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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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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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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9일 12시 41분 등록

 

 

새해 1월이 다가고 있고 입춘이 다음주니 곧 봄이 올 것입니다. 봄을 기다리는 겨울 숲을 잠시 걸었습니다. 숲 바닥 눈 이불 속에 있던 명이나물이 그 촉에 연두 빛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고라니와 멧토끼 똥이 여기저기 놓여 있고 근처의 싸리나무와 모시풀, 거북꼬리 줄기 몇 개가 댕강댕강 잘려 있습니다. 푸른 잎 대신 갈색줄기로라도 배를 채우며 지냈을 초식동물들의 겨울이 애틋합니다. 그래도 삶은 이어지는 법, 기척을 느끼고 도망치는 고라니의 배가 불룩합니다. 푸른 잎이 돋아날 즈음 저 고라니는 새 생명을 낳고 불룩한 배도 가벼워지겠지요.

 

멀리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여우숲이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는 그이는 나흘 전 내게 여섯 시간의 강의를 들은 한 숲해설가입니다. 입춘이 시작되면 숲해설가 활동을 재개해야 하므로 그 전에 얼른 와보고 싶다며 그이가 전화를 했습니다. 자신이 누군지에 대한 설명이 짧게 이어졌습니다. 40여명 수강생 중에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맨 뒤에 앉아있던 모습을 나도 단박에 기억해냈습니다. 이따금 강의 중에 일어나 조금씩 몸을 서성이며 듣기도 했고 밖으로 나갔다가 금방 되돌아와 다시 앉아 듣기도 했던 사람, 저녁 뒤풀이 자리에서 짧게 뱉었던 한마디도 선명했습니다. “숲해설가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제게는 있었습니다.”

 

그이는 이곳이 궁금하고, 나는 그의 운명이 궁금하므로 우리는 후다닥 이 숲에서 마주하게 됐습니다. 밥과 차를 나누며 그이의 사연을 들었습니다. 삶의 중반 어느 즈음에 고통이 너울파도처럼 한꺼번에 들이쳤다고 했습니다. 남편을 보내야 했고 곧이어 허리가 부러지는 참담한 교통사고를 겪었다고 했습니다. 그이가 내가 한 여섯 시간의 생태학 강의 때 이따금씩 일어나 서성인 이유는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는 그의 몸 상태 때문임을 그 말을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에는 그이의 몸에 암이 찾아왔고 1년간 스무 차례가 넘는 항암치료를 견뎌야 했다고 했습니다. 더욱 곤란했던 것은 플로리스트로 안정되고 자유로운 강사 자리를 누리던 직업을 계속할 수 없게 만드는 마음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당하기 너무도 어려운 고통 속에서 어느 날인가부터 그이는 더는 꽃을 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꽃을 똑--, 댕강댕강 꺾는 것이 너무도 죄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고통에 꽃의 고통이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꽃과 자연을 좋아했으나 그것을 사랑하는 방식을 새롭게 자각한 그이는 그렇게 해서 숲해설가라는 직업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유급 봉사직 수준의 급여로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새 직업이 참으로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유아들에게도 제대로 숲을 안내하기 위래 유아숲지도사 과정 공부를 시작할 예정이라고도 했습니다. 몸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숲치유에 대해서도 공부해볼 작정이라고 했습니다. 헤어지기 전 우리는 함께 여우숲을 산책했습니다. 나는 일본잎갈나무(낙엽송)가 군락으로 살고 있는 자리에 서서 나무 한 그루를 가르켰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줄기로 곧게 자라 오르고 있는 다른 낙엽송과 달리 세 개의 줄기를 만들어 살고 있는 낙엽송입니다. “그가 다른 낙엽송과 확연히 다른 꼴로 자라는 이유를 알겠습니까?” “……” “상처 때문입니다. 세 갈래로 갈라진 자리 땅으로부터 4m 쯤 떨어진 그 중앙을 보세요. 부러진 허리의 흔적이 있지요? 나는 저 나무를 늘 존경심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상처를 품고 새로운 하늘을 열어낸 위대한 생명이니까요.”

 

그 뒤에도 나는 몇 그루의 나무 앞에 그를 세우고 그 나무가 왜 그 꼴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었고 나의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해주었습니다. “생태(生態)란 본래 삶의 꼴이라는 뜻입니다. 흔히 과학적으로는 생태학을 생명과 그 환경이 상호작용하며 이루어내는 체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참된 생태학 공부는 최소한 다음 질문과 그 답을 찾는 작업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째, 저 생명은 왜 저 꼴로 살까? ……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태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이 경지의 자각에 도달해야 합니다. 저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나도 아무 것도 아니구나!”

 

우리는 짧은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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