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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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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4일 13시 01분 등록

 

전에 서해안에서 20년을 살았으므로 바다에 자주 갔다. 그 중에서도 나의 단골바다는 안면도와 태안군이 갈라지는 지점에 있는 청포대였는데, 잊지 못할 장면이 하나 있다. 나는 자그마한 모래언덕의 소나무 아래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개발되기 전이었고 철도 살짝 지나서, 해변에는 재잘거리는 청소년들이 한 떼, 그리고 족구를 즐기는 장년 몇이 있을 뿐이었다.

 

파도가 철썩거리며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소음이 잦아들고 사위가 조용해지며, 천지에 나 혼자인 듯한 적막감이 몰려 왔다. 돌연 배경이 정지하고 주인공 두 사람만 부각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오직 파도와 내가 맞대면하고 있었다. 파도는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철썩대고 있었겠구나, 저 풋풋한 아이들이 족구를 즐기는 장년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정말 미미한 것이고, 여기 이렇게 앉아있는 내가 누리는 시간 또한 찰나에 불과하겠구나, 내가 지워진 다음에도 여전히 파도는 철썩거리겠지, 잠시나마 차원이 다른 세계를 엿본 것처럼 나는 시간의 영속성을 느꼈다. 이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먼지만도 못한 작은 존재였다.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집착도 없고, 두려움도 없이 한껏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치바다 다카시의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를 읽다가 나와 똑같은 심경을 토로한 부분을 발견했다.

 

모든 찰라에 존재는 비롯된다. 만물은 영원히 회귀하며, 우리도 그와 함께 회귀한다...... 사람은 바로 이 순간 흘러 가 버리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살고 있다. ‘보라 이것이 영원인 것이다.’ 라고 니체는 말한다. 머리로만 생각한다면 알 듯 말 듯 한 사상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적 없는 바닷가 유적에서 잠시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것이 바로 영원이라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아무런 의문도 없이 똑똑히 느껴지는 때가 있다.”

 

알고보니 내가 청포대에서 느꼈던 감회는 일찍이 니체가 주창한 영원회귀사상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오늘 장석주의 <내가 사랑한 지중해>에서 나는 똑같은 부분을 또 만났다. 저자가 작년에 에게 해 인문학기행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쓴 책으로, 그는 여행의 소중한 양식으로 <그리스인 조르바><에게, 영원회귀의 바다> 두 권의 책을 챙겼다고 한다. 소문난 다독가요, 문장노동자답게 이 책에는 인용구든 저자의 것이든 보석같은 문장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바다에서 자라 가난이 내게는 호사스러웠는데, 그 후 바다를 잃어버리자 모든 사치는 잿빛으로, 가난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바뀌었다.” (카뮈)

그 무엇으로도 은폐되지 않은 눈부신 나신, 세계의 카오스를 통합한 하나의 질서이고 출렁이는 육체”(장석주)

 

장석주의 유혹으로 바다가 보고 싶어 가슴이 뜨거워진다. “태양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들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부글거리며 끓는 빛”(카뮈) 속에 놓이고 싶어 나도 자글거리며 끓는다.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라도 영원을 느낄 수 있다면 무한한 자유도 멀지 않으리니, 다치바나 다카시의 표현처럼 그것은 시간을 천 년 단위로 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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