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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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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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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1일 00시 09분 등록

여우숲은 오늘 된장을 담급니다. 옛부터 장은 12地支 중 말일(午日), 특히 많은 午日 중에서도 정월 말 날에 담그는 것이 좋다 했습니다. 정월에 장을 담그는 이유는 아무래도 봄 기운이 본격 올라와 자연 발효의 여건이 싹트면서도, 아직은 미생물이나 파리같은 곤충들의 활동이 냉기의 제약 속에 있어 위생적으로 발효를 준비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 날을 택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아무래도 옛어른들이 열두 동물 중 말의 피가 가장 맑다고 판단한 상징성에 있을 듯 합니다.


뱀의 날인 어제 여우숲 영농 이사를 맡고 계신 형수님과 또 다른 형수님 한 분과 함께 미리 메주를 씻고 소금물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나는 소금을 물로 녹이는 일을 도왔습니다. 소금을 채반에 받히고 깊은 땅 속에서 퍼올린 물을 바가지로 조금씩 부어 소금을 녹여나갔습니다. 그 과정이 마치 핸드 드립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과 같은 요령이었고 또 그것과 똑같은 즐거움이 함께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나는 하얀 천일염을 채반에 봉긋하게 쏟아놓고, 가운데 가장 봉긋한 부분에서 시작해서 가장자리 쪽으로 시계 방향에 맞춰 물을 조금씩 부었습니다. 다시 첫 출발지점인 중심으로 원을 좁혀 가며 물을 부어 소금을 녹였습니다. 느리지만 조금씩 소금 알갱이가 그 입자의 원형을 내려놓고 천천히 물에 녹아 흘러내리면서 만들어내는 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나는 요즘 매일 이와 비슷한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서울 살 때 알고 지내던 선생님 한 분이 최근에 인접 면에 산방을 짓고 목요일마다 내려오시는데, 그때마다 커피를 볶아서 내게 주고 가십니다. 나는 매일 그분이 직접 볶은 커피 콩을 내 손으로 갈아서 소금물 내리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려 하루 두 세 잔의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찌꺼기는 따로 모아 좌탁 위에 두는데 그 향기가 방에 스미는 것도 참 좋은 덤입니다.


내게 매주 커피를 나눠주시는 그 선생님은 서울에서 선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 건강을 잃었다가 회복하려는 사람들, 마음을 다스려 평화로운 삶을 살려는 도시인들에게 아주 훌륭한 실천적 방법을 나누며 살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는 매주 이곳 괴산에서 만나 밥 한 끼를 함께 하고, 서로의 산방을 오가며 차와 환담을 나눕니다. 지난 주 우리는 ‘바라본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바라보는 것’의 은근한 힘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몸의 어느 한 곳도 만지지 않고, 진심을 다해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만으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들뜨고 기쁘게 할 수 있는지, 발가벗은 몸으로 서로의 몸이 교합을 이룬 상태에서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또한 얼마나 상대를 깊은 뜨거움에 이르게 할 수 있는지...


그렇게 사랑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얼마나 기쁘고 들뜨고 뜨거워지는지, 그렇게 사랑해 보신 적 있으신지요? 있다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요?


장 담글 소금물 내리면서 어제 나는 소금물이 쪼르르 떨어지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습니다. 손으로 간 커피 위에 뜨거운 물을 아주 천천히 부으면서 나는 그 소리를 가만히 보았습니다. 그 향기도 가만히 보았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다음주에는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은 것들 몇 가지를 더 전할까 합니다. 그때는 생강나무에 꽃 피어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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