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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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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9일 08시 04분 등록


세상 끝에서 제우스가 독수리 두 마리를 날려 보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오른 독수리는 지구의 중심에서 다시 만났다. 그곳이 델포이다. 사람들은 델포이를 옴파로스라 불렀다. 배꼽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리스를 지구의 중심, 델포이를 지구의 배꼽이라 생각했다. 옴파로스에 아폴론 신을 모시는 신전이 세워졌다. 신의 뜻을 알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신이 아닌 ‘피티아’라고 부르는 무녀와 사제들이 신전에서 그들을 맞았다. 피티아는 신과의 매개자였다. 신의 말씀은 그녀를 통해 인간 언어로 전환된다. 피티아가 중얼거리면 곁에 있던 사제들이 피티아의 말을 모호한 해석을 덧붙여 의뢰인에게 전달한다. 신도 피티아도 만나지 못한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다. 의뢰인도 해석을 덧붙일 수밖에 없다.


해석은 누구의 역할인가? 무녀인가, 사제인가, 둘 다 아니다. 의뢰인이다. 최종 해석자는 의뢰인 자신이다. 아무리 탁월한 메시지라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엉뚱하게 해석하고 어리석게 적용함으로 메시지를 허공에 날려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대국(大國)이 승리하리라”는 똑같은 신탁을 두고, 어떤 장수는 자국을 대국이라 여기어 전쟁을 벌였고 다른 장수는 상대를 대국이라 여겨 전쟁을 포기했다. 20세기 후반,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을 선언하고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독자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했다. 옳은 말이다. 저자의 죽음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독자의 지력과 능동성은 중요하다. 다시 신탁 해석의 문제로 돌아가자. 신의 죽음까지 선언하지는 않더라도, 의뢰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지혜롭게 해석할 줄 알고, 자기 해석의 결과를 책임지는 주도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어떻게 지혜로운 해석자가 되는가? 신탁을 구하는 사람들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길에 줄지어 늘어선 기둥을 만난다. 성소 입구에 줄지어 선 기둥에서 헬라어 문구를 발견한다. “그노티 세아우톤 gnothi seauton. 너 자신을 알라.”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예언자 오라클의 주방 문 위에 이 말이 라틴어로 적혀 있다. 테쿰 노스케 tecum nosce.) 신탁을 받으러 온 이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니! 신탁 메시지보다 의뢰자의 해석이 더 중요하고, 신탁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책임지는 주도적 태도가 더 중요함을 그리스인들은 이미 알았을 터, 과연 현자다운 말이다. “너 자신을 알라.” 그리스인들의 지혜로운 이 말은 지구의 배꼽 델포이에서부터 지구의 머리 꼭대기와 발끝까지 전해졌다. 공간적 전파만이 아니다. 고대의 질문이 세월을 거쳐 현대인들에게도 전해졌다. 시공간을 뛰어넘은 명제, 너 자신을 알라! 자기를 아는 지식은 지혜의 출발점이다.


자기이해가 좋은 해석을 낳는다. 실행력이 좋은 부모는 신중한 자녀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부모가 질문하면, 신중한 자녀는 생각에 빠져든다. 자기 강점을 발휘하는 중이지만 부모의 눈에는 행동이 굼뜨고 의사소통을 힘겨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넌 왜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안 하니?” 엄마가 나무라는 어조로 묻는다. 엄마가 불신할수록 아이는 자신감을 점점 잃어간다. ‘나를 답답하게 느끼시는구나. 나는 왜 대화에 서툴까?’ 그렇게 사고력이라는 자기 강점을 발견할 기회를 놓친다. 아이의 고유함을 이해하지 못한 부모 탓이 크지만, 아직 어려서 메시지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탓도 있다. 성인이 되어 자기를 알고 엄마와 자신이 다른 기질임을 알면, 상처와 왜곡 없이 메시지를 해석한다. ‘엄마는 행동이 빠른 사람이고, 나는 사고력에 능한 사람이지.’ 자기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훌륭한 해석자가 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누구인가’를 탐색하는 것이 인문학 공부의 정수다.

 

독서만으로 자기이해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이해를 위해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은 얻는다. 특정 분야의 책이 아니라, 모든 학문과 모든 장르의 책들 중에 자기이해를 탐구한 책들을 읽자. 자기이해를 돕는 세 권의 책을 소개한다.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은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쓰인 소설이다. 미국의 교육자 파커 파머의 에세이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는 자신을 발견하는 지혜를 담아냈다. 저자가 실수담까지 울림 있는 메시지로 유려하게 풀어냈다. 켄 윌버의 『무경계』는 통합심리학이란 관점에서 ‘나’를 탐구한 수작이다. 영성, 심리학, 물리학이라는 다양한 학문을 섭렵한 대학자의 식견이 빛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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