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한 명석
  • 조회 수 2058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14년 11월 12일 21시 33분 등록


얼마 전에 고등학교에 특강을 간 적이 있어요. 사람책을 대여한다는 컨셉으로 만남의 자리를 펴 주는 W사의 알선이었지요. 진로특강이라는 이름아래 각 분야에서 모인 강사들이 스무 명이 넘는데, 저는 강사들은 물론 인사말을 건네는 교장선생님보다도 나이가 많은 거에요. 하지만 그래서는 아니고, 강사비가 초저렴해서도 아니고^^ 앞으로는 참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의는 재미있었어요. 외부강사에게 예의를 지키려고 졸음을 참는 모습이 귀여웠고, 생각보다 진지한 친구들도 많았지요. 화장을 뽀얗게 한 여학생 한 명이 제게 멋있다고 해 주기도 했구요. 다만 고등학생들과 워낙 나이차이가 나다 보니, 애들이 겪어야 할 단계를 훌쩍 건너 뛴 노땅의 시선에서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편했습니다. 10년쯤 앞선 선배들이 좀 더 구체적이고 자잘한 디딤돌을 놓아주는 것이 낫겠다 싶었지요.

 

그래서 평가설문지에도 추후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의사표시를 했는데 오늘 다시 실무자에게서 의뢰가 왔네요. 지난 번에 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평가가 좋아서 교사들이 다른 학교에 추천을 해 주었다는 겁니다.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싶으면서도 말을 예쁘게 하는 모습이 좋아보여 가겠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보니, 지난 번에는 한참 전에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는 굉장히 시간이 빠듯해요. 강사를 구하다 여의치 않아서 내게까지 연락이 온 거구나 싶으면서, 통화를 하기 전에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부담이 되었을 실무자의 마음이 짚어졌습니다. 조금은 망설여졌을 꺼고, 어떻게든 성사시키기 위해 듣기 좋은 말을 고르기도 했을 꺼구요. 하지만 막상 부딪혔을 때는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오케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가지 않겠다던 결정이 그다지 강력한 것이 아니었고, 비교적 가까운 곳이라는 사실도 주효했거든요. 이번 통화를 하면서 실무자가 누군가를 설득하는 요령을 익혔겠다는 생각에 혼자 웃었습니다.

 

오늘은 마음편지를 쓰는 날이었지요. 그런데 소설을 읽다가 새벽 4시에 잠이 든데다 감기까지 걸려 머리가 마구 흔들리면서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거예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오후가 훌쩍 넘어갔습니다.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 싶어서 무조건 컴퓨터를 켜고는 막 읽고 난 임승수의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에 밑줄 그어놓은 부분을 타자치기 시작했습니다. 타자를 치다 보니 후다닥 읽었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젊은 저자가 소개된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새겨 읽고 있는데, 바로 그 때 W사의 실무자가 전화를 걸어 온 거지요. 이 책에는 꽤 저돌적인 젊은 저자들의 인터뷰가 많이 실려 있어서 고등학생들에게 말해줄 사례로도 적합하겠더라구요.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실무자가 작심했을 한 걸음과 아무런 대책이 없이 무작정 타자를 치기 시작한 나의 한 걸음이 합쳐진 동시성에 고무되어 고등학생을 만나는 일이 좋아졌습니다. 또 특강에 가서 어떤 생각, 어떤 만남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거잖아요.

 

실은 요즘 아들하고 껄끄러운 중입니다. 갈등을 회피하는 성향이 있는 제가, 작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걸 도마 위에 올려놓고, 필요하면 언성을 높여서라도 해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운함을 품고 있다 보니 점점 할 말이 없어지는 거예요. 겨우 사흘이 지났는데 깜짝 놀랄 정도의 냉기류가 흐르는 것에 당황했습니다. 그래야 아침 저녁으로 나누던 몇 마디, 낮에 건네는 카톡 두 세 번을 안할 뿐인데 장성한 아들이 서먹한 것을 보며 저는 또 알게 되었지요. 가족의 우애라는 것도 절대 저절로 형성되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피곤하더라도 한 번 더 관심을 표명하고 한 번 더 챙겨줄 때,  조금 아니꼽던 것도 사라지고 너무나 익숙한 가족애가 강물처럼 흐르더라는 것을요.

 

무슨 일이든 한 걸음을 떼면 그 다음에는 훨씬 큰 국면이 열립니다. 그러니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 보이는 목표라도 오늘 묵묵히 한 걸음을 떼어 놓은 사람이 승자입니다.




*** 안내: 글쓰기 입문과정 ***


제가 운영하는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http://cafe.naver.com/writingsutra 카페에서

입문과정 22기를 모집합니다 

나를 들여다보고 거듭 확인함으로써 최고의 나를 만나게 해 주는 참 좋은 글쓰기에 그대를 초대합니다.






IP *.230.103.185

프로필 이미지
2014.11.12 21:59:08 *.230.195.61

글 읽고 '액션'의 의미, 재미있게 되새겼습니다.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11.13 11:09:19 *.230.103.185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아무 생각없이 쓴 글인데  재미있게 읽어주셨다고 해서 위안이 되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11.13 12:59:06 *.148.96.27

액션...............    큐  ^*^

프로필 이미지
2014.11.13 20:35:44 *.230.103.185

옛썰!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56 완벽주의와 이별하기 위한 노력 file 연지원 2014.11.17 2354
2055 어머니 손은 약손 書元 2014.11.15 2452
2054 꿈꾸던 사랑의 한 가운데 박미옥 2014.11.14 8572
2053 삶은 눈부시면서 또한 눈물겨운 것 김용규 2014.11.13 5807
» 액션! [4] 한 명석 2014.11.12 2058
2051 경제학적 관점으로 본 인간의 욕망 차칸양(양재우) 2014.11.11 2589
2050 언제 마음이 든든해지세요? 연지원 2014.11.10 2292
2049 오 세브레이로에서 보내는 편지 로이스(旦京) 2014.11.08 2612
2048 빠르게 무언가를 이루어야한다는 욕망 박미옥 2014.11.07 2403
2047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김용규 2014.11.06 2919
2046 챔피언과 칼잡이의 차이 [2] 한 명석 2014.11.05 2088
2045 생물학적 관점으로 본 인간의 욕망 차칸양(양재우) 2014.11.04 3309
2044 얼마짜리 시계 착용하세요? 연지원 2014.11.03 3171
2043 몽당연필 書元 2014.11.01 2448
2042 걱정하지 말아라. 인간은 그렇게 약한 존재가 아니다. [2] 박미옥 2014.10.31 2218
2041 훌륭한 스승은 김용규 2014.10.30 2202
2040 전에 한번도 되어본적이 없는 내가 된다는 것 [2] 한 명석 2014.10.29 2691
2039 나는 중산층입니다 [3] 차칸양(양재우) 2014.10.28 2089
2038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보내는 편지 로이스(旦京) 2014.10.25 2769
2037 살아남기 위하여 박미옥 2014.10.24 2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