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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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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3일 10시 18분 등록


어떤 사람이 콘크리트 벽에 못을 박으려고 한다. 쉽지 않다. 세게 치면 못에서 불꽃이 튀며 튕기쳐 나가고, 살살 달래듯 치면 못이 구부러지고 만다. 그렇게 몇 번 시도하다 보면 짜증이 나고 자격지심도 생긴다. ! 한심하다. 못 하나를 제대로 못 박다니! 맘먹고 운동을 해야 하나, 내성적인 성격부터 바꿔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못 하나 박자고 성격까지 바꿔야 하나, 못 같은 것 안 박으면 되지. 쿨하게 넘긴 것 같아도 마음 속에는 못 박는 데 대한 콤플렉스가 생긴다.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생각을 생각하니까 이런 일이 생긴다. 생각을 생각한다는 것은 같은 원인으로 같은 결론을 도출한다는 뜻이다.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은, 나만 이런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못을 쉽게 박을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그리하여 전동드릴과 칼블록과 나사못을 구입한다.”

 

학원을 운영하던 때 스트레스깨나 받았다. 강사관리나 수강생이 들고 나는 문제, 교재 선정…... 모든 것이 스트레스였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생각은 않고 무조건 스트레스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어느 쪽으로 저질러 버리는 것이다.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보다 맹목적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시간이 훨씬 많은 대신, 선택지에 대한 기대치와 결과치를 분석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배우는 것도 적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설마 나뿐은 아니겠지만,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에서 생각을 생각한다는 표현에 접하고, 그 명쾌한 정의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이 책은 참 신기하다. 소설작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모조리 인생론으로 읽힌다. 소설과 인생이 닮았기 때문일까, 24세에 등단하여 소설로 20년을 채운 사람답게, 그는 소설에 대해서도 인생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안다는 건 경험에서 나오니 사실 아는 건 과거에 안 것이다. 과거에 알았다고 해서 지금도 아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모른다’에서 ‘안다’로 가는 어떤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그걸 가장 잘 표현하는 동사는 아마도 ‘산다이 아닐까? 그런 식으로 보자면, 미래에 어울리는 동사는 ‘모른다’ 뿐이다. 인생문제의 대부분은, 자꾸만 과거 속에서 살려고 하거나,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을 모르거나, 미래를 알려고 할 때” 이다.



나는 이제껏 내가 지나칠 정도로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에만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책을 쓴 지 몇 년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자꾸만 과거 속에서살고 있었다. 명색이 프리랜서로 1인기업을 지향하는 자가 아웃풋을 게을리하다니, 그건 아둔하게도  내가 무슨 책을 썼지하는 과거에 발이 묶인 행태였다. 20년간 숨가쁘게 저술을 계속하며 달려 온 저자와 명백하게 대비되는 모습에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의 소설 어디를 펼쳐도 그가 사회과학은 물론 역사와 자연과학에 대한 책도 섭렵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소설가는 쓰는 일 외에 아무런 일도 만들지 않음으로써 시간관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영업비밀을 응축하여 독자와 후진에게 공개한다. 그의 책은 단 한 글자도 놓칠 것이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하다. 빙산의 일각처럼 표출한 것의 수십 배를 감춰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그 정도는 공개해도 자신의 영업에 아무 지장이 없으리라는 자신감.

 

“이 삶이 멋진 이야기가 되려면 우리는 무기력에 젖은 세상에 맞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만 한다. 단순히 다른 삶을 꿈꾸는 욕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 불안을 떠안고 타자를 견디고 실패를 감수해야만 한다. …… 자기에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해 투쟁할 때마다 이야기는 발생한다. 더 많은 걸, 더 대단한 걸 원하면 더 엄청난 방해물을 만날 것이고, 생고생(하는 이야기)은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바로 그게 내가 쓰고 싶고 또 읽고 싶은 이야기다. 그러니 나는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들이 최상의 자신이 되기 위해서 원하고 또 원하는 세계를 꿈꾼다. 인간은 누구나 최대한의 자신을 꿈꿔야만 한다고 믿는다.



모처럼 흠뻑 빠져서 읽었다. 문장들이 내 안에 들어와 휘젓고 다니며 태만을 꼬집고, 행동을 견인하는 바람에 아팠다가 신났다가 정신이 없었다. 나는 소설을 꿈꾸지는 않지만, 한 분야에서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아우라에 전염되어 기꺼이 고무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끝이 보인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지기 쉬운데 다시 한 번 나의 이야기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된다. 이야기,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위해 얼마든지, 불안을 떠안고, 타자를 견디고 실패를 감수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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