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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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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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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8일 00시 57분 등록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죽음’을 그렇게 홀로 감당할 수 밖에 없는 것.

중환자가 된다는 건 어쩌면 고립되고 소외된 상태에서 자신의 병과 죽음에 대해 제 3자가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 김형숙,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

 

“병실 하나만 구해달라.” 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말기암 선고를 받았는데 호스피스 병실을 못 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준비해야 할 사항들을 알려주고 병원에 오면 도와 줄 준비를 해 놓았는데, 이상하게 한 달이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일상에 파묻혀 잊어버리고 지냈는데, 그가 나타났습니다.

 

“번거롭게 부탁만 드리고 못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궁금했습니다. 어머님은 괜찮으세요?”

“임종하셨습니다. 지난 주에 장례를 치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요관암입니다. 요로결석이라는 의료진의 말을 믿고 간단한 수술을 진행했는데, 알고보니 요관암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른바 Big3 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가장 유명한 대학병원을 옮겨다니며 치료를 받았고, 최첨단 암치료기라는 비싼 토모테라피 시술도 20여 차례나 받았습니다. 2년 동안 적지않은 비용을 들여가며 노력했지만, 어머니는 차도를 보이지 못하고, 중환자실에서 임종하셨습니다.

 

“통증을 참기 무척 힘드셨을텐데..”

“가슴이 아파서 눕지도 못하고 너무 힘들어 하셨어요.”

"임종하실 때 가족들과 대화는 하셨나요?”

“전혀 못했죠.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전혀 없으셨으니까요”

 

반복되는 항암치료는 환자의 체력을 급속도로 저하시킵니다. 최첨단시설과 장비를 자랑하는 병원으로 옮기면, 초일류 병원에 걸맞는 최신장비와 검사가 환자를 기다리게 마련입니다. 몸 여기저기 주사줄을 주렁주렁 달고, 금식을 하고, 이리저리 실려다니며 검사를 하고, 피를 뽑고, 치료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검사를 하며, 환자는 지칠대로 지치게 됩니다.

 

병원을 옮겨 다니며 고생하셨을 할머니..정작 임종시에는 가족들과 이별인사도 나누지 못했다니...한 번도 본적 없는 할머니의 통증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렸습니다. 호스피스로 모셨으면 그나마 통증없이 편안하게 가셨을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좀 더 빨리 오지 그러셨어요?”

“그러고 싶었지요. 그런데 동생들이 반대가 너무 심해서요.”

“뭐라고 하는데요?

“호스피스 애기만 꺼내면 ‘왜? 엄마 버릴려고?’ 하니까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버려진 것은 할머니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자식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심리적 만족을 위해, 환자가 스스로 죽음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뺏은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스피스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호스피스에 대한 편견이 있는 가족들을 설득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은 없는지,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오히려 저에게 물었습니다.

 

“일년에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 줄 아세요?”

“그중에서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암이라는 진단이 나오면 누구에게 먼저 말해주어야 합니까?”

“가족 중에 일부는 호스피스를 원하고, 일부는 반대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물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분하게 되묻는 그 질문속에서 호스피스 의사의 고뇌와 어려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매년 7만명입니다. 그중에서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10% 정도. 미국은 암환자의 50%가 호스피스를 이용합니다. 암에 걸리면 미국에서는 본인에게 말하지만, 우리는 가족에게 먼저 얘기를 하지요. 가족은 환자에게 병을 숨깁니다. 호스피스 이용에 대해 만장일치가 되지 않으면 집안싸움이 일어납니다. 반대했던 가족이 병동에 와서 소리치거든요. ‘누가 울 엄마 여기 버렸어?’ 하구요.”

 

호스피스 이용이 환자와 가족에게는 ‘또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도로 말해주는게 좋을 것이라며, 결국 ‘가치관의 문제이고 정답은 없다’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설명은 차분하고 힘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현장에서 많이 갈등하고 고민했던 내용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선생님 같았습니다. 호스피스가 가진 장점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이 혹시나 작은 가능성이라도 잡기 위한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을 대신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느낌이었지만, 의료진도 갈등하는 존재라는 것이 역설적으로 그를 더 신뢰하게 했습니다.

 

자기결정권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던 차에, 다행히 책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중환자실 간호사로 19년간 일했던 간호사가 쓴 책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학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하고,  호스피스 케어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품위있는 죽음이지만, 모두에게 그것이 정답이라고 단정 지을 자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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