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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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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0일 15시 05분 등록

 

 

 

[짧은 소설]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나는 개가 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나의 개 됨을 인식했던 건 아니다. 머리맡에 있던 안경을 집으려는데 내 손이 안경을 잡지 못하고 툭툭 건드려 안경을 미끄러뜨릴 뿐이었다. 왜 이러지? 잠이 덜 깼나, 싶었는데 평소와 달랐다.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사위가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였다. 그 순간 어디선가 축축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무슨 냄새지?’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중충한 하늘에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냄새였음을 눈치 채자, 이상했다. 나는 냄새에 민감한 편이 아니었다. 시큼한 반찬 냄새도 느껴졌다. 주방으로부터 전해지는 냄새의 성분 하나하나를 맡으며, 무슨 음식인지도 구분해냈다. 나는 네 발로 일어섰다. 내 방인데도 시야가 낮아지니 다르게 보였다. 책상 밑에 쌓아둔 박스들이 눈에 띄었다. 평소보다 지저분하게 보이는가 싶더니, 박스 뒤에 쌓인 책 기둥이 눈에 띄었다. ‘저기 책이 있었구나.’ 새로운 인식이었다. 책상 위 노트북을 켜고 싶지만 손이 닿기는커녕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의자를 계단삼아 뛰어 올라, 노트북 전원을 켰다. 반가운 화면이 열렸지만 무언가를 조작할 수는 없었다. 마우스를 조작하지도, 터치 패드를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것은 개가 되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렷이 인식한 일이었다. 시야가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을 못하는 사람, 아니 개가 된 것이다. 새로운 재능, 이를 테면 놀라운 후각과 또렷한 시력을 발견했지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랐다. 인생이 나를 삼켜먹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 이것이 잘못된 일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했다. 며칠이 흘렀다.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 질식할 것 같기도 했고, 어떤 날엔 콱 죽어버리고 싶었다. 동물들의 로드킬이 단순하고 우연한 사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요상한 생각도 들었다. 힘겨운 몇 달을 보내던 어느 날, 결코 예전으로 돌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찾아왔고, 그래서 결심했다. 개가 된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살아보기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짐했다. 벌써 50년 전의 이야기다. 당시엔 여느 사람들과 다른 이상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살아갈 앞날이 두렵고 혼란스러웠지만, 하루하루를 잘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나는 50년 개의 인생을 참 행복하게 살았다. 아주 나답게, 그러니까, 개답게! 나는 지금 생애 마지막 숨을 내쉬는 중이다. 파노라마처럼 내 삶이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속삭인다. ‘개 같은 삶에도 행복이 존재하는구나.' ()

   

 

[사족]

 

1) 살다보면, 누군가로부터 (부당하게) 소외되거나, 해왔던 일을 (갑자기) 박탈당할 수도 있다. 멀쩡하던 것이 고장 나고 당연히 있어 왔던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인생의 개 같은 일면들이다.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더라도 힘을 내자. 아니 막막하기에 힘을 내야 한다. 위로 한 마디를 건네고 싶다. 어떠한 불운이 닥치더라도 우리가 개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내 사지와 정신이 멀쩡하기만 하다면, 나는 정말 이 말이 위로가 된다.

 

2) 때로는 자기 인생에 대해 낯선 존재가 된 느낌도 든다.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닐까,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그럴 때가 아니더라도 자기 재능 앞에서는 누구나 이방인이다. 나의 재능은 무엇인가, 나의 성격은 어떠한가? 이런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기는 힘들다. 대다수 사람들이 당황하거나 머뭇거릴 것이다. 괜찮다. 자신에 대한 이해는 살면서 더해질 테니까.

 

3) 개가 된 주인공은 시야가 달라졌다. 덕분에 잊고 지냈던 물건들을 발견했고 어떤 사물은 새로운 관점으로 보았다. 인생의 고난도 마찬가지다. 고난을 맞으면 얼마간의 시간을 힘겹게 보내야 하는 건 사실이나, 고난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몰랐던 자신의 일면을 발견하고 타인의 고통에 유대감을 느낀다. 살다보면, 개떡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인생길에서 쓰러지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쓰러져 있는 것은 우리 손해다. 일어서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인생길에서 무언가를 주웠을 테니까.

 

4) 개가 되기 전에 우리 모두 멋지게 살았으면 좋겠다. 인간이 개가 될 리가 없다고? 옳은 말이지만 어느 날, 당신은 더 이상 내일을 맞이하지 못하는 존재가 될 지도 모른다. 개가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일은 추호도 없지만, 언젠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며칠 또는 몇 시간밖에 없음을 발견하게 되는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니 남 눈치 보지 말고, 자기답게 살자.

 

5) 그 어떤 심정이든, 그 어떤 상황에 처했든, 이 한 문장만큼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리라. ‘오늘 하루를 잘 산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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