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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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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8일 18시 29분 등록

 

주말과 휴일을 제주에서 보냈습니다. 월요일에는 여수에서 머물고 화요일에는 순천대학교에서 두 번 강연을 했습니다. 순천대학교에서 보낸 화요일이 참 특별했습니다. 순천대학교에서는 파루인문학당이라 이름 붙은 인문학 강연이 매달 열리는데, 매번 대략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한다고 합니다. 학생 200여명과 교수 및 교직원 50여명, 그리고 나머지는 지역의 주민과 인사들이 찾아오는 학당이랍니다. 극장식 강당을 가득 채운 청중은 모두 높은 집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두 시간 가까운 강연이 흐른 강당은 따뜻한 호흡과 열기로 채워졌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는 나를 초대하신 인문예술대학장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몇 분 인사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였습니다. 식당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먼저 내·외부 공간에는 우리의 근대적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낡은 블록 담장에는 그려져 있는 벽화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순천지역에 대학병원이 유치되기를 시민 모두가 염원한다는 글을 포함한 그림이었습니다. 좁은 대문을 들어서자 손바닥만큼 작은 정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랗고 하얀 꽃을 피워낸 국화 화분이 가지런했습니다. 너무 작지만 주인의 정갈한 손길이 느껴지는 정원이었습니다. 쪽마루로 연결된 방방마다에는 손님이 가득했습니다. 손님들의 활기찬 소리가 주방에서 풍겨나는 음식냄새와 뒤섞여 좁은 마당으로 왁자하게 쏟아지는데 그 풍경이 참 정겨웠습니다. 70년 대 시골에서 하숙을 치셨던 어머니의 집 마당과 저녁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방에 들어서 함께 자리한 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책에 사인을 하고 선물로 드렸습니다. 한 분은 장관을 역임하고 전직 총장으로 재직하신 분이었고, 다른 한 분은 시장을 역임하신 분으로 소개를 받았습니다. 나는 놀랐습니다. 지역의 대학이 개최하는 인문학당이 성황을 이루는 것에도 감동했지만, 지역의 원로와 인사들이 그런 공부를 적극 지지하고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참 반가웠습니다. 상다리가 휘도록 차려진 남도의 음식이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들어왔습니다. 남도음식은 이번에도 감동이었습니다. 밥과 국과 찌개, 전과 나물, 고기와 생선 어느 것 하나 젓가락을 이끌지 않는 음식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또 한 사람이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학장님이 형이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소개를 받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이 대학의 인문학당을 후원하고 있는 기업의 대표라는 사실을. 인문학당에 파루라는 명칭을 단 이유를 명함을 받고나서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기업의 이름이었습니다. 매달 열리는 인문학당에 초대하는 강사들의 강연료 등 경비 일체를 이 분의 회사가 지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 기업가에게 진심으로 감탄과 경의를 표했습니다. 서로 시간이 많지 않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으나 말수가 적은 이 CEO에게서 나는 분명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업을 세우고 이끈 지 23년 됐습니다. 농민들이 비닐하우스에서 농약을 치다가 농약중독에 목숨을 잃거나 병을 얻는 모습을 해결하려는 기술이 시작이었습니다. 지금은 태양광과 인쇄기술을 이용한 사업 포트폴리오로 확대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다른 이가 생산한 물건을 파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철학을 지켜왔습니다.” 함께 있던 분들이 이해를 돕는 설명을 보탰습니다. “파루는 향토기업입니다. 수출을 많이 하고 있고 그래서 본사를 서울로 옮기라는 조언과 요구도 많지만 대표님은 순천을 고집하고 있지요. 향토기업으로서 지역의 대학이 사람다운 인재를 배출할 수 있도록 인문학당을 지원하고 많은 장학금을 내는 기업입니다.”

 

서둘러 저녁 식사를 마무리하고 작별한 뒤 나는 저녁 강연을 하러 다시 경영대학원 최고위과정으로 향했습니다. 30여명의 사업가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나는 경영에 숭고한 철학이 있어야 경영자도 직원도 지역도 행복해진다는 말을 몇 번이고 강조했습니다. 이윤추구가 기업의 목적이라는 흔한 정의는 반쪽짜리라고 역설했습니다. 이 정의가 포함해야 할 질문과 답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돈 벌어서 무얼 할 것인가?’ 파루라는 회사와 그 기업의 CEO, 그리고 파루인문학당과 그것을 이끌거나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같은 기업과 인사와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는 세상을 그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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