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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4년 11월 21일 06시 34분 등록

원효와 의상은 비슷한 시대에 태어나 한국 불교의 두 기둥이 되었지만 두 사람은 날 때부터 다른 두 구루의 나무였습니다. 두 사람이 당으로 법을 구하기 위하여 유학을 가면서 생긴 '해골바가지의 물' 사건은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인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에피소드입니다. 진골 귀족 출신이고 반듯하고 냉철한 의상은 그까짓 해골바가지 물 따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당의 화엄종 2조 지엄에게서 배워 귀국한 후, 교단을 만들고 화엄을 전교하고, 해인사, 부석사, 화엄사등 10대 사찰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효는 다릅니다. 잠결에 마신 그렇게 달던 해골바가지 속의 물이 깨고 나 실상을 보니 욕지기나는 물임을 알고 홀연 '마음의 밖에 법이 없음'을 깨닫고 유학의 길에서 돌아섭니다.

어머니가 일을 가다 산기를 느껴 길가 밤나무 아래서 원효를 낳았습니다. 그 밤나무를 그래서 사라수라고 부릅니다. 출생부터가 낮은 곳에서 태어난 원효는 사건이 생길 때 마다 이리저리 휘둘리며 깨닫습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의상을 사모한 산동의 아름다운 처녀 선묘는 죽어서 용이 되어 의상의 귀국길을 지켜주다 영주 부석사 선묘각 속의 영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의상은 사랑조차도 반듯한 스님답게 단정하게 합니다. 그러나 원효에게 사랑은 폭풍입니다. 그는 그저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인의 살맛을 보아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파계하여 요석궁의 요석 공주를 취하여 설총을 낳게 됩니다. 의상은 늘 꼿꼿하고 원효는 늘 흔들립니다. 그래서 의상은 법사가 되고, 원효는 대중의 삶 속으로 깊이 스미는 토착 불교의 '새벽'이 되었습니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 스님은 원효를 성사(聖師) 라고 불러 높였지요. 계율과 선악 따위는 이미 그 위대한 삶 속에서 다 녹아 버렸습니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살게 마련입니다. 밤나무는 밤나무의 삶을 살고 감나무는 감나무의 삶을 삽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저 매일 열심히 자라 해마다 더 많은 밤과 감을 생산해 냅니다. 인간도 그렇습니다. 의상이 원효여서도 안 되고 원효가 의상이어서도 안 됩니다. 원효는 원효여야하고 의상은 의상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에 맞는 삶입니다. 제 생긴 대로 살게 되어있다는 말처럼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위로는 없습니다. 직장에서 또 가정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 내기 위해 모두가 다 똑같은 연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디에 있던 가장 자기다울 때 가장 풍성하게 기여하게 마련입니다. 좋은 감나무인데도 열심히 자신을 키워 감을 주렁주렁 달지 못하는 감나무가 있다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삶에는 정해진 아무런 목적도 없습니다. 삶의 유일한 목적이 있다면 삶 자체입니다. 여행의 목적은 여행의 목적지에 닿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체인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결실만을 위해 삶을 살았다면 그것은 감나무를 키운 주인의 마음이지 감나무의 마음은 아닙니다. 좋은 삶 그 자체가 훌륭한 결실인 것입니다.

 

 

<구본형의 마음편지>(2012.9.28.) 중에서

 

조금씩 정리가 되어갑니다. 이제야 겨우 제 생긴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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