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한 명석
  • 조회 수 140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5년 10월 7일 14시 13분 등록

SAM_6985.JPG



SAM_7014.JPG




여행에 익숙해질수록 커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해변 하나, 음식점 하나를 가더라도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관광코스가 아니라 현지인이 즐겨 찾는 곳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유명관광지는 일단 너무 상업화가 되어서 경비가 비싸기도 하지만 닳고 닳은 상인들밖에 접할 길이 없는데, 현지인이 즐겨 가는 곳을 찾으면 진짜 사람 사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내가 발굴한 나만의 경로가 생기니 경비는 절반, 맛은 두 배, 기쁨도 두 배가 되는 거지요.

 

45일간의 여행도 이제 후반이라 갈수록 아쉬운 탓인지 애틋함이 더해집니다. 엊그제는 아테나신전으로 유명한 아소스에 갔었지요. BC 540년에 세워졌다는, 도리아식 신전은 몇 개의 기둥만 남았지만(그러니까 유명한 파르테논신전과 같은 방식입니다), 무너진 성곽에도 위엄이 있었고, 인적드문 고대도시의 아크로폴리스를 독차지하고 앉아있는 시간은 황홀했습니다. 청명한 초가을 하늘 아래 짙푸른 에게해의 해안이 그림같았지요. 그 바다에서 경비정이 난민의 구명정으로 보이는 배를 저지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지만 이 자리에서는 그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아테나신전 아래 기가 막힌 마을이 숨어 있었습니다. 손가락 마디만한 물고기가 떼로 몰려다니는 맑은 해안을 딱 열 집이 향유하고 있는 거에요. 가정집이라곤 없이 모조리 식당을 겸하는 펜션인데 오래된 돌집의 기품이 곁들여 아주 고급스러웠습니다. 꼭꼭 숨겨두었다가 아는 사람만 찾아올 것 같은, 감춰진 해안마을이 신비로웠는데 오늘은 더 좋은 곳을 발견했습니다.

 

아소스에서 조금 떨어진, 전통 올리브유로 유명한 마을 아다테페에 가는 길목의 큐츄쿠유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지역 깊숙이 들어왔다 싶은데 촌스럽지가 않습니다. 단정하고 깔끔한 거리에 이미 반했는데 드넓은 해안이 좌르륵 펼쳐지는 통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해안이나 마찬가지로 식당이며 펜션이 포진하고 있지만 무식하게 바다를 독점하지 않았습니다. 요트와 어선이 나란히 세워져 있고, 관광객이 오가는 길 옆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합니다. 현지인과 관광객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생선요리가 만원에서 만오천원 선으로 그리스풍의 외양에 비해 음식값도 싸네요. 터키의 국민차 차이1리라(500)인 것에 놀라 딸과 동시에 소리칩니다. “현지인이 오는 곳이닷!”

 

해변을 따라 걸어가니 풍경이 좀 더 소탈해집니다. 번화한 식당가가 끝나고 제방에 앉아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보일 뿐, 10월이라고 해도 아직 짱짱한 햇살 아래 빛나는 바다가 모조리 내 차지입니다. 나도 제방에 앉습니다. 갖가지 모양의 다슬기가 붙어있는 바위 위로 찰랑이는 물결이 곱습니다. 물속에 깔린 갈색 조약돌 위로 일렁이는 햇살이 어찌나 찰진지 바닷물이 꿀물같이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이제껏 바다를 보면서 유리나 보석을 실감한 적은 있어도 꿀물을 떠올리기는 처음입니다. (그 색깔과 밀도 탓이겠지요) 저 멀리 부드럽게 휘어진 해안선 꼬리에 달라붙은 집들이며, 끝없이 피어나는 뭉게구름 아래 무한한 바다가 너무 좋아서 가슴이 아립니다. 드디어 참지 못한 딸이 바다로 뛰어드네요.

 

더블베드 하나와 싱글베드 하나가 있는 커다란 방을 100리라(5만원)에 얻었습니다. 이 가격에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를 누리다니 기분이 마구 날아갑니다. 이 곳이 6시간이 늦어서 새벽에 일어나 발코니에 앉아 마음편지를 쓰다보니 부드러운 여명과 아침이 시작되는 풍경이 덤으로 따라오네요. 부지런한 상인이 장사 준비를 하고, 할 일 없는 개가 갈매기를 쫓아다니고, 서서히 열리는 하늘 아래 여전히 남실거리는 바다가 한없이 좋아서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을 여행으로 초대하고 있는 중인데, 조금 마음이 동했는지요? 보통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 경비, 안전과 소통에 대한 두려움 정도가 아닐지요? 성수기가 지난 터키에 국한된 얘기지만 생각보다 안 든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구요, 저도 영어가 능숙하지 않지만 언어 외의 소통 또한 참 재미있습니다. 앙카라의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 하나 말씀드릴까요? 잠시 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데 히잡을 쓴, 자태가 아름다운 여성이 내 앞의 유물을 살펴보고 있는 거에요. 사진의 배경에 그 여성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 카메라를 드니, 눈치를 챈 그녀가 한 번 두 번 몸을 뺍니다. 드디어 세 번째 시도 끝에 성공하고는 손을 들어 오케이싸인을 해 보이니, 그녀가 백합처럼 환하게 웃어주네요. 너 참 집요하다, 하지만 너의 집요한 관심이 싫지 않네... 뭐 이런 뜻으로 느껴지더라구요.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의 소통이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구요. , 이런 기분을 느끼려고 들이대는 거구나 싶었으면 말 다 했지요.^^

 

이제 곧 자의반 타의반 시간이 무진장 남아돌아가는 은퇴세대가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를 개발하고 싶습니다. 고급진 지중해 해안부터 원시자연의 비경까지 무궁무진한 저력을 갖고 있는 터키를 몇 군데 명소만 찍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고, 한 걸음 더 들어 가 보라고 강변하고 싶습니다. 가이드북이 알려주는 안전한 길만 가는 것이 아니라, 내 발로 낯선 경로를 탐험할 때 비로소 나만의 지도가 만들어진다고 보여줄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 제가 운영하는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 카페에

      좀 더 많은 사진이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writingsutra/13089

 


IP *.65.146.181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56 누군가의 무엇 書元 2015.09.19 1293
2055 가을 예찬 연지원 2015.09.21 1623
2054 버킷 리스트를 대하는 남녀의 차이 file 차칸양(양재우) 2015.09.22 1851
2053 흑해의 명산 카츠카르Kackar file 한 명석 2015.09.23 1564
2052 희망이라 믿었던 문을 닫을 때 김용규 2015.09.25 1584
2051 스물두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결혼기념일 재키제동 2015.09.25 2151
2050 일급 저술가의 한국현대사 연지원 2015.09.28 1330
2049 <추석특집> 노화(老化)가 멈춰버린 나 차칸양(양재우) 2015.09.29 1358
2048 <사진일기>싸이가 백설공주와 동격이라구? file 한 명석 2015.09.30 1461
2047 부모교육: 모든 것이 고이 접혀 있으니... 김용규 2015.10.01 1431
2046 스물세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말에 대한 생각 재키제동 2015.10.02 1648
2045 소로우의 아침 書元 2015.10.03 1244
2044 변경연, 신발끈을 묶다 연지원 2015.10.05 1695
2043 나의 가치를 높여라, 생존부등식 차칸양(양재우) 2015.10.06 1767
» 생각보다 안 드네 file 한 명석 2015.10.07 1400
2041 내가 만난 어느 기업가의 정신 김용규 2015.10.08 1345
2040 스물네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새 책 재키제동 2015.10.09 1319
2039 부부는 부창부수하며 산다 연지원 2015.10.12 2329
2038 불황시대의 리더십이란 차칸양(양재우) 2015.10.13 1420
2037 길을 떠나면 내가 보여 file 한 명석 2015.10.14 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