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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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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8일 06시 33분 등록

지나오고 나면 지나온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된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길 안에 있을 때는 잘 모르던 것을 그 길을 다 벗어 난 다음에야 알게 된다. 높은 곳에 오르면 전체를 보는 힘이 강해지듯 시간적으로도 전체를 다 조망할 수 있는 시간적 포인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학창 시절 전체가 보이고 여기저기 아쉬운 일들이 생각나 듯, 회사를 떠나고 나서야 객관적으로 회사 생활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20년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종종 다른 사람보다 일을 적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었다. 내가 퇴근할 때, 야근을 위해 저녁을 먹고 회사로 되돌아오는 사람들을 볼 때, 수고하라고 손을 흔들어 주지만 내심 '저 입장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라고 느낀 적이 제법 있었다. 나는 좀 게으른 사람이다. 언제나 열심히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꿀벌 같은 사람들과 같은 부류가 아니다. 나는 일의 전체적 윤곽을 알아야 움직이고, 그 일을 좋아하면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안달복달 하지만 다른 일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다. 이것은 바뀌지 않는 내 DNA 여서, 스스로 이런 방식을 존중해 준다. 그래서 나는 늘 나를 부지런히 몰아치는 상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대신 부하직원도 늘 부지런하라고 들볶지 않았다. 우리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고 알아서 그 일을 했다

 

부지런하다는 것은 미덕이다.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필요에 따라 이 근면을 몰아 쓰는 것이 전략적으로 훨씬 더 유용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하자면 작은 댐 같은 개념이다. 매일 부지런히 흐르는 개울물은 자연의 상태여서 맑고 깨끗하다. 그 자체로 좋다. 그러나 그것은 수량이 작아 큰 일을 시키기 어렵다. 종종 물을 모이게 만드는 작은 댐을 쌓아두면 큰 힘으로 쓸 수 있다. 매일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 일은 개울물의 부지런함으로 훌륭하게 해낼 수 있지만 새롭고 창조적이고 집중적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치수의 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기 위해 매일 아주 많은 야근을 하고 있다면 그 부지런함은 격무를 몸으로 때우고 있다는 반증에 지나지 않는다. 끝없는 야근을 종료하려면 지금의 프로세스에 도전해야 한다. 새로운 프로세스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지 않는다. 내가 나서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시키는 일을 마치는 것, 이것이 내 직무의 전부가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잘해내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것 역시 내 직무의 영역인 것이다. 바로 이런 인식의 고양이 주도적 리더십의 핵심이다. 이때 손발의 부지런함은 두뇌의 활동으로 확장되며, 매일 반복되는 저부가가치의 일이 일의 방식을 바꾸는 프로세스의 혁신 프로젝트로 전환된다. 작은 댐을 쌓는다는 의미는 자신이 하는 일의 방식을 바꾸기 위한 자발적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것을 말한다. 인풋의 증가를 통해 아웃풋을 높이려는 노력은 말하자면 매일 야근하는 고역에 해당한다. 그것은 한계가 있다. 혁신과 혁명은 기존의 input-output 고리를 단절하고 전혀 새로운 프로세스로 옮겨 가는 것을 말한다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기준에는 크게 네 가지 수준의 차원이 있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가 초보적 부지런함의 단계다. 말하자면 성실한 초보의 단계다.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해내는 것이다. 그 일을 마감시간에 맞추어 잘 끝내는 것이다. 이 수준이 바로 성실한 일꾼의 차원이다. 이때 생산성은 투여한 노력 즉 INPUT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획기적인 기술의 진보는 없다. 과거가 답습된다.

 

두 번째 차원은 시키는 일, 즉 과업을 달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차원이다. 이 경우는 대체로 성과의 목표는 주어지지만 목표에 이르는 수단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가지게 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차원이다. 기존의 프로세스가 개선되고, 획기적인 효율성이 제고된다.

 

세 번째 차원은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하는 대신 새로운 개념의 할 일을 찾아내는 차원이다. HOW를 바꾸는 것이 프로세스 혁신 수준이며 효율성의 차원이라면 세 번째 차원인 WHAT을 바꾸는 것은 일 자체를 전환하는 것으로 효과성의 차원이다. 이 차원에서는 쉬지 않고 비즈니스 자체가 재정의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가장 창의적인 집단의 구성원들이 가지는 자세다. 예를 들어 구글은 경영자조차 자신이 어떤 비즈니스로 진화할지 잘 모른다. 서너 명으로 구성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팀들에 의해 거듭된 혁신이 만들어 진다. 날마다 이루어지는 혁신에 의해서만 선두를 지킬 수 있고, 이것이 스스로 진화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도는 80% 이상 실패로 끝나고 만다. 표현이 이상할 지 모르지만 그들은 실패를 지향한다. 성공은 오히려 수많은 실패의 부산물이다. '즉각적이고 동적인 대응, 말하자면 매일매일의 광속의 적응력'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창조해 나간다.

 

네 번 째 차원은 일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때 일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웰빙에 기여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나대로 이 네 개의 차원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다. 첫 번 째 차원은 일을 땀으로 보는 노동의 차원이다. 두 번째 차원은 일을 연결과 접속의 차원으로 인식하는 실험의 차원이다. 세 번째 차원은 일이 즐거움이 되는 놀이의 차원이다. 네 번째 차원은 일이 예술이 되는 차원이고 이때 우리는 땀 대신 피를 쏟아 붓게 된다. 직업인은 적어도 두 번 째 차원에 이르러야 일의 고삐를 쥐었다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도달해야 전문가라 불릴 수 있다. 세 번째 차원에 다다르게 되면 축복받은 것이다. 평생 경제적으로 보상받으며 놀 꺼리가 있으니 행운이다. 네 번째 수준에 이르면 고통스럽고 고독하다. 운이 좋으면 영광도 크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천복을 따르는 길이니 인생 전체가 보답하게 된다.

나는 욕심이 많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한 번은 적어도 일을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경험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맛을 영혼에 한 번 각인 시켜야 그 일에 관해서는 하늘로 오를 수 있다. 푸른 하늘에 하나의 심상을 띄워두자. "나를 대표하는 프로젝트 하나를 피로 키우자"

 

<구본형 칼럼> '나를 대표하는 프로젝트 하나느 피로 키워야 한다.' 중에서

 

회사에 다니는 동안 적어도 . . . 그간의 출렁임을 통해 제가 얻은 결론입니다. 뛰쳐나가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이제 나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죽을 힘을 다해봐야겠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아니다 싶으면 그땐 정말 미련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다면 지금 이 공간을 위한 헌신도 충분히 의미있는 투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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