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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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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5일 00시 18분 등록

 

산방 옆 밭에 도라지가 떼로 꽃을 피웠습니다. 밭 한 자락의 무릎 높이 공간이 도라지가 토해낸 보랏빛으로 온전히 물들었습니다. 그 군락 속에 아주 드물게 하얀색 꽃들이 제멋대로 섞여 피어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왜 저 도라지꽃만 보면 이렇게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는지. 초등학교시절 집 옆 개울가 밭에서 여름마다 저 꽃을 보았는데, 그때부터 나는 저 보라색 꽃 앞에서 심란해 했습니다.

 

심란한 마음 지우자고 집안을 확 뒤집었습니다. 대청소를 했지요. 도시에 살 때 입었던 양복, 그리고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옷 등을 과감히 털어 아름다운가게로 보냈습니다. 화장실을 구석구석 치우고, 오직 초 하나만 남겨 두고 거실 좌탁 위에 쌓였던 잡동사니들을 치웠습니다. 한결 산방의 실내가 간결해졌습니다. 밖은 아직 손을 대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손님을 맞기에 덜 누추하다 싶어졌습니다.

 

때마침 아주 오래된 벗이 산방을 찾아왔습니다. 아내 떠나보내고 홀로 산지 벌써 5년이 넘은 친구인데 2년 쯤 보지 못한 사이 차림과 스타일이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나처럼 머리를 길렀고, 푸른빛 면 셔츠에 청바지가 자유로워보였습니다. 내가 감자와 옥수수를 찌고 있는 사이 그는 도라지꽃 곁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나는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렸습니다. 향이 참 좋았습니다. 차 마시며 묵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와인을 시작했습니다. 친구는 변해 있었습니다. 아내를 보낸 이후 비틀대는 시간동안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고정된 세계관으로 세상을 살았는지 알아챘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주도적 문제의식 없이 형성해 왔던 관점과 행동, 습관 따위가 아내를 힘들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결정적 변화는 한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 소위 원나잇스탠드를 가진 이후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솔직하고 대담한 여자였다고 했습니다. 여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준이 너무도 답답해 오랫동안 인도에 머무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그녀는 남은 삶을 인습과 제도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의 실존적 욕망과 가치에 주목하며 살겠다고 결심한 여자라 했습니다. 친구는 그녀와 보낸 유일한 하룻밤을 통해 대단히 큰 통찰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친구에게 무척 적극적으로 이것저것을 요구했나 봅니다. 녀석은 낯설고 어색해서 늘 예의 같은 패턴으로 여자의 몸을 대했답니다. 그런데 답답해하던 여자가 결정적인 한 마디를 하는 순간 망치로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멈춰! 그리고 집중해서 느껴봐! 아주 천천히 당신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그 순간에만 머물러 보라고! 오직 그곳에만 집중해 보라고, 이 아마추어야! 그래야 온전히 사랑을 느끼지!”

 

나는 그가 옮긴 그녀의 말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결 가볍고 자유로워진 친구의 변화가 그 가르침 속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자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지만 귀한 일인지를 나는 이해하니까요. 온전히 자각할 경우 그 자각을 통해 그동안 반복해온 패턴을 과감히 버릴 용기와 힘 역시 자연스레 솟구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해하니까요. 친구가 말을 이었습니다.

몸을 온전히 나누는 사랑은 멈출 줄 알 때 찾아들더라. 온전히 자각하고 집중하고 그것을 느끼기 시작하자, 아 내가 그동안 얼마나 형편없는 사랑을 한 놈인가를 알겠더라. 아내에 대해서도, 내 삶에 대해서도. 이제 더 많이 멈추고 집중하고 자각하기로 했지. 사랑에도, 내 삶에도.”

변화한 친구를 만나고, 사랑에 대한 훈수도 듣는 참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밖에는 풀벌레들 사랑 구하는 노래 가득한 밤, 무심히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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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2 15:27:36 *.136.138.166

오호, 멋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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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3 02:07:47 *.104.94.47

한 여름의 산방은 꿈처럼 그립습니다.

건강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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