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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4일 09시 05분 등록

추억이란 장롱 깊숙이 숨겨둔 오래된 사진첩을 들쳐보는 설렘과 같습니다. 그 아련함을 선물키 위해 새벽 일찍이 길을 나섰습니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가 울려나오는 무궁화호 열차로 둘러 둘러 도착. 택시를 갈아탔습니다. 000으로 데려다주시고 다시 이동할거니까 기다리면 됩니다. 어딜 가시는데요. 극장요. 영화 보러 서울에서 이 시골까지 내려왔는교. 기사 분은 백미러 너머로 나의 얼굴을 흘려봅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이죠. 그렇습니다. 여기까지 내려온 까닭 첫 번째는 장인, 장모님과 그곳을 동행하는데 있습니다.

최근 관람한 영화 한편이 머릿속에 맴돌아 함께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것을 실행키 위해 내려온 겁니다. 영화는 무슨 영화? 손사래를 치시면 서도 향하는 걸음이 그리 싫지는 않아 보이는 가운데 어릴 적 기억이 겹쳐집니다.

 

명절 때면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얼마나 기다려야 되노. 그러게 빨리 오자카이.“

쥐포와 땅콩, 오징어 등 주전부리를 준비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먹는 쏠쏠한 재미는 현재 야구장에서 치맥을 먹는 즐거움이 비할 바가 아닙니다. 입장.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자동적으로 기상을 하게 됩니다. 왜 애국가가 나오는지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자는 그때 당시의 정서였기에 남들 따라서 할뿐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오묘한 멘트가 인상적인 대한 뉘우스. 흑백필름 속 대통령 동정을 열심히 쫓아가다보면 드디어 고대하던 순간이 다가옵니다. 먹을거리는 입을 향하면서도 눈으로는 화면의 신세계로 풍덩. 이소룡이 되어 쌍절곤을 휘두르며, 영웅본색의 주윤발 마냥 성냥개비를 질근 물어듭니다.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고파 옥상에서 뛰어내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그 시절의 느낌과 장면들. 시간이 지나서도 잊히지 않습니다.

 

입구부터 생소한 멀티플렉스 극장. 그렇겠지요. 그 시절과는 달리 홍보용 간판 그림도 사라진지 오래니.

“우리 나이에 이런데 오는 사람은 없을 거다.”

“요새는 아버님 세대가 갈 수 있는 극장도 생겼습니다.”

어색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나름 답변을 신경써보지만 그래도 여전히 낯설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극장에 온지 얼마나 되셨어요?”

“글쎄. 문희 배우가 출연했을 때 왔었으니까 …….”

손가락으로 세월의 깊이를 헤아려봅니다. 감회가 어떠실까요. 짠한 마음이 드는 가운데 혹시나 하는 기우로 귓속말을 드렸습니다.

“요새는 애국가나 대한 뉴스가 안 나옵니다.”

암전이 되자 장인어른의 첫마디는 이러합니다.

“많이 바뀌었구나. 영사기 돌리는 사람도 없네.”

상영 내내 신경이 쓰여 곁눈으로 흘낏거립니다. 괜히 저의 욕심으로 여기에 모시고 온 것은 아닌지. 재미가 없지는 않는지. 다행히 우려와는 달리 두 시간이 넘는 동안 몰입을 하십니다. 중요장면 전환마다 눈물과 함께 흐뭇한 웃음도 터져 나옵니다. 끝난 이후 담배 한 개비 피워 무시는 장인어른께 여쭙습니다.

“어떠셨어요.”

마지막 장면. 주인공과 자식들의 소통이 원활치 않은 상황이 아무래도 요새 세태와 오버랩 되어 안타까우신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밝은 표정으로 화답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몇 십 년 만에 이곳을 찾았지만, 문희라는 여배우도 그때 당시의 분위기도 사라졌지만,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은 여전할 터입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영화 한편 보는데 돈 얼마 든다고. 식사를 마치고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는 유명 커피숍에도 들렀습니다. 아마도 두 분만 자리를 하였다면 일부러는 찾아오지 않았을 터입니다. 예전 다방이란 상호 명으로 불리었고, 마담 언니와 계란 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 메뉴가 있었던 곳. 별 다방 미스 리라는 명칭도 퇴색되었지만, 그래도 멀리서 내려온 사위의 정성에 싫은 내색을 내보이지 않으십니다. 연애 때의 감정을 살려 이런 데이트도 가끔 즐겨보시면 어떨까요. 그렇습니다. 나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장인어른도 젊은 시절 가족들을 위해 무던히 고생을 하였었지요. 군인으로써 나라를 지켰고, 월남전에서 달러를 벌어 들였으며, 사우디 열사의 사막에서 고된 땀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적잖은 연세에도 아직 현역에서 활동하고 계시고요. 그런 삶에의 진행형이 있었기에 자식들이 이만큼이나마 무탈하게 성장을 했을 터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젊은 초상대신 희뿌연 흰머리로써의 흔적이 내려앉는 자리. 나는 왜 당신들을 초대했을까요. 무엇 때문에 이곳까지 내려왔을까요.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앞만 보고 걸어가신 뒤안길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이런 장면도 남겨드리고 싶었습니다. 잠시나마의 행복과 주름 펴짐이 될지언정, 훗날 돌아보면 그때 그렇게라도 함께한 장면이 사진첩 어느 구석 오래 간직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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