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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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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8일 09시 30분 등록

 

 

수잔 손택은 제게, 비평이 얼마나 멋진 작업이고 에세이가 얼마나 지적이고 유려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인물입니다. <해석에 반대한다>를 읽으며 명료함에 감탄했고, 『우울한 열정』의 롤랑 바르트를 추모한 글에 무릎을 쳤습니다. 그녀가 ‘존 굿맨’을 사모했던 에세이는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감수성과 지성을 겸비한 탁월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사망 3주년 기념 평론집 『문학은 자유다』 프롤로그에서, 손택의 아들은 어머니를 이리 표현했습니다. “어머니는 찬미에 뛰어났다. 숭배는 어머니의 제2의 천성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숭배의 달인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존 굿맨’에 관한 글에는, 오랫동안 한 작가(굿맨)의 모든 글을 읽어 온 충실한 독자(손택)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숭배한다는 것은 열등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존감이 높아야 제대로 숭배할 수 있습니다. 거만이나 아집을 뒤집으면 곧잘 열등감이 드러나곤 하니까요. 숭배는 탁월함에 이르는 과정이고, 효과적인 학습의 비결입니다. 탁월한 학습자가 되려면 누군가를 열렬히 추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숭배까지 나아가면 말할 것도 없고요.

 

숭배는 멋진 일이지만, 종종 의존적이고 맹목적이라는 오해를 받습니다. 부당한 오해입니다. 숭배 자체는 의존이나 맹목과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숭배가 오해 받는 까닭은 너무 높이 숭배해서가 아니라, 오직 숭배만 했기 때문입니다. 넘침이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말도, 대부분 넘침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들의 결여가 문제입니다. 균형이 필요합니다.

 

균형은 더하거나 덜어내는 기술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양 극단의 가치를 모두 품고 있다가, 때와 장소 그리고 상황에 맞는 가치를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지혜입니다. 숭배의 반대되는 개념이 무엇일까요? 누군가를 공경하고 우러르면서도 맹목과 의존에 빠지지 않도록 만드는 가치 말입니다. 자기 머리로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주도성이 제격입니다.

 

손택은 일 년 동안 책을 읽지 않고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찬미하고 숭배했던 지성인들의 삶과 사유에 대해 생각하고 글로 쓰면서 자기 것으로 내재화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손택은 지적 영웅을 숭배하면서도 자기 사유의 주체자가 되어 스스로를 이끌었습니다. 탁월한 학습자가 되려면 내면에 두 자아, 추종적 자아와 주도적 자아를 모두 키워내야 합니다.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책임질 줄 아는 주도적 자아와 숭배할 만한 대상에게 흠뻑 젖어들어 모든 것을 흡수하는 추종적 자아가 조화를 이루면 학습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누군가를 100% 숭배함으로 배우고, 자기를 100% 주도하면서 배운 것을 스스로 익힐 때, 비로소 학(學)과 습(習)이 모두 이루어집니다.

 

추종적 자아와 주도적 자아는 서로 다른 먹이를 먹고 자랍니다. 추종의 달인에게 그만 추종하라는 지적은 적절하지 못한 피드백입니다. 자칫 추종적 자아마저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숭배가 주도성을 잠시 잊을 순 있지만, 주도적 자아를 헤치지는 않을 겁니다. 주도성이 숭배하는 마음을 헤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뛰어난 학습자가 되는 길은 여러 갈래입니다. 그 중 하나는 추종과 주도의 모순적 조화에 있습니다. 다음 두 질문에 모두 "예스"라고 대답하기 위해 고민하는 일은 학습력을 높이는 데에 도움 될 것입니다.

추종적 자아. 당신은 추종(숭배)하는 사람이나 저자가 있습니까?

주도적 자아. 그 무엇도 탓하지 않고 스스로 성장에 책임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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