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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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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7일 06시 51분 등록

 

지난 수요일부터 4일간, 짧은 일정으로 폴란드에 다녀왔습니다. 긴급한 업무 출장이었기 때문에 출발 전날인 화요일에야 일정이 확정되었고, 매우 급하게 다녀올 수 밖에 없었죠. 때문에 처음 가보는 폴란드였지만 아무런 사전공부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동유럽의 한 국가이자,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국가라는 정도 밖에는 전혀 아는게 없었죠.(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폴란드에 있다는 것도 가서야 알았습니다...)

 

일정 또한 빡빡했습니다.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에 오후 늦게 도착, 잠만 잔 후 다음날 아침 기차를 타고 중부의 작은 도시 그니에즈노란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 저녁에 거래회사 미팅 후, 다음날 아침부터는 본격적인 업무 협의를 늦은 오후까지 진행했죠. 그리고는 다시 기차역으로 서둘러 이동, 바르샤바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인 토요일, 귀국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이었죠.

 

바르샤바로 돌아와 저녁 먹은 후 잠깐, 그리고 아침 식사 후 약 2시간 정도만 바르샤바 시내를 둘러 볼 짬이 생겼습니다. 사실 시차와 이동 그리고 업무로 인한 피로로 조금 더 쉬고 싶긴 했지만, 그래도 언제 다시 이 곳에 올까란 생각때문에 남은 시간을 그저 호텔에서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식사 후 쉬겠다는 다른 일행들을 뒤로 한 채, 저 혼자 지도 한 장 챙겨 시내로 길을 나섰습니다. 채 오전 9시도 되지 않은 토요일 오전, 거리는 한적했습니다. 날씨는 흐렸고 습한 추위가 만만치 않더군요. 그래도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동유럽 이국의 낯설음이 좋았습니다.

 

지도를 들여다보니 조금 서두르면 바르샤바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인어 동상(Pomnik Syreny)을 볼 수 있겠더군요. 가는 중간 처음 만난 명소는 1700년대 건물 그대로 유지해 놓은 곳이었습니다. 당시 그림까지 전시해 놓았기 때문에 현재와 비교할 수 있어 좋더군요. 300년전 바로 이 곳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가다보니 대학(나중에 알고보니 바르샤바 대학)처럼 보이는 곳이 있더군요.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아쉽게 패스...

 

1시간 반 가까이를 걸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1700년대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고, 광장 가운데 인어 동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이상했습니다. 동상을 중심으로 큰 울타리 같은 것이 쳐져 있더군요. 한쪽으로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몰려 있었고요. 뭘까 하고 가까이 가서 보고는 뜨아~’ 했습니다. 동상 주변으로 작은 스케이트장을 만들어놓은 겁니다. ... 우리나라로 따진다면 광화문 이순신 동상 주변으로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놓은 셈이죠. 아이디어는 괜찮았지만, 제 입장에서는 글쎄요... 그다지 좋아보이만은 않더군요...

 

유럽 특유의 건물들 사이를 구경하다보니 어느덧 호텔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념품점에 들러 기념품도 조금 사고싶었지만 그 시간에 오픈한 가게도 거의 없었고, 시간도 부족했죠.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던 와중에 저멀리 노점상 한 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절 손짓해 부르더군요. 전 차카니까(?) 당연히 그리로 갔죠.^^ 할아버지 한 분이 수제 조각품을 팔고 계시더군요.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원뿔형의 나무에 산타클로스(처음엔 할아버지 요정인줄...)를 조각해 유화로 색을 입힌 것이었죠.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었는데, 작은 것 또한 높이가 4~50cm 정도로 제법 컸습니다. 일단 큰 것의 가격을 물어봤습니다. ... 350T(1즐로티=300, 105천원)라네요. 크기도 크기지만 너무 비싸서 못사겠더군요. 작은 건 얼마냐 했더니 200T(6만원)라 하시더군요. 일단 머리 속으로 주머니 사정을 확인했죠. 130T(39천원)가 제가 가진 전 재산이었습니다. 깍아달라고 했습니다. 좀 고민하시더니 10% 깍은 180T(54천원)를 달라시네요. 더 깍아달라고 했습니다. 안된다고 하시네요. ... 이 지역은 협상도 안되나? 마지막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지갑 안을 보여주며 130T 밖에 없다고 했죠. 그 금액으로는 안된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그래서 동전도 조금 있다고 덧붙였죠. 할아버지 표정에 안타까움이 묻어납니다. 아무래도 오늘 개시 같은데 팔고 싶으신 마음이 강해보였습니다. 혹시 폴란드 화폐 말고 유로화는 없냐고 묻더군요. 없다고 했죠. 실제로 없기도 했고요. 짧은 시간 고뇌하시더군요. 그러시더니 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130T와 동전을 건넸습니다. 조각품을 제게 넘기기 전, 뒤집더니 밑바닥에 유성펜으로 뭘 적으시더군요. 바르샤바, 2015. 그리고 뭐라고 씁니다. “your signature?”라고 물었더니 “Yes, my sign.”이라고 하네요.

 

그 순간 아, 여러 가지 복합된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그 중 미안함이 제일 컸습니다. 전 그때까지 그 분이 그저 단순 노점상인줄 알았었거든요. 하지만 알고보니 그 분이 직접 조각한 작품들을 들고 나와 팔고 있던 거였습니다. 자신의 작품이니 당연히 사인까지 해주었던거고요. 물론 원가가 얼마이고, 이윤을 얼마나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협상의 과정을 보았을 때 싸게 판 것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조각품을 들고 돌아오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남은 돈을 여기서 쓰지 않았다면 분명 공항 면세점에서 다 썼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돈은 대기업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고,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께 드린 돈은 그 분의 생활비로 쓰여질 것이고, 그 돈은 다시 여러 소시민의 생활비로 순환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제 값을 드리지 못하고 너무 깍은 것만 같아 죄송스런 마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한국돈이라도 더 보태드릴걸 그랬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현재 대부분의 나라가 불황의 늪에 빠져있듯, 폴란드 또한 불황이 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리의 많은 가게들이 50% 할인이라는 문구를 붙여 놓았더군요. 아마도 자신의 조각품을 팔던 그 할아버지 또한 불황에 많이 힘드실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싸게라도 파신 거겠죠. 모르겠습니다. 제가 살아생전 그 할아버지를 다시 보게 될 수 있을런지는요. 아마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겠죠? 만약 이 편지를 읽는 분 중, 혹시라도 그 할아버지를 만나 조각품을 사는 분이 계시다면, 그때는 꼭 제 값 다 주고 사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게 연락주세요. 그 댓가로 제가 근사한 식사 한번 대접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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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8 13:00:02 *.230.103.185

전 차카니까 당연히 그리로 갔죠....  이 부분에서 싱긋 웃습니다.


전혀 연결고리는 없지만 문득

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 하는 사람을 따라갔다는 지인이 떠오르네요.

자기는 도를 모르기 때문에 갔다는 얘기. ㅋㅋㅋ


조각상 사진도 올려주지 그랬어요.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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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9 07:51:11 *.122.139.253

ㅎㅎ

조각상 사진은 조만간 찍어 올려놓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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