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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일 08시 04분 등록

이른 아침 사무실. 따끈한 녹차 한잔과 함께 노트를 편다. 뜨르륵. 연필 굴러가는 소리. 볼펜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아련한 노스탤지어의 향수처럼 옛 기억이 소복이 쌓인다. 연필의 용도는 주목적인 기록의 의미에서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문구류가 귀하던 시절. 어렵게 외제 연필을 구했다. 심플한 디자인에다 코로 전해오는 내음이 달라 보인다. 흠~ 미끈한데. 자, 오늘은 동걸 이랑 연필심 부러뜨리기 토너먼트가 있는 날이다.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 마냥 필통에 가지런히 도열을 시킨다. 동무들의 뜨거운 응원 속 단판승부. 비장한 각오와 단련된 내공으로 기를 불어넣는다. 뚝. 그러면 그렇지. 나의 승리. 역시 재료가 좋아야 한다. 로마의 검투사처럼 승리에의 희열감. 아우~

 

연필깎이 기계란다. 은하철도 999마냥 기차 외관에 은빛바탕이 제주도 갈치를 닮은 듯 미끈하다. 사고 싶다. 며칠 동안 어머니를 졸라 드디어 구입. 모두들 부러워하는 눈길. 동그란 구멍에 집어넣고 손잡이를 돌린다. 뭉툭한 연필이 늘씬한 강남 아가씨를 닮은 양 쭉 빠진 몸매로 전환. 자연히 어깨가 으쓱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역시 연필 깎는 도구의 최고봉은 까만색 도루코 칼이다. 깎인 모양이 울퉁불퉁 일지언정, 손으로 한 땀 한 땀 자연스런 정성에 애정이 세록 솟는다. 다시금 부활한 녀석을 노트에 적을 때의 기분은, 기계를 이용한 인위적인 것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거기다 시험 칠 때 침을 묻혀가며 열심히 답안지를 작성함의 추억이란, 달콤한 솜사탕을 먹을 때의 아련함과 같다. 사실 연필은 샤프, 볼펜이란 경쟁자에 비하면 당연히 중량감이 떨어진다. 무한 리필로 공급되는 샤프심과 끝없이 재생산 되는 볼펜이란 도구에 비해서, 어찌 보면 오래전 시대의 유물로까지 여겨지니. 글을 써나가다 보면 녀석은 금세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보낸다. 어느덧 현대인의 습성에 길들여진 나. 그럼에 불편함과 함께 연필 깎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속도경영을 부르짖는 이 시대에 뭐하는 짓이람. 남들에 뒤쳐진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무늬만 연필인 제품도 사용해 보았다. 외양은 같지만 일일이 손으로 깎을 필요가 없다. 샤프처럼 심만 갈아 끼우면 OK. 그럼에도 웬일. 허전하다. 뭘까. 좋긴 한데.

 

몽당연필. 어느새 내 손아귀에 쏙 들어올 만큼 키가 작아진다. 어쩐다. 버리고 새것을 사야 되나. 예전처럼 모나미 볼펜 뚜껑에 끼워서 사용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는 이를 요사인 본적이 없으니. 다행이다. 길이를 늘일 수 있는 용품이 나와져 있단다. 다시 처음의 상태만큼 원상 복귀. 글쓰기가 편해진다. 나무속 기다란 연필심을 품고 있는 이 녀석은 천생 어머니란 존재를 닮았다. 자신의 뱃속에 생명을 잉태하여 탄생케 한다. 누가 알았으리요. 죽은 나무속살 안에 새로운 창조성을 가능케 해주는 흑연이라는 인자가 들어 있었을 줄. 나무는 세파와 외풍 속에 훌륭한 버팀목이 된다. 물론 그 외부의 모습과 단단함의 강도는 각양각색이다. 센 놈, 약한 놈, 부유한 놈, 잘생긴 놈. 이에 태어난 자식들은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나도 저 좋은 환경에서 자랐었으면. 잊지말아야할 점은 그 창조물들은 나무라는, 어머니라는 배를 가르고 나온다는 사실이다. 살을 깎아내고 대패로 밀듯이 껍질을 벗겨 내야만 자신이라는 존재가 출현할 수 있다. 연필은 그 쓰임에 따라 다른 영역으로 확장이 된다. 데생, 크로키, 설계, 디자인 등. 그럴 때마다 나무 외양은 칼로 베어진 상처에서 출혈을 쏟아 낸다. 눈물이다. 땀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쉽게 간과한다. 때밀이 타월로 살갗을 밀다보면 흘러나오는 까만 때처럼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킨다. 하지만 그 외양의 거죽이 벗겨질수록 연필 자신의 향기는 더욱 빛을 발한다. 게다가 그에게는 비장의 무기 하나가 꽁무니에 장착되어 있다. 지우개. 덕분에 감추고 싶은 사건들과 반복되는 시행착오들을 잘도 지워 나간다. 자식의 뒷바라지를 위해 살을 내주는 어머니. 희생을 감내함에도 기억하지 않는다. 사업자금을 달라고, 아침 밥상 반찬 맛이 없다고, 투정을 부리고 불만을 토로함에도 그 솟아나오는 무언의 역사는 끝이 없다.

 

기린의 목을 닮은 양 다시 쭉 고개를 치켜든 몽당연필. 당신의 사랑도 날이 새면 새로운 기운으로 충만 되어 있다. 간밤 패배자에서 다시 승리자의 모습으로, 용기백배하여 전장을 향해 나팔을 분다. 얘들아 빨리 일어나. 아침 먹고 학교 가야지. 잠의 투정에 젖어있는 아이들에게 이불을 걷어 올리며 울리는 당신의 목소리는 세상을 울리는 변주곡이다. 어머니는 요술쟁이인가. 자고 일어나면 그 한숨이 더욱 암연의 세계로 꺼질 때도 있지만, 다시 그 애정과 삶의 깊이는 한 뼘씩 더 솟아있다. 거기다 검정색 속성 외에 색연필처럼 다양한 색깔의 모습이 당신에겐 존재한다. 그러기에 어머니란, 여인을 넘어선 또 다른 전사로 변신한다. 자식을 키운다는 본연의 임무 외에, 오늘의 싸움처럼 피를 흘리는 전쟁터에 나서기도 한다. 부러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처럼 아무 일 없었던 듯 아침을 울린다. 지각하겠다. 준비물은 챙겼니. 연필이란 유형물로 당신은 곁에 존재하였고, 노트라는 인생의 장에 각자의 글들을 써나가게 한다. 그럼에도 그 결과물에 나 같은 이의를 내지르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그 도구의 주인공임에도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당신의 탓으로 돌린다. 나한테 왜 그러셨어요. 남만큼 뒷바라지를 해주셨어야죠.

 

이젠 아무리 애를 써도 되돌려지지 않는다. 초라한 모습의 연장. 작아진 난장이마냥 본인의 패를 다보인 현재. 어느새 젊디젊은 그때의 시절은 온데간데없다. 주름살과 기력이 쇠한 당신은 더 이상 말쑥한 연필 본연의 자태는 아니다. 어떡하나. 아프고 쓰린 기억을 지워나가야 하나. 그럼에도 지우개의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생채기들. 그렇게 당신은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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