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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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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3일 12시 43분 등록

야경2.JPG



터키로 날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이 세 번 째네요. 자연과 역사, 문화와 사람 모두를 갖춘 터키는 알게 되면 될수록 매력덩어리여서, 저는 당분간 터키를 사랑하는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먼 길을 떠나는 심경은 아득하기 마련이어서 비행기를 탄 초반에는 잠시 일상이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애들하고 맥주를 마시며 낄낄대며 <용팔이>를 보고 싶었지요. 그 단순하고 게을러터진 일상이 부럽다니 그것만으로도 떠나 온 보람이 있네 하며 웃어 넘기는 마음을 확실하게 여행자 모드로 바꿔준 것은 이 장면입니다.


 

무려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터키에 다 와 갈 무렵 저는 창밖을 내다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지요.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 떠 있는 불꽃더미가 도시를 나타내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아름다운 거에요. 불꽃이 잘고 닥지닥지 붙어있어서 도시의 등불이기보다는 무슨 보석더미 같이 보여요. 미술시간에 학생들이 구슬 한 바구니를 써서 조형을 만들어보라는 과제라도 받은 양, 갖가지 모양의 불꽃더미가 널려 있었지요. 막대 모양, 아메바 모양, 심지어 높은음자리 형태까지 있어서 잔잔한 재미를 누리던 중 왈칵 충격적일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완성판이 나타났습니다.


 

이제껏 보여준 불꽃더미가 학생 한 명의 작품이라면 이번에는 수 천 명 전교생의 작품을 합체해 놓은 것 같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확실하게 밝아진 불꽃이 이글이글 황금색으로 불타오릅니다. 거기에 학생들의 스킬이 업그레이드되었는지 구슬을 이어붙인 목걸이가 여기저기 화려함을 더 하고, 도시 한 복판을 가로지르는 검은 물줄기에 은색 다리가 두 개 선명합니다. 보스포러스! 보스포러스! 보스포러스 해협인 거지요. 제가 이렇게 음률을 붙여 말한 것은 이스탄불의 상징인 보스포러스 해안가에서 호객꾼들이 관광객을 불러모으던 소리가 귀에 선해서입니다. 전에 남대문시장에 가면 골라! 골라!” 하는 목소리가 각인되어 있듯이요. 사실 이 장면을 보는 것은 두 번째입니다. 처음으로 터키에 가던 201210월에 이렇게 써 놓았네요.

 

 

도시 전체가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 같았다. 부드럽게 휘어진 해안선이 구슬목걸이를 하고, 막대모양의 등불로 구획을 지은 도로에는 수많은 개똥벌레가 빠르게 움직이고, 나머지 여백은 온통 황색, 은색, 녹색, 파란색의 전구로 수를 놓았다고층빌딩처럼 높거나 과도하게 화려하지 않고고만고만한 전구들이 낮은 자리에 촘촘하게 틀어박혀 빛나는 모습은 도로와 언덕과 골목을 모조리 반짝이는 보자기로 덮어버린 것처럼 세련되고 정교하고, 민주적이기까지 했다.  재력과 안목을 두루 갖춘 여인의 패물함이 쏟아졌달까, 졸부는 절대 흉내낼 수 없는 고아한 영롱함에,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자를 위한 조명쇼에 나는 탄성을 질렀다. 칠흑같이 어두운 배경 속에 돌연 나타난 불꽃도시가 어찌나 은은하고 화려하고 다정하게 신비로웠는지,  ‘동서, 고금, 성속이 만나는 도시로 일컬어지는 이스탄불의 첫인상으로 충분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등불쇼가 어찌나 훌륭했는지 터키의 관광청이 의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동시에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구요. 생각은 점점 번져나가, 이스탄불의 야경이 누군가 자기를 내려다보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상상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어찌 이것뿐이겠습니까? 작가들이 인생에서 깨달은 금과옥조를 피로 새겨놓은 좋은 책은 물론 앙코르왓 같이 신비로운 건축물로부터 야생화같이 보잘 것 없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있는 힘을 다 해 우리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발견하여 가슴에 새겨주고 의미를 증폭시켜 주는 것이 자기들도 사는 길이요, 그렇지 않으면 죽음(존재없음)’이니까요. 우리의 눈길을 잡아채기 위해서 자기가 가진 매력을 열심히 발휘하고 있을 몸짓들이 순간 show로 읽힙니다. show는 어디에나 있다!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낮은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소나무만 찍는 사진가가 있고, 물방울만 그리는 화가도 있듯이 그것은 발견해 주기 나름입니다. ! 땡땡이만 그리는 일본의 화가도 있네요. 심지어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나는 미생물을 가지고 논다네라고 했다니, 어디에 꽂히느냐 하는 것은 사람의 수 만큼이나 다양하기도 합니다. 제가 이스탄불의 야경에서 아름다움을 향한 찬탄을 되찾았듯이 그대도 무엇에든 꽂히기를 기원합니다. 그대를 향해 구애하고 있는 안타까운 손짓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인생의 재미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통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발전하면 우주의 비밀을 깨우칠 수 있을지도 모르구요. 우선 그대가 어떤 show에 반응하는지 그것부터 찾으세요. 그대의 감탄이 쌓이면 언제고 그대 역시 외부를 향해 show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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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3 12:44:18 *.253.124.141

막 터키에 도착했습니다. 환경이 바뀌어 마음편지가 하루 늦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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