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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5년 7월 27일 10시 49분 등록

As you waste your breath complaining about life, someone out there is breathing their last. Appreciate what you have.  

불평으로 내 호흡을 허비할 때 그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을 것입니다. 불평을 멈추고 지금 내가 가진 것을 감사하십시오.   

  

마지막 숨, 이라는 말에 붙들려 이 인용문을 오래 읽습니다.  얼마전 암투병 중이던 저의 큰 오빠가 하늘나라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두 주는 그에게 너무나 참혹한 시간이었습니다.  

 

페암말기였지만 그간 받아온 항암치료 효과가 나쁘지 않아 적어도 1-2년은 가족 옆에 더 있을 수 있겠구나, 우리는 모두 조심스럽게 희망을 품었었습니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악화된 오빠의 상황이 잘 믿겨지지 않았고 받아들이기도 힘들었습니다.  

 

지난 2월 오빠는 목소리를 잃었고, 이후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몇 번의 성대수술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수술 후유증으로 오빠는 호흡하는 것이 점차 힘들어졌고 몸의 모든 기능이 빠른 속도로 무너졌습니다. 운전도 가끔 하고 운동과 산책도 열심히 하던 오빠는 코에 산소 호스를 꽂고 목에 뚫은 구멍으로 가래를 빼내는 석션을 하면서 암 병동이 아닌 이비인후과 병동을 떠날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의사는 결국 두 손을 들었고, 오빠는 6월 29일에 서울에서 청주 집 근처의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마지막 두 주 오빠는 호스피스 병동에 머물며 호흡하는 것 자체가 고통인 시간을 보냈습니다. 24시간 눕지 못하고 등만 침대에 기댄 채 앉아 지내야했습니다. 5일날 보았을 때 오빠는 평소의 오빠가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환자이면서도 남 걱정을 자신보다 더많이 하던 오빠였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오빠는 모든 희망을 버린 듯이 보였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앉아 고통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오빠 힘내, 희망을 놓치면 안돼, 평소 이런 말을 하면 걱정하지마, 힘낼게, 하던 오빠가 그날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책에 글씨를 써서 소통하던 것도 중단하였습니다. 같이 가셨던 어머니가 얼굴을 껴안고 애비야, 네가 왜 이러니, 왜 이러니, 하시며 우시는데, 목석처럼 굳어있던 오빠의 눈에서 사정없이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습니다. 피눈물을 쏟으며 어머니와 나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오빠의 손과 발을 하염없이 녹이고 녹일 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빠와 나눈 이 땅에서의 마지막 이별의 대화였습니다. 

  

11일에 내려갔을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있었습니다. 오빠는 더 이상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차가운 손과 발을 쓰다듬고 얼굴을 어루만져도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 호흡 호흡이 오빠에게는 이어가기가 너무나 버거운 짐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민첩하고 부지런한 오빠였습니다. 그런 그가 몸은 커녕 의식조차 맘대로 하지 못한 채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오빠가 아프고 난 이후부터 친정의 누군가에게 전화가 오면 바로 받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가슴이 옥죄는 기분을 다독인 후에야 수신 버튼을 누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4일 오후 10시 반, 두려움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결국 찾아오고야 말았습니다. 진통제 덕에 오빠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이틀 동안 평온한 잠 속에 빠져있다 임종을 맞았습니다.  

 

이제는 전화를 받아도 놀랄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득 문득 오빠가 떠오릅니다. 좋았던 시간보다는 숨쉬기 힘들어 고생하던 마지막 순간의 오빠 모습이 더 떠오릅니다. 대신 숨을 쉬어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던 그 때의 안타깝던 심정이 함께 떠오릅니다. 오빠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문제없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 일이 누군가는 온 몸을 던져 희망해야 하는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누군가의 고통을 보고서야 깨닫게 되는 감사들, 그토록 우리는 미욱하지만 그렇게라도 깨달을 수 있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넘치게 축복받은 자들입니다. 불평을 이어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 자들입니다. 지금 아무 불편 없이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다 가진 자들입니다. 더 이상 원할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오빠는 작년 8월, 교장 타이틀을 마지막으로 평생의 직장인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떨어지지 않는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폐암말기 선고를 받았습니다. 자각증상이 없어서 발견하면 이미 손쓰기 힘든 상태고 진행도 빨라서 생존율이 가장 낮은 것이 폐암이라고 합니다. 사람들 눈에 오빠는 정말 운이 없는 케이스입니다. 그래도 받는 함암치료가 효과를 보여 잠시 우리에게 희망을 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5월초) 오빠를 응원하려고 40여명에 이르는 집안 식구들이 총 출동하여 1박2일 경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크게 감동한 오빠는 가족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병을 이기겠다고,  그래서 10월에 다시 한 번 이런 여행을 도모할 수 있게 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했습니다.  

 

오빠를 잃은 허탈감은 자주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변해 눈에 이슬방울을 만들지만 그럼에도 이번 일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 많아 감사합니다. 오빠는 집안의 종손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고 한 직장을 순탄히 다녔고, 자식들도 유난히 부모를 챙겨서 그런 점에서는 유감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빠 일을 계기로 소원하던 친정 식구들과도 깊은 연대를 회복해서 감사합니다. 번잡하고 어려운 종가로 시집와서 내 몫의 인생을 감당하느라 친정쪽은 잘 살피지도 못하며 살았습니다. 무엇보다 이번에 나의 네 아이들이 외가 의례에 함께 하면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배우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풍광과 햇살이 좋은 선영의 영안당에 오빠 유골을 모시고와서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그곳에는 집안의 조상님들 뿐 아니라 내가 어릴 적 좋아하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나 다섯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서른 다섯 꽃같은 나이에 사고로 먼저간 둘째 오빠가 모두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들 사이에도 굴곡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모든 앙금이 이번 일로 다 씼기고 사라졌음에 감사합니다. 남은 가족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과, 상심이 큰 노모를 잘 돌보아드리는 것, 그리고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을 하나님 사랑 안에서 가족처럼 품는 것이 제게 맡겨진 일임을 깨닫고 감사를 드립니다. 오빠가 남기고 간 것이 결코 적지 않음을 느끼는 이 아침이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눈길을 주기 전까지는 우리는 어떤 존재가 늘 거기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없을 뿐더러 그 가치도 알 수 없습니다. 오빠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오빠의 존재가 내 눈에 들어왔고, 내 시야는 오빠를 둘러싼 사람들에게로 확장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올케, 조카들, 올케가 키운 올케의 친정 동생들, 그들이 이룬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오빠의 형제들, 사촌들, 일가 친척들, 고모들, 삼촌들이 있었습니다.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원가족의 뿌리가 그곳에는 있었습니다. 오빠를 통해 나는 내 자식, 내 형제 만이 아닌 좀 더 확장된 가족에게로 눈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눈을 돌리기 전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았습니다.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아가서 신앙 안에서 내 존재의 진정한 뿌리에 대해서도 통찰할 수 있었습니다. 

  

2년 전 사랑하는 스승의 죽음 앞에서도 똑같은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스승과 오빠의 이른 죽음이 왜 일어난 건지 나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젊을 때는 알지 못하면 신과 다퉜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투지 않습니다. 삶은 어차피 신비이며 그 수수께끼를 나로서는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눈의 가리개가 벗겨지듯 그 일이 선명하게 밝혀질 것이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 역시 나는 알지 못합니다. 결정의 수를 모두 손에 쥐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어떤 것이 나에게 최선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 손에 들려진 제한된 패만 가지고도 감사할 수 있고 다른 어느 때가 아닌 지금 당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매이지 않고 그 일을 딛고 앞으로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습니다.  오빠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계속 괴로울 수 있지만 동시에 오빠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을지를 자신에게 물으며 남은 이들을 향해 내가 할 일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옆에 계신 어머니를 그만 슬퍼하시라며 다그치는 대신 더 자주 안아드릴 수 있습니다. 슬픔이 조용히 길을 비켜줄 때까지 어머니는 계속 슬퍼하실 것입니다. 그런 어머니를 저는 '더 자주' '더 꼭' '더 오래' 안아줄 수 있습니다. 아직 남은 자식들이 있고, 그 자식들이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머니로 하여금 알게 할 수 있습니다. 먹고 싶지 않은 밥을 먹고 건강해야 할 이유를 어머니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여전히 좋은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행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쓰는 것이 상실의 고통 가운데서도 나의 좋은 선택을 돕고 나의 삶을 세운다는 사실입니다. 쓰는 것을 통해 나는 자신을 위로할 방법을 찾고 당한 일을 가장 의미있게 만들 방법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슬픔과 자책 속에서도 감사할 것들을 찾아내고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묻고 쓰면 질문들이 내 안에서 더 선명한 답을 찾아낸다는 것을 저는 경험으로 알고 있고, 이 순간에도 그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물론 나는 오늘 하루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터에 가고 물건을 사고 저녁 외식을 하고.... 하지만 내 계획은 청사진에 불과합니다. 내가 예상치 못한 변화와 길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변화는 멋진 놀라움일 수도 있고 두려운 놀라움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새로운 여행으로 이끌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내 존재와 영혼을 최상의 장소로 이끌 것이라고 믿습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인생수업>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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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일기 6기(8.29-9.26) 모집

감사일기 5기가 8월 1일로 한달 과정을 마칩니다. 연초 저 자신과 5기까지 안내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쁩니다. 그동안 자신 뿐 아니라 저처럼 감사일기가 필요했던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 참 감사합니다. 5기로 종료하려던 감사일기를 형편이 허락하는 한 이번 연말까지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개인적인 여행일정 때문에 두 기수 정도만 더 안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하고 싶었지만 여러 이유로 망설였던 분들의 참여를 특히 기다립니다. 6기는 8월 26일에 시작합니다. 자세한 안내는 여기를 참고하세요.

http://cafe.naver.com/creativitycoaching/2603



2015 변경연 파리&프로방스예술기행(10.8-17), 가을에도 진행합니다.  

이런 여행, 이런 가격에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로이스가 동행하며 일일히 챙겨드리며, <여행(감사)일기쓰기>도 안내합니다.  

여행 안내문은 여기!  http://cafe.naver.com/morningpage/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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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7 13:37:03 *.122.139.253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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