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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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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4일 19시 22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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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날, 미뤄두었던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에 갔습니다. 일전에 앙카라 문명박물관에 너무 심취해서인지 영 공부가 하기 싫더라구요. 제 심경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박물관은 리모델링을 하는 중이었고, 개관은 했지만 일부 차단된 곳이 있어 유명한 알렉산더대왕의 석관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째 전시한 순서도 일목요연하지 않은 것 같고 집중이 안 되어 빨리 훑어보고 나왔습니다. 그 날 제가 고고학박물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기념품점 앞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였습니다.


 

딸이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엄청 애지중지하지만 저는 중립적인 편으로 고양이가 싫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데면데면하다고 하면 적당하지요. 그런 제게도 한낮에 길 한복판에서 죽은 듯이 늘어져 자고 있는 고양이는 찬탄할만 했습니다. 경계심이라곤 가져 본 적이 없는 평화를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고양이는 아기들처럼 사랑스러웠습니다. 터키에는 고양이가 참 많습니다. 상가와 공원 어디를 가나 고양이가 사람들과 공존하고 있지요. 고양이들은 묶여 있지 않으면서도 자기 영역을 떠나지 않고, 사람들은 고양이를 돌봅니다. 고급스러운 애완동물이 아니면 지저분하고 탐욕스러운 길고양이로 양분되는 우리네 풍토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오랜 문화가 고양이의 속성까지 바꿔놓은 것 같아서, 처음으로 터키에 갔을 때 제일 인상깊었던 장면의 하나입니다.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그 날 단잠에 빠져 있는 고양이들은 너무 예뻤습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존재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스러움의 극치라고나 할까요? 그 당당함과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주변 공기를 마냥 푸근하게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박물관을 나와 슬슬 걷다가 한 디저트 전문점에 앉았습니다. 손님을 환대하는 터키에는 후식문화가 발달해서 온갖 과자들이 개발되어 있는데요. 이 후식을 delight라고 한다니 참 듣기 좋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지 제법 비싸기도 하고, 엄청 달아서 자주 먹지는 않지만 어쩌다 한 번은 꼭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당연히 차이와 함께지요. ‘차이는 그냥 흔한 홍차인데 터키에 오면 모든 사람들이 모든 장소에서 매번 차이를 마시고 있으므로 여행자도 덩달아 중독이 됩니다버스를 타고가다가 휴게소에라도 들어갈라치면 여기저기서 각설탕을 녹이느라 챙그랑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터키에서는 당연히 튤립 모양의 잘록한 유리잔에 담긴 발그레한 차이를 마셔야지요. 창너머 보스포러스 해협이 보이고, 온갖 행색의 사람들이 오가는 가운데 역시 온갖 색깔로 단장한 트램이 부지런히 오갑니다.


 

다시 길을 나서니 곳곳에 시밋을 파는 장사꾼들이 보입니다. ‘시밋은 베이글 맛에 깨를 묻힌 빵으로, 국민 바케트 에크멕과 함께 터키를 대표하는 두 개의 빵입니다.  둘 다 대부분 1리라(환율에 따라 400원에서 500)입니다. ‘차이1리라면 됩니다. 가장 작은 단위인 1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터키에 오면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저는 위 글에서 고양이, 딜라이트, 차이, 에크멕, 시밋을 언급했습니다. “박물관과 바다, 트램도 들어 있고 넉넉한 풍토도 들어 있지요. 여행의 마지막날이었으므로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아쉬움을 달래다가,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터키를 좋아하는지 자문해 보았을 때 순식간에 나온 대답들입니다. 열 개를 채워볼까 하는 생각에 세어보다가 타일과 카페트가 빠진 것을 알게 되었구요. 요즘 죽 터키 얘기만 하고 있어서 여행병, 이국병에 걸린 사람이라 여기실까 걱정되어 질문해 봅니다. 우리에게 몇 백 년 된 전통이면서 아직도 일상을 점령하고 있는 물품이나 행위가 무엇이 남아 있는지요? 의식주와 일상생활이 빠르게 변화되고 있어서 대답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빠른 변화의 이면에 엄청난 좌절과 분노가 숨어있다는 징표에, 우리는 자주 접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결국 보게 되는 것은 자신입니다. 늘 새로움을 탐하고, 도전에 목마르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책을 썼으되 주목받지 못했고, 글쓰기강좌를 하고 있으나 영향력이 희박한 식이지요. 그러면서 또 변화를 꿈꿉니다. 이런 저를 극명하게 바라보며 진심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생긴 꼬라지와 행동양식이 수치스러웠지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가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진 순간 돌아가서 살아내야 할 일상이 또 다른 여행으로 느껴진 것입니다. 그 정도로 낯설고 신선하게 여겨진 거지요. 이렇게 에 대한 낯설게 보기가 되고, “나들인 우리 사회에 대한 가슴 아픈 분석이 행해지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에 대해 짐짓 염려스러운 평가를 할 수 밖에 없지만, 어디에선가 본 나를 처절하도록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치명적인 실수는 피할 수 있다는 구절로 위로를 삼으며 또 그렇게 새로운 무대를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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