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2202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10월 30일 16시 51분 등록

내게 여섯 시간 남짓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여우숲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숲을 통해 유아교육을 하고싶어 하는 학생들로 20대부터 60대 까지 다양한 연령입니다. 그중에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준비하고 있는 분도 있고 이미 운영하고 있는 원장 혹은 복무 중인 교사도 있었습니다. 학생 대표와 몇 주 전부터 일정과 강의 진행에 대한 협의를 했습니다. 오후에는 내가 다른 곳에 강연 일정이 잡혀 있어 12시 40분에는 출발해야 하므로 서울에서 최대한 서둘러 출발하여 일찍 당도할 것,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임. 아무리 서둘러도 11시 30분 경에 도착할 듯 하니, 선생 당신이 오후 일정을 소화하고 숲으로 돌아와 못다한 이야기를 밤새 나누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내가 오후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 7시가 될 것임, 다음날 나주와 담양에서 각각 오전 오후 강연이 예정돼 있으므로 밤 10시 경에는 일정을 마쳐야 한다는 정도로 일정을 합의했습니다. 강의비를 지불하고 싶다 해서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내고 싶다면 여우숲의 도서관 건립에 보탤 성금으로 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일행은 일정보다 20여 분 늦게 도착했습니다. 40분만 강의해야 했으나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서 1시간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당연 다음 강연 장소에 늦지 않기 위해 최대한 과속을 해야 했습니다. 오후 강연을 마친 뒤 나는 무척 서둘렀습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아니 정확히는 그들을 얼른 다시 만나고 싶어서 어둠을 총알처럼 갈라 숲으로 돌아왔습니다. 쌀쌀한 밤공기 속에서 밥을 먹고 후다닥 뒷정리를 마친 뒤, 우리는 교실에 둘러앉았습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원두를 갈고 물을 끓이고 손으로 커피를 내려 두어 모금 분량씩 나눠주었습니다. 그들은 정성스레 준비해 온 와인을 천천히 마셨습니다. 이윽고 공부가 시작됐습니다. 수업은 다음 날 먼곳에 예정된 나의 오전 강연을 고려해 각자 하나씩만 질문을 하고, 내가 그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돌아가며 각자 질문을 던졌습니다. 각자의 질문이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어서 였을 것입니다. 그들의 진정한 욕망이 진정한 질문을 품게 했을 것입니다. 나는 내가 아는 것, 혹은 먼저 경험한 것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답했습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대답했고, 일부 질문이 가지런하지 못한 학생의 그것은 내가 다듬어 질문의 내용과 의도가 맞는지 되묻고 확인하여 답해주었습니다.

첫경험이었습니다. 오직 질문만으로 수업을 완성하는 이런 형식의 강의와 공부. 그런데 정말 좋았습니다.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내게는 기쁜 성장의 시간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제대로된 공부의 시간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식민 문화 속에서 시작된 우리의 제도권 교육은 그 본질이 교육받는 자에게 교육하는 이가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하지만 나는 교육의 본질을 반대로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것이 스스로 터져나오도록 돕는 것이라는 믿고 있습니다. 선사들의 가르침처럼 ‘스승은 산파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그 스승이 아무리 탁월하다 해도 스승 자신이 깨친 것을 제자에게 넣어줄 수는 없다는 관점이지요. 스승은 고작해야 임산부의 해산을 곁에서 돕는 산파역할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 교육과 문화, 사회적 제도는 임산부가 스스로 해산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습니다. 먼저 학생 그가 누구인지는 깊게 고려되지 않는 측면이 큽니다. 모두가 오직 공부를 잘해야 합니다. 냉이가 수선화처럼 키를 키워야 하고 그 빛깔도 화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재는 다릅니다. 냉이는 냉이요, 수선화는 수선화입니다. 싹트는 시간도 다르고 번성하는 자리도 다릅니다. 키도 다르고 꽃 피는 시간도 다릅니다. 색깔도 다르고 향도 달라 찾아드는 벌레마저 다릅니다. 당연히 제 꽃을 피우기 위해 찾아가는 삶의 여정과 행로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천편일률에 가까운 잣대(시험)로 당과 락을 나누는 교육방식과 사회 문화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스스로 질문을 품어 그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과 장치는 없습니다. 던져진 질문과 보기 안에서 주로 사유하게 합니다. 당연 스스로 회의하고 사유하고 수련하여 길어올리는 깨침은 부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아들의 교육을 제대로 담당해 보고 싶어하는 이들과 함께 한 밤 숲에서의 수업은 그래서 더욱 좋았습니다. 현실과 부딪히며 품게 된 그 회의와 사유와 질문 만으로도 우리는 정말 깊은 지경을 만나는 수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자정을 향하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차가워진 숲 공기가 차라리 후련하게 느껴졌습니다. 초롱해진 밤 하늘 별을 올려다보며 나는 저들이 아이들에게 훌륭한 스승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훌륭한 산파를 닮은.

IP *.20.202.112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56 완벽주의와 이별하기 위한 노력 file 연지원 2014.11.17 2355
2055 어머니 손은 약손 書元 2014.11.15 2453
2054 꿈꾸던 사랑의 한 가운데 박미옥 2014.11.14 8576
2053 삶은 눈부시면서 또한 눈물겨운 것 김용규 2014.11.13 5808
2052 액션! [4] 한 명석 2014.11.12 2061
2051 경제학적 관점으로 본 인간의 욕망 차칸양(양재우) 2014.11.11 2590
2050 언제 마음이 든든해지세요? 연지원 2014.11.10 2292
2049 오 세브레이로에서 보내는 편지 로이스(旦京) 2014.11.08 2612
2048 빠르게 무언가를 이루어야한다는 욕망 박미옥 2014.11.07 2405
2047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김용규 2014.11.06 2919
2046 챔피언과 칼잡이의 차이 [2] 한 명석 2014.11.05 2089
2045 생물학적 관점으로 본 인간의 욕망 차칸양(양재우) 2014.11.04 3311
2044 얼마짜리 시계 착용하세요? 연지원 2014.11.03 3172
2043 몽당연필 書元 2014.11.01 2450
2042 걱정하지 말아라. 인간은 그렇게 약한 존재가 아니다. [2] 박미옥 2014.10.31 2218
» 훌륭한 스승은 김용규 2014.10.30 2202
2040 전에 한번도 되어본적이 없는 내가 된다는 것 [2] 한 명석 2014.10.29 2692
2039 나는 중산층입니다 [3] 차칸양(양재우) 2014.10.28 2090
2038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보내는 편지 로이스(旦京) 2014.10.25 2770
2037 살아남기 위하여 박미옥 2014.10.24 2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