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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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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7일 06시 52분 등록

사람들이 묻는다.

“고향이 어디세요.”

“서울인데요.”

의심쩍어하는 구석. 맞는디.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34번지. 내가 태어나고 일정 기간 자란 곳이다. 하지만 나의 기억 저장고에는 이곳이 없다. 갓난아기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지방으로 내려 왔기에. 아마도 내가 이십대 끝자락 서울 입성을 감행한 것은, 연어와도 같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본능에서 연유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어릴 적 가장 손꼽아 기다리던 날인 설과 추석. 쌀밥에 고깃국 먹는 것이 소원이던 그 시절. 평소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 그날만은 가득 상에 차려진다. 고대하던 D-Day. 갖가지 풍미에 눈이 띄어 이른 아침부터 나는 밥을 굶고 있다. 잡채, 탕국, 불고기, 닭고기, 산적에다 각종 전들. 꿀꺽.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어무이, 이거 하나 먼저 먹으면 안 돼요.”

막내의 간절한 호소에도 당신은 끄덕도 하지 않으신다. 조상님들이 먼저 드셔야 된단다. 웃긴다. 영혼이 무슨 형체가 있다고. 어쩔 수 없다. 보다 못한 내가 접시를 슬쩍 곁눈질하니 그 낌새를 눈치 채고 손을 잡아챈다.

“안된다고 그랬제.”

꼬르륵. 숨넘어가겠다. 무슨 절은 그리도 많이 하는지. 증조 분들에서 비롯하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까지. 굽이굽이 고개를 넘고 있자니 환장하겠다.

“어무이, 우리가 큰집도 아닌데 왜 조상님들 차례를 다 치러요?”

“큰엄마 네는 교회를 다니시잖니. 우리가 대신 모실 수밖에 없다.”

그런가. 그럼 왜 그쪽에서는 이런 날 코빼기 하나 보이질 않는지. 괜히 심통이 난다. 이제 조금만 더기다리면 된다. 어라, 이번엔 당신 차례다. 옷을 곱게 차려입고 아버지 사진 앞에서 정중히 큰절을 올린다. 일어설 기미가 없다. 엎드려서 무얼 하시는지. 아따, 시방 아들내미 숨넘어간다 안 카요. 일부러 보이는 앞에서 화장실을 들락날락. 한 참후 그제야 허락이 떨어졌다.

“상 차려라. 밥 먹자.”

어느 곳에 젓가락을 대어야 할지. 진수성찬이다. 먼저 좋아하는 살진 닭다리 하나를 뜯어 입 안 가득 오물거린다. 우와. 그냥 살살 녹아내린다.

“천천히 먹어라. 체한데이.”

괜찮아요. 오늘 같은 날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 뽕을 뽑아야지 예. 조상님들께 제를 올리기도 하지만 후대 후손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는 시간. 객인 거지도 한몫 거든다. 기막히다. 어떻게 알고 용케도 찾아오는지.

“밥 좀 주이소~~”

대문 넘어 들려오는 구슬픈 목소리. 평소에는 밥 없다고 문전박대를 당하지만 이날만은 예외다. 그들도 자신의 생일상을 받은 양 만찬을 즐기고 나면 얼굴에 개기름이 짜르르 흐른다.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마눌 님 혼자서 명절 음식 장만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 그런데 장난이 아니다. 준비 물품 메모를 바탕으로 북적이는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으로 시작. 평소 보관 창고에 있던 주방기구들도 총출동 한다. 어쩐다. 경상도 보수적 색채로 학습된 나지만 조금이나마 도우미 역할의 보조를 맡을 수밖에. 하루 종일 서서 부침개와 생선 등을 뒤집고 고기에 꼬챙이를 끼우지만 이런, 양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서히 다리도 저려오고 팔도 아프다. 이것이 여성이 겪는다는 명절 증후군이라는 것인가. 음식이 상하지 않게 바람이 서늘한 곳에 보관을 하고 신문지로 잘 덮어둔다. 이제 출정준비 완료. 꼭두새벽 일어나 선물을 챙기고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실어 민족의 대이동 명제에 동참. 이번엔 얼마나 걸리려나. 진이 빠진 채 도착.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장남인 형은 간밤 숙취에 그제야 눈을 비비며 일어나고, 청소는커녕 거실과 개수대의 흔적은 어지럽다. 거기에다 어머니는 오느라 수고했다는 말보다는, 음식의 확인사살에다 맛을 보시고 쓰니, 짜니 훈수를 늘어놓으신다. 웬만큼 넘어가면 좋으련만. 불만의 구시렁이 목구멍의 문턱을 깔딱.

“어무이. 차례 지나고 나면 먹지도 않아서 음식이 남아 버리게 되는데, 다음부터는 간소하게 합시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그럼에도 당신의 철옹성은 완강하다. 하지만 물러설 수가 없다.

“내가 쪼매 거들다보니 힘듭디다. 며느리 혼자서 수고하는 것도 그렇고. 다음부터는 아버지만 지냅시다.”

NO의 분명한 의사표시. 이유는 간단하다.

“일 년에 제사 그 몇 번 한다고 힘드냐? 그리고 자고로 조상님들을 잘 모셔야 자손들이 복 받는 겨.”

부아가 치민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그분들을 섬겨 왔는데. 허참. 어떻게 복을 주셨는지 모르지만 나는 간에 기별도 가질 않네. 편치 않은 마음에 식사를 마치고 나면, 길이 막힌다는 핑계로 서둘러 다시 올라갈 채비를 차린다. 매번 반복되는 이 같은 풍경. 지겹다. 다른 집은 고향 가면 자식이 챙김을 받는다는데 어찌 우리 집은 이러냐. 투정과 불만은 올라오는 내내 계속된다.

 

한가위를 앞두고 들떠있는 사무실 직원들.

“어디로 내려가세요.”

“서울에 있습니다.”

“어머, 좋으시겠다.”

좋겠다고? 그래. 나도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연휴임에도 고향을 다녀오면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가 없고, 스트레스에다 육신의 피로감만 더욱 쌓이니. 그렇기에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기간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기까지 하였다. 이제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이젠 그곳에 내려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왕년에 그렇게 부러워하던 서울 공화국을 오히려 지켜야 될 입장. 그 와중에 어떤 이의 한마디가 마음에 방점을 찍는다.

“이승호씨, 이제 고아네요.”

“…….”

고아? 이런 염병할.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울컥. 그렇구나. 오래전 아버지에 이어 이제 어머니까지 계시지 않으니 진짜 고아가 됐구나.

 

 

선물을 챙겨 내려가지 않아도

기차표 끊는다고 새벽 줄서기를 하지 않아도

음식 장만의 노고들도 없어

그 자유로움에 늦게까지 한가함을 즐긴다.

그런데,

 

언쟁을 벌일 상대방도 이제는 사라지고

막히는 길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내려간다는 부담감도 없기에

한껏 여유를 부린다.

그런데.

 

 

‘고향은 밖에서 이루고 얻은 자들의 금의환향만을 기다리던 곳이 아니었다... 그 넉넉하고 허물없는 도량은 누가 감히 무엇을 더하고 덜할 것이 없는 관용의 성지였다.’

- 이청준 <삶으로 맺고 소리로 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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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9 03:58:52 *.201.99.195

아, 그랬겠네....

고아 불러 밥 같이 먹고 달구경 같이할껄....

북서울 숲에가서 호수에 비치는  달만 바라 보았네. . . . .



그리움   


미술 시간에 어머니 얼굴을 그린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그 친구에게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림은 '그리워하는 것' 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뿐입니다.


                    신영복 선생님 글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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