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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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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0일 10시 18분 등록

지난 12월 19일 새벽 1시,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공연 연습 때문에 늦게 끝난 둘째 아이를 영통의 학교에서 픽업해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용서 고속도로의 1차선을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앞에 물체가 어른거려 피한다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은 것이 속도가 너무 빨라 제동이 되지 않는 바람에 큰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급브레이크에 휘청대던 차는 한 바퀴를 돌고 4차선을 넘어 가드레일을 크게 박고 다시 한 바퀴를 돌아 멈춰섰습니다.


사고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습니다. 어어어~두 번 하는 사이에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차가 부딪히는 순간, ‘죽었구나’ 싶었습니다. 정신이 돌아오자, '○○아, 괜찮니?' 나는 아이를 살피기에 바빴고, '엄마 괜찮아?' 아이는 나를 살피기에 바빴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우리는 자신이 아니라 상대를 먼저 걱정했던 것입니다. 차 안에 있는 것이 위험해 일단 내렸습니다. ‘너 정말 괜찮니? '엄마 정말 괜찮아?' 우리는 또 한 번 서로를 걱정하며 서로의 몸을 살폈습니다. 차를 보니 참혹하게 망가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만큼 성한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서로의 안전을 확인한 우리는 그제서야 안도와 함께 엉엉 울었습니다. 차가 제어되지 않고 흔들리는 동안 나는 아이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무서웠고 아이는 내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무서웠던 것입니다. 부둥켜 안고 울면서 지난 이십여년 동안 서로 안에 쌓인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져내리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필요 없었습니다.


병원에 10여일 입원해있는 동안 저는 ‘놓아버림’이라는 책을 읽으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기이하게도 그 책은 사고가 나기 3일 전 전혀 예상치 못한 이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책 한 권마저도 시기적절하게 와 주는 우연이 놀랍기만 했습니다. 사고 역시 무수한 우연의 산물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아이가 연습 끝나고 바로 전철을 탔더라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날 아이는 다른 친구의 연습까지 봐주느라 30여분 더 학교에 있었고, 전철역까지 달려갔지만 막 전철이 끊어진 후였습니다. 택시를 타려고 택시 승강장으로 갔지만, 평소와는 달리 기다려도 택시는 오지 않았습니다. 너무 추워서 근처 카페에 들어가 아이는 내게 데리러 와달라고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피곤하니 나갈 수 없다'고 거절했더라면 아이는 콜택시를 불러서라도 집에 왔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고를 일으킨 모든 조합 중에서 하나의 조각만이라도 빠졌다면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결론은 그날 사고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고였다는 것입니다.


'엄마, 내가 괜히 오라고 해서 사고가 났어. 미안해' 울먹이는 아이에게 나는 말했습니다. ‘아니야, 절대 그런 게 아니야.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이 이렇게 멀쩡한 것이 엄마는 너무 고마워. 정말 너무 너무 고마워.' 든 보험이 공교롭게도 '자차'가 빠져있어 차를 그냥 날리게 되었지만 그것이 나의 감사를 앗아가진 못했습니다. 자동차가 1차선에서 4차선까지 회전하는 동안에 뒤에서 차가 한 대로 오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에 옆구리를 받쳤더라면?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살아있음'이 감사했고, 무엇보다 아이가 무사하다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나는 어쩌면 이 세상에 지금은 없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러나 궁극에는 모두가 여기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주변에 점점 죽음 소식이 늘고 있습니다. 몇 십년 후에는 나를 포함해 내가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여기에 살아있습니다. 그 사실이 중요합니다. 주어진 순간을 감사하게 여기며 잘 사는 것만이 진실로 답인 것입니다. 사고를 당해보니 ‘왜 살아야 하는가’ 는 절대로 대답하기 힘든 심오한 철학적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스승의 말대로 삶이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 삶은 우리가 신경 쓰지 않는 시간에도 어떤 힘들이 돕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노력한 것에 비해 초라한 삶을 손에 들고 언제나 조바심과 강박에 시달리던 저는 이 번 사고로 한 가지 룰을 제대로 체득했습니다. 노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려놓는 것’이라는 것을요.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가르치는 그것, 현실과는 너무 먼 것처럼 보이던 그 룰이 사실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삶의 모든 체증은 내려놓지 못해서 생긴 것이라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매 순간 오늘에 거하며 불확실성의 경이로움에 자신을 맡기려고 합니다. 지금부터 내가 무엇을 배우고 익힌다면 그것은 철저히 '오늘의 이 삶을 위한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라, 그대가 이 세상에 있음에 대해. 오늘 세상을 등져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날임을 생각하라.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p128

IP *.64.2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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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0 10:40:32 *.136.209.3

조마조마하며 읽었어요. 두분 다 무사해서 너무 너무 다행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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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0 13:12:51 *.209.202.178

에궁~  큰 일 겪었네요. 다치지 않아서 천만다행입니다.

큰 사고가 로이스의 드라마틱한 문체와 어울려 새롭게 조명되니 울림이 아주 좋아요.

또 다시 새로운 날!

살아있다는 기적을 맘껏 누려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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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0 15:44:10 *.30.254.29

이 한숙 선배님.

정말 큰일 날 뻔 하셨군요.

천만다행입니다.

 

하루 하루가 기적이고

특별함이라는 것을 또다시 배웁니다.

건강 잘 챙기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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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0 16:58:30 *.133.122.91

아--.  이 글을 읽는 순간순간 마저도 감사와 기쁨으로 넘쳐흐르네요.

지난번 문자에서 별 사고 아니라기에 정말 큰 사고 아닌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정말 큰 사고였습니다.

정말 감사와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누님,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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