나 속에는 태양계 50억 년 진화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어. 나 하나 만들려고 그 긴 세월과 이 넓은 우주 공간이 동원되었나봐.”
마음을 끌어당기는 풍경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풍경과 마주치는 순간 마음이 열리고 얼굴은 환해집니다. 그 이유는 밖에서 오는 에너지와 내 안의 에너지가 상승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인 듯합니다. 같은 이유로 바깥 풍광도 누군가를 만나 빛날 수 있습니다. 김홍근 선생은 “어느 곳이나 잘 둘러보면 인격적 풍모를 갖춘 나무나 돌이 있기 마련이다. 그와 대화하고 또 자신을 투영해보면 묘한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기도 한다”면서 “그 순간 풍경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고 말합니다. 돌담을 기어오르는 붉은 담쟁이와 김홍근 선생의 마음의 만남처럼 말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주목하는 외부 세계의 풍경을 보면 그 사람의 내면 풍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풍경(風景)’이란 단어가 좋습니다. 글자 속에 바람(風)과 햇빛(景)이 들어가 있고, 이 두 글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좋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풍경을 보는 게 여행의 마지막 단계’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문화 유적과 유물, 그리고 뛰어난 예술 작품에서 인간의 찬란한 마음을 보고 내 안에서 그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연을 보는 것은 찬란한 자연을 보고 그 빛으로 내 안을 보는 것입니다. 또 자연 속에서 온갖 것들을 가꾸고 있는 나를 넘어서는 존재의 작용을 느낄 수 있습니다. 풍경과 뜻이 비슷한 ‘경치(景致)’는 빛이 이른 곳이고, ‘관광(觀光)’은 빛을 보는 것입니다.
김홍근 저, 마음이 단순해지는 선화, 마음산책,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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