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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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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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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30일 19시 02분 등록

 

두세 주 전에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곳 여우숲을 아끼고 내 삶의 궤적을 지지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꽤 흥분된 목소리로 내게 물었습니다. “혹시 ○○○이라는 사람을 만난 적 있으세요?” “아니오. 두어 번 그 사람 이름을 들은 적은 있지만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나의 대답이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분이 그런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을까요?” 그가 내게 묻는 말이 그랬습니다.

 

들어보니 ○○○이라는 사람은 회갑에 이른 나이로 지역에서 어느 NGO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SNS여우숲을 다녀왔는데 숲 속의 집을 보면서 든 생각이 행복한 삶은 안보이고 온통 돈만 보이더라. 근처에 있는 옛길 복원사업이 성공하여 땅값이 많이 올랐다 하더라. 땅값 비싼 곳에서 뭘 하고 살까? 땅값 올라갔다고 좋아하는 인생, 기다리다가 사라지는 인생살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라는 식의 글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글을 읽은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이것은 그분이 여우숲에 가서 김용규를 만나보고 적은 글이 아니겠는가?’ 신이 난 듯 물었고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현실과 너무도 다르고 황당한 마음에 내게 확인을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스님처럼 살자고 숲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 나는 그간 숲에서 듣고 배운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며 살아왔습니다. 또한 여우숲과 내 삶을 통해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고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역할도 해보고자 애써왔습니다. 관련하여 글을 쓰기도 하고 열심히 강연도 해왔습니다. 때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때로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 나섰습니다. 그렇게 세상 및 이웃과 연결되는 과정에서 나는 몇 번 뜻하지 않게 스캔들에 휘말리는 경험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어떤 스캔들은 누군가의 시기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했고, 어떤 스캔들은 내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입장을 가진 것에서 연유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나의 싸늘한 말투에서 출발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출발에서 나의 진심이나 실재와는 맞지 않는 소문이 일어서고 멋대로 춤을 추고 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왔습니다. 때로는 분노와 참담한 마음이 일었고, 때로는 말없이 속을 끓이며 오해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게는 맷집이 좀 생기기도 했고 더 신중하게 살아가야겠다는 성찰과 결심도 키워왔습니다. 그렇게 겪어보니 말은 곧 흩어지고 스캔들도 가라앉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전과 달리 이렇게 몇 주나 지난 스캔들 하나에 대해 글을 남기려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번 스캔들이 글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말이야 흩어지지만 글은 오래 남습니다. 그래서 글로 새긴 기록은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도 자칫 사실을 왜곡한 채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역사를 통째로 왜곡한 채로 수명을 이어갈 수도 있는 것이 글입니다. 게다가 개인 계정이기는 하나 한 단체의 수장이 올린 글이므로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글이 올라오고 며칠 뒤, 나와 여우숲을 제법 깊게 알면서 동시에 그 글쓴이도 아는 사람들이 글쓴이에게 SNS의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아보았던 모양입니다. 글쓴이는 여우숲에 다녀왔다는 내용과 그 이하에 담은 내용은 전혀 상관성이 없는 글로 여우숲에 인접한 주변 마을을 언급한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그들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글쓴이는 최소한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는 참으로 문장력이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어떻게 보아도 그 둘을 구분하여 헤아리기가 어려운 문장의 구조를 만들어 놓았고, 덕분에 그 숲에 사는 나와 브랜드가 된 여우숲이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 때문에 오해와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지나치게 왜곡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올린 SNS에는 반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결과적으로 자신의 왜곡된 시선 때문에 그들 독자의 시선까지도 왜곡하는 결과를 빚은 것입니다. 왜곡된 시선은 이 대목입니다. “땅값 비싼 곳에서 뭘 하고 살까? 땅값 올라갔다고 좋아하는 인생, 기다리다가 사라지는 인생살이그의 해명대로 이 말이 여우숲에 인접한 마을을 지칭한 표현이라면 나나 여우숲과는 무관하더라도 인접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진심을 비틀어놓는 시선일 것입니다. 이곳의 땅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알고자 한 적도 없습니다. 또한 인접한 마을사람들 중에 그것을 셈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 그곳에 인생을 걸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땅값이 오른다는 것이 좋아할 일이 전혀 아닙니다. 그건 땅으로 투기를 해보려는 사람들을 겨냥해야 옳을 이야기입니다. 설령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그런 데서 뭘 하고 살까 비난하는 일은 회갑을 넘긴 분이 품기에는 경박한 사유입니다. 도시의 아파트 한 평 값은 어떤가요? 우리 동네 한 평 값의 수 십, 심하면 수 백 배할 텐데, 그런 논리라면 거기 사는 사람들을 뭐라 해야 할까요? 이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과 땅은 너무 비싸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뉘이고 쉬게 하는 보금자리임을 무시한 사유로 밖에 읽히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소문으로 내가 마음 아파할 때 잘 아는 영화 제작자가 내게 그랬습니다. “영화판에는 유명세라는 게 있어요. 유명해지면 내야 하는 세금이지요. 아마 이 맑은 공기, 하늘, 바람, 별빛과 달빛을 누리고 사느라 형이 내야 하는 세금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혼잣말처럼 그랬습니다. “담뱃세도 노여운데, 그런 세금마저 내고 살아야 하나?”

이 아름다울 수 없는 글을 쓰며 나는 나 스스로를 향해 짧게 기도합니다. ‘나이 들어가며 더는 내가 왜곡된 세계를 살지 않기를, 내가 겪고 어루만진 적 없는 타자의 삶을 나 역시 감히 왜곡하는 일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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