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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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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3일 18시 48분 등록

 

 

마당에 심어둔 매화나무 두 그루가 죽었습니다. 지난해에도 한 그루가 죽어 나를 슬프게 했는데, 올해 남아있던 나무마저 삶을 멈춰 나를 비통하게 했습니다. 모두 봄날에 찬란한 꽃을 피우더니 각자의 여름을 넘어서지 못하고 죽어버렸습니다.

 

저 마당의 매화나무는 내게 무척 의미가 큰 나무들입니다. 이곳 백오산방을 짓던 해에 나는 네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한 그루는 소나무였고, 다른 한 그루는 배롱나무였지요. 나머지 두 그루가 바로 매화나무였습니다. 배롱나무는 나의 스승님이 입주를 기념하고 축하하면서 머나먼 서울에서 싣고 오신 뒤 벗들과 함께 심어주신 나무였습니다. 한편 소나무는 내가 심은 나무입니다. 너무 확 열려있는 산방 입구를 가릴 겸, 겨울에도 푸른빛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조심스레 심었던 나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그루의 매화나무는 나의 거실과 침실 어느 자리에서도 당도하는 봄을 느끼고 싶어 심었던 나무입니다.

 

지난해 봄날 제 꽃을 활짝 피우고 죽어버린 왼편의 매화나무는 봄날 거실의 너른 창을 환한 빛으로 채워주던 나무였습니다. 올 봄 제 꽃을 활짝 피우고 떠나버린 오른편의 매화나무는 침실의 낮은 창 왼편 귀퉁이를 삐죽 제 꽃으로 채워주며 내게 봄을 알려주던 녀석이었습니다. 매화가 피고서야 나는 안도했습니다. 산중에서 혹한의 겨울을 견디며 겨울을 나던 내게 매화는 늘 봄의 당도를 알리며 안도감을 주던 나무였습니다. 그런 나무가 지난해와 올해 연달아 각각 삶을 멈춰버렸으니 그 상실감이 여간 크지 않습니다.

 

임진왜란을 수습하신 서애 류성용 선생의 기매(記梅)’라는 글에도 마당의 매화나무와 관련하여 비슷한 상황과 애틋한 마음이 기록돼 있습니다. 선생은 난중에 온갖 고초를 겪어가며 객지를 떠돌아야 했습니다. 때로는 유약한 임금을 다독이며 조정을 이끄느라, 때로는 참전국 명국과 조선의 병영을 다독이며 전장 곳곳을 바로 세우느라, 때로는 왜국을 상대하느라, 무엇보다 백성을 살피느라그러던 중 몇 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보니 마당의 매화나무가 죽어있었습니다. 선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창가에 매화 두 그루를 심어놓았다. 저절로 싹이 나고 자라서 높이가 한 길에 이르기까지는 참으로 답답하기가 마치 어린아이 자라기를 바라는 듯하였으니, 그것이 대체로 3년이나 되었다. 올봄에 서울에서 고향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미 꽃이 피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대문에 들어서며 서둘러 매화를 찾아보니, …… 모두 마르고 시들어서 다시 살아날 희망이 없는 듯하였다. 놀라 탄식하면서 그 이유를 캐어물으니 심부름하는 동자가 대답하기를 선생님께서 벼슬하러 먼 곳에 가셨기 때문에 매화의 주인이 없어졌습니다. 이웃집의 염소들이 와서 짓밟으니 어찌 매화가 시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종수, <류성용 7년의 전쟁> 239)

 

매화나무가 죽은 까닭을 묻자 집의 머슴이 매화의 주인이 사라졌기 때문이라 답하는 대목을 글로 남기신 선생의 마음을 나 역시 깊게 헤아릴 수 있습니다. 백오산방 마당의 매화가 저렇게 차례로 죽어가던 당시, 내 마음 역시 이곳 백오산방에 깊게 머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살뜰한 마음보다는 내 가슴에 울화를 키워내는 주변 일들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도리에 대한 회의감이 가득했고, 나아가 품은 꿈을 향해 걷는다는 것이 도대체 의미나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마저 들던 때였습니다. 삶이 어지러우니 머무는 공간도 어지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로하던 그 매화나무 두 그루가 차례로 삶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선생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선생은 글의 말미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매화나무를 못살게 군 염소를 미워했다는 고백에 이어) 다음에는 외로이 향기를 풍기는 꽃이 재앙을 만난 것을 슬퍼했으며, 마지막에는 내가 매화를 가졌는데도 능히 보전하지 못한 것을 생각했다. 비웃을 만한 일인 것이다.”

 

선생은 큰일을 하시느라 매화를 잃었다지만, 나는 쇠잔해지는 영혼을 붙들지 못해, 삶의 주인됨을 잃어 매화를 잃었습니다. 매화에게 참으로 미안하고 애석하며 나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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