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살아 있음의 황홀을 선사하는 ‘천복(天福)’과의 만남은 행운일 수 있지만 천복의 완성은 자신의 몫입니다. 그 과정은 쉽지도 편하지도 않습니다. 웃음으로 가득한 길이 아니고 눈물만 있는 길도 아닙니다. 오랜 집중을 요구하나 하나 속에서 광대한 세계를 탐험하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가령 스시처럼 단순하게 보이는 음식은 만드는 과정도 간단할 것 같습니다. 오해입니다. 좋은 재료를 감별하는 안목은 히말라야 산맥처럼 넓고, 밥을 짓고 밥알을 뭉치는 감각의 층차는 에베레스트의 높이에 비할 수 있습니다.

천복을 좇는 과정이 어느 시점을 지나면 전문가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과거의 고난은 찬란한 성취의 배경으로 변합니다. 심연(深淵)과 산정(山頂)은 하나가 되고, 사과나무처럼 열매가 하나둘 보이다가 일거에 열립니다. 이때까지의 시간적 양을 ‘1만 시간의 법칙’ 또는 ‘10년의 법칙’이라 부르고, 그 경험의 질을 ‘심층훈련’이라 부릅니다. 집중과 몰입, 도전과 새로운 시도, 그리고 시행착오의 반복을 통한 숙련의 과정입니다. 이렇게 한계는 확장되고 실력은 커집니다.

1957년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한 최민식 선생은 1962년 대만국제사진전에서 처음으로 2점이 입선된 뒤, 1970년까지 국내 여러 사진공모전에서 150점이 입상 및 입선합니다. 1967년에는 영국 <사진연감(Photography Year Book)>에 작품 6점이 수록되면서 ‘스타 사진가’로 선정되고 ‘사진의 램브란트’라는 극찬도 받습니다. 사진기를 처음 손에 잡은 지 10년이 흐른 시점의 성과입니다. 그가 1987년까지 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권위 있는 사진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은 220점에 이릅니다. 심층훈련으로 1만 시간을 채우면 삶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데, 이때 일종의 연금술이 일어납니다. 최민식 선생은 한 분야의 대가들이 보여주는 연금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들은 매순간 황금을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 고통과 좌절의 오랜 경험 후에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꾼 사람들이다. 때가 무르익는 그때, 살아온 시간까지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 그 모든 것이 업적이 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전해 내려온 연금술사들의 격언처럼 자연이 불완전하게 남겨 놓은 것을 인간은 예술적 삶을 통해 완성합니다. 예술가의 삶은 작품으로 결집됩니다. 최민식 선생은 1968년 사진집 <인간 · HUMAN>을 내놓습니다. 그에게 사진 한 장은 ‘인간’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는 연작시와 같고, ‘휴먼’은 그런 연작시 모음입니다. 이 사진집은 2010년 14집이 나왔고, 올해 15집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는 ‘휴먼’에 대해 “내 사진 인생의 모든 것을 담은 사진집”이라고 말합니다. 최민식 선생이 지난 2월 타계했기에 ‘휴먼’ 15집은 유고집입니다. 그는 여든다섯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현역이었습니다.

“나는 사진과 함께할수록 사진예술이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결국 내 삶 역시 ‘한 권의 사진집’으로 묶인다. 한 권의 사진집을 위해서 모든 열정이 투입된다.”

- 사진가 최민식 (1928-2013)

최민식 저, 진실을 담는 시선, 예문,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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