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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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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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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1일 00시 28분 등록

 

먼 길을 달렸습니다. 통영에서 경주, 경주에서 다시 영월까지, 자정을 넘기지 않고 도착하기 위해 제법 과속을 했습니다. 이곳은 곧 겨울이 올 기세라도 보이는 양 바람이 차갑습니다. 목요일인 줄도 모르고 며칠을 보내다가 경주에서 강연을 마치면서야 알았습니다. ‘, 목요편지갑자기 차가워진 날씨가 흐려진 정신을 후려치는 듯 차라리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통영과 경주에서 각각 세 시간씩 강의를 마치고 이곳 동강에 이르고 보니 몸이 제법 고단합니다. 숙소 바깥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가 마치 내 몸의 처지인 양 맥이 빠져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나는 청주시가 운영하는 한 도서관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내가 태어났고 또 살고 있는 충북 땅의 도서관으로부터는 처음 요청받은 강연이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 나는 그곳에서 맑은 눈을 지닌 어느 중년의 신사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신사는 어느 국립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당신은 경영과 인문의 결합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숲과 인문이 어떻게 만나는지 기대가 된다며 내게 좋은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깊게 호흡했습니다. 그것은 보이는 것만을 보려하는 인간들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숨결이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사흘 뒤 다시 2부 강연으로 이어지는 계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2부 강연은 1부 강연을 들은 분들이 여우숲으로 방문하여 야외에서 강연을 듣는 기획이었습니다. 수요일 아침 나는 숲학교로 올라갔습니다. 교실 앞마루에는 누군가 먼저 와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살펴보니 바로 그 신사 교수였습니다.

 

그 선생님은 기실 지난 (토요일 강연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에 여우숲으로 휘적휘적 올라온 바 있었습니다. 그날은 매달 한 번 12일로 열리는 여우숲의 인문학공부모임 이틀째 날이었습니다. 그 공부모임이 궁금하고 또 참석하시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전날부터 참여한 공부모임 구성원들과 다음 달 계획 등 이런저런 논의와 정리모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눌 때, 선생님의 자기소개는 참으로 강렬하고 신선했습니다.

 

선생님은 평생 대학의 학생들에게 마케팅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당신은 학생들에게 비열한 학문을 넘지 못하는 공부를 가르쳤다는 반성이 일었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조직이 요구하는 스펙에만 몰두하고 그렇게 해서 자리를 잡고 나면 현장에서는 사람의 문제, 보이는 것 너머의 문제는 없는 경영을 펼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했습니다. 이제라도 사람이 중심에 있는 경영학을 가르치고 싶어서 1년간 안식년을 신청하고 여기저기 열심히 인문학 강좌를 듣고 인문학 공부를 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인문학 분야의 박사과정에 입학할까도 생각해 보았다고 했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반성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립대학에서 정년이 그렇게 멀게 남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 교수는 그간의 기득과 관성을 누리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제라도 당신의 강의와 가르침이 비열함에 머물게 하고 싶지 않다 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회의와 우리 사회 곳곳의 세태에 대한 절망감에 사로잡혀 내 지향마저 회의하게 되고 맥이 빠지는 날이 많은 요즘이었습니다. 하지만 평생 비열한 학문을 해왔다는 한 학자의 반성을 들으며 나는 작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여우숲을 발기하고 가장 잘한 일이 인문학 공부모임을 연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수요일 현장 강연에 앞서 나는 선생님께 눈빛으로 내 마음 속의 말을 건넸습니다. ‘선생님의 반성은 늦지 않은 반성입니다. 지금 도처에서 더 많은 기성이 반성의 행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희망을 봅니다. 시인을 만날 예정인 다음 달 공부에 꼭 오십시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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