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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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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9일 08시 26분 등록

장례식을 치루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 당신과 업을 함께 하셨던 분들에게 부고를 알리지 못했었구나. 경황이 없던 상황. 비가 추적 내리는 하루 날을 잡아 내려갔다.

“안녕하십니까.”

이제는 생존해 계신 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이곳만 오면 가슴이 먹먹하다. 꼬맹이 시절 설 세뱃돈을 받으려고 들락거렸을 때부터니 적잖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우연찮게도 그분들의 삶은 어머님과 닮아있다. 고질병인 관절염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병마의 시달림. 거기에 자식 복(?)까지 없는 것조차. 이제는 말년의 여정에서 지팡이가 없으면 지탱하지 못하는 구부정한 몸으로 나를 반긴다.

“엄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

“그래, 결국은 그렇게 가셨구나.”

어떤 의미일까. 남은 그분들의 여생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것인지. 당신은 이곳에서 생을 보내셨다. 날마다의 일터. 날마다의 생존의 장. 무엇이 당신을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을까. 아니, 무엇이 당신을 그리도 끝끝내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던 걸까.

 

주어진 아침의 소임이 시작되는 오늘. 날마다 반복되는 것이 일련의 기계적인 행위 이상으로 넘어서기 위해서는 리츄얼(ritual)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하루. 그렇고 그런 날이 되지 않기 위해서 각자의 주문들을 건다. 휘리릭 휘파람소리, 노래 한 소절, 심호흡, 구두끈의 동여맴, 한잔의 카푸치노, 빨간 넥타이, 자기 암시 등. 사람의 감정 하나는 그날의 기분과 일진을 좌우 시킨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씨익 웃음. 오늘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회의석상에서 인상을 쓰지 않으리라. 물론 이 같은 작심을 함에도 그날 하루가 개털이 될 수도 있다. 생업을 감당한다는 것에는 복합적 의미가 내포된다. 책임감, 희생, 고단함, 인내, 극복. 좋아하는 일을 하든 그렇지 않든, 연속선상의 점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단련과 비법이 있어야 한다. 일상을 평범함이 아닌 비범의 특별함으로 전환하는 무언의 도구가.

 

여인이여. 주부의 직함에서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으로 변신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먼저 아이들의 잠을 깨우고 아침밥상을 차린다. 과제물과 준비물 챙김은 기본. 학교 등교. 그리고 이후부터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들. 당신은 무얼 하셨을까? 아쉽게도 나는 본적이 없다. 오직 본인만이 알고 있는 바기에 당신의 입을 빌려 들어볼 수밖에.

 

개수대 설거지거리와 널브러져있는 옷가지들. 뒷정리를 추스르고 출근준비를 서두른다. 거울 앞. 검게 타들은 얼굴. 생계를 걸머진 어깨. 무겁다. 이렇게 살줄 알았니. 나에게 묻는다. 꺼지는 한숨. 언제쯤 형편이 좋아지려나. 읊조린다. 무얼 하며 살고 있지. 어떤 꿈을 좇고 있니. 얼마 후면 작은 아이 때문이더라도 큰집으로 옮겨야 할 텐데. 고개를 애써 가로 저어본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약한 마음이 드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은 현실을 망각하게 한다. 허리에 전대를 두르고 버거운 마음으로 일터로 향한다. 오늘은 어떤 일진이 펼쳐지려나. 진상 고객을 만나면 어쩌지. 내 단골을 뺏기지는 말아야 될 텐데. 퀴퀴한 낡은 골목, 변두리 도로, 색색의 간판과 점포들.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 이 똑같음을 이어온 지가 몇 년째인가. 생업으로, 나의 삶의 귀착으로. 가슴 먹먹한 시절이 박혀있는 곳. 갑자기 소낙비가 내린다. 우산을 챙겨 나오지 않았는데 어쩌나. 가방가계 앞에서 비를 피한다. 언제쯤 그칠지. 이런 날은 손님이 찾아오질 않는다. 말 그대로 공치는 날. 어쩐다. 마수걸이는 해야 될 텐데. 전대 주머니 속을 만지작거린다. 지폐 몇 장. 애가 탄다. 태양이 다시 뜨고 어느새 내려쬐는 뙤약볕. 대구. 이 도시는 정말 찜통이다. 집에서 가져온 보리차를 꺼낸다. 음료수 파는 상인이 구매를 권하지만 그것도 아깝다. 푼돈이라도 아껴야지. 쉴 새 없이 흐르는 땀의 줄기.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친다. 속옷은 벌써 축축. 세수라도 해야겠는데 날은 어느새 어둑해진다. 또 하루가 가는구나. 다리가 아프다. 토요일에 침을 맞으러 가야겠다. 언제쯤 좋아질지. 장을 봐야 하는데 무엇을 살까. 막내가 워낙 입이 짧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으로 해주어야지. 반찬가게를 거쳐 포장마차 아주머니를 지나친다. 오늘 장사는 어땠나요. 그저 그래요. 나처럼 그들도 살아간다. 찬거리를 사들고 집 대문을 여는 순간 쪼르르 달려 나오는 내 새끼들. 엄마, 뭐 사왔어.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사오지 못했는데. 에이. 고단함과 함께 오늘 벌어졌던 짜증과 한스러움이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울컥. 물론 이런 감정표현이 어떤 자식에게는 상처가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지 않나. 자식들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누구에게 얘기를 할까. 안 그러면 다시 미쳐서 병원에 가야 할 수도. 희뿌연 백열등이 흔들리는 부엌. 저녁을 차린다. 화로를 몇 번이나 켜보지만 불이 붙지 않는다. 왜 이러지. 벌서 석유가 떨어졌나. 모든 게 돈이다.

 

아이들을 재웠다. 쥐들은 왜이리 들락날락 거리는 건지. 뒤숭숭하다. 큰애를 대학도 보내어야 하는데. 장판 밑 꼬불쳐둔 통장을 펼쳐본다. 잔액이 얼마나 남았을까. 입학금은 되려나. 이렇게 허리띠 졸라매며 사는데도 왜 별반 나아지는 게 없는지. 내일은 좋아질까. 욱신거리는 무릎. 파스를 붙이고 불면증 약을 삼킨 후 잠자리에 든다. 남편의 얼굴. 야속한 양반. 짐만 잔뜩 남겨두고 그리도 빨리 갈 줄은. 나는 어떡하라고. 행복이라는 사치를 느낄 새도 없다. 이것은 삶이기에. 살아야 한다는 명제가 머리를 가득 짓누른다. 애써 잠을 청함에도 새벽까지 두 척. 자기는 틀린 것 같다. 일어나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고 멍하니 앉아있다. 산다는 것. 즐거움과 기쁨이 아닌 주어진 본능. 거기에 나 혼자도 벅찬데 세 명의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것. 때론 혹으로 때론 가슴에 치미는 한으로, 어미라는 숙제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오롯이 헤엄치게 한다. 끝내는 건너야 한다. 그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내일도 나는 시린 물에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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