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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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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4일 10시 01분 등록

 

고등학교 1학년 때 동거를 시작한 소년 시절 내 친구의 이야기를 전학 적이 있던가요? 더러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연에서 나는 그 친구 이야기를 합니다. 동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어린 연인이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했을까요? 당신이 그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임신 사실을 알자 그는 다니던 공업고등학교를 자퇴합니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그의 어린 신부와 태어날 아이의 삶을 지키기 위해 그는 저기 남쪽바다 어느 조선소에 견습공으로 취업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청춘시절은 고난의 행군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기술가진 선배들의 속옷과 양말을 빨아줘 가며 용접 기술을 익혔습니다. 기술이 있다면 더 나은 일과 소득을 얻을 수 있고 그것으로 가족을 조금 더 따뜻하게 지켜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그는 그 시절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그는 선배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만큼 기술을 갖추지만 고등학교 중퇴 기술자가 얻을 수 있는 위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세상과 조직의 한계를 알게 된 그는 십 몇 년의 생활을 접고 고향 근처 도시로 향합니다. 돌아오던 길에 들른 한 지인의 중국집에서 배달일과 주방 일을 익히며 살다가 삼십대가 되어 고향 근처 도시로 돌아옵니다. 그는 시장에 중국집을 열고 배달을 하는 사장이 되었지만 돌이키기도 어려울 만큼 큰 좌절을 만나게 됩니다. 가게 문을 닫던 날 그는 만취한 상태로 아버지 산소를 찾아갑니다. 죽고 싶을 만큼 외롭고 버거워서 아버지 묘소의 떼를 뜯어가며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도시 외곽에 버려지다시피한 땅을 얻어 철공소를 차리고 겨우 생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던 중 그는 한 공장의 출입문을 제작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편리하고 견고하며 창조적인 출입문을 완성하여 납품하게 됩니다. 이후 비슷한 업계는 모두 그에게 같은 출입문을 주문하였고 그는 그 역시 훌륭하게 완성하여 납품합니다. 그는 점점 더 다양한 일감을 얻게 되고, 그가 연마해둔 기술은 그렇게 고부가가치의 영역으로 확장되며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는 지금 일부 대기업에서 귀한 손으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외국기업이 설비한 플랜트 시설에 고장이 날 경우 부품을 조달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를 찾는 기업이 많다고 합니다. 그는 외국 회사의 고장 난 부품을 똑같이 깎아서 오차 없이 대체해 낼만큼 정교한 기술자인 것입니다. 한 번 출장을 나가면 상상할 수 없는 대가를 지불받는다고 합니다. 나의 소년 시절 친구들 중에서는 그가 가장 부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벌써 몇 년 전에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더 많은 지식을 쌓아보기 위함인가요? 아니면 자기계발서나 긍정의 심리학 따위를 공부해보았지만 더 많은 돈을 얻기에는, 난세를 살기에는 한계가 있고 혹시라도 그 보완적 솔루션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은 기웃거림인가요? 나는 그 참된 이유가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참된 인생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진짜인 인생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요구 때문에 쓰게 된 거죽과 가면을 벗고 스스로 솟구치는 내 것을 피워 정직하게 살아보겠다는 것이겠지요. 하늘이 주신 내 본래의 모양을 찾아 정직하게 그 모양대로 피고 지겠다는 정신을 따르며 사는 것도 그 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이 돈이나 지위나 외양 등 획일적 기준으로 과도하게 쏠려 있는 지금, 그 길을 가겠다는 것은 그래서 미친 짓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기준을 부수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당당히 살려면 반드시 먼저 가시밭길을 통과해야만 하니까요.

 

요즘 세상에 고등학생이 동거를 했고 아이를 낳았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그런데 60여 년 전에 나의 어머니는 열여덟 살에 시집을 왔고 이듬해에 첫 아이를 낳았다고 들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열여섯 살! 이것만 봐도 나이라는 기준이 시대에 따라 상대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애를 낳는 나이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온전히 제 힘으로 책임지며 사는 삶이냐 아니냐가 더 본질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1짜리 내 친구는 자신의 선택에서 비겁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시선을 두려한 적 없습니다. 도망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피투성이가 되도록 걸어냈습니다.

 

나의 어머니나 그 친구는 인문학 책 한 권 들춰본 적 없이 삶을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지식이 자신을 제 삶의 주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가시밭길이건 꽃길이건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길을 기꺼이 걸어내려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어머니도, 그 친구도 피하거나 도망친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속여먹거나 누군가의 힘을 빌려 제 삶의 굴곡을 대신 펴보려 한 적도 없습니다. 험난하다하더라도 정직하고 당당하게 오직 참된 인생을 살아내려 했을 뿐입니다. 때로 이런저런 책을 뒤적여 삶의 길을 찾아보려 애쓰다가도 나는 친구나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며 부끄러움을 느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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