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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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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30일 12시 17분 등록

지난 5년 동안 ‘마음편지’를 썼습니다. 2009년 9월 1일부터 2014년 9월 23일까지 총 261편을 썼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편지입니다. 마지막 편지를 쓰며 지난 5년을 반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잊고 있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접혀 있던 기억들이 펼쳐졌으며, 파편화된 장면들이 연결되었습니다. 마음속 극장에서 지난 5년을 담은 한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그 영화의 장면 몇 개를 나누고 싶습니다.


2009년 4월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몇 개월 동안 백수 생활을 즐겼고, 나의 외향적 기질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 원고를 완성한 공저 두 권이 여름과 겨울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나오고 5개월이 흐른 시점부터 매주 화요일 ‘마음편지’를 썼습니다. 당시에 나는 새로운 인생이 펼쳐 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절반만 맞았습니다. 나는 인생의 봄이 시작되기를 바랐지만 운명은 내게 삶의 겨울을 주었습니다.


내게 삶의 겨울은 다른 무엇보다 내면의 위기였습니다. 무기력과 무능력감, 그리고 무가치함이 하나씩, 때로는 한꺼번에 나를 덮쳤습니다. 식욕이 떨어지고 만사가 귀찮았습니다. 전에는 자신 있던 일들이 불가능한 일로 보였고, 가치 있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런 생각은 터무니없지만 그때는 이런 상태가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보였고, 나는 2년 넘게 비참한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단군의 후예’라는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단군을 2010년 4월에 시작했으니 4년 6개월 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몇 년 동안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총 9회, 45시간 분량의 단군 세미나 컨텐츠를 개발한 과정은 내게 훌륭한 성취로 남아 있습니다. 2011년 4월, 단군을 통해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어두운 시기를 비춰준 한줄기 빛이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녀를 만나고부터 나는 아주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고, 삶도 아주 천천히 상승기로 진입했습니다. 결혼할 수 없는 여건이라고 생각한 시점에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 덕분입니다.


내게 ‘마음편지’와 ‘단군의 후예’는 특별합니다. 마음편지를 쓰며 책과 일상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정리할 수 있었고, 나를 괴롭히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단군을 통해 아내를 만났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단군은 내게 특별합니다. 지난 5년간 나는 절반 정도는 의도적으로, 나머지 절반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세상과 거리를 뒀습니다. 마음편지와 단군의 후예는 세상과 나를 연결해준 두 개의 끈이었습니다. 마음편지는 온라인, 단군은 오프라인.


지난 5년 동안 매년 200권의 책을 읽고 100편의 글을 썼습니다. 100편의 글 가운데 절반은 마음편지로 썼고, 공부방에 앞으로 10년 동안 읽을 1,000권의 책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몇 명의 ‘마음속 영웅’을 만났습니다. 조지프 캠벨, 칼 융, 니코스 카잔차키스, 헤르만 헤세, 그리고 법정 스님. 이들은 내게 자기답게 사는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었습니다. 공부방에 그들이 쓰거나 그들에 관한 책만 모아둔 책장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그들의 책을 읽고 그들에 관해 글을 쓰며 배우고 모방하는 수준이지만 어느 날인가 그들처럼 자기답게 살고 있는 나를 보게 되리라고, 언젠가 내가 바라는 ‘그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 동안 비범한 사람들에게서 배운 학습법 몇 가지를 스스로에게 적용했습니다. 한 명의 저자를 정해 그가 쓴 책을 집중적으로 읽는 조지프 캠벨의 ‘전작주의’ 독서법을 실천했습니다. 관심 인물 한 명을 정해서 3년가량 연구하는 오에 겐자부로의 학습법과 3년 정도 하나의 관심 분야에 몰두하는 피터 드러커의 학습법도 시도했습니다. 캠벨과 겐자부로의 방법으로 마음속 영웅들을 탐구하고, 드러커의 학습법으로 칼 융의 심리학적 유형론(psychological type)에 기반을 둔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집중적으로 익히고, 융의 분석심리학(analytic psychology)을 나름대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막막한 시기가 더 많았고, 누가 내 삶의 방향성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한탄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시행착오는 셀 수 없고, 실패한 일도 많습니다. 가령 좋은 사람들과 창업 준비 모임을 1년 가까이 진행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2010년에 구본형 사부의 권유로 ‘터닝포인트 경영연구소’를 만들어 1인 기업가로의 변신을 모색했지만 3년이 채 안 돼서 폐업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5년간 책을 한 권도 쓰지 못했습니다. 회사 다닐 때보다 시간이 많았고, 매년 적지 않은 글을 썼음에도 책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책을 쓰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6번의 집필 시도를 했습니다. 공저 4권과 단독 저서 2권. 모두 실패했습니다. 공저 두 권은 초고를 다 썼음에도 출간하지 못했고 다른 두 권의 공저는 초고를 쓰는 중에 부러졌습니다.


5년 중에 가장 슬펐던 때는 2013년 4월입니다. 내 삶에서 ‘사부(師父)’라 부른 유일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구본형 사부, 그는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마음편지도 사부의 권유로 쓰게 됐고, 단군 프로그램도 사부에게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사부는 결혼식 주례를 해주겠다는 10년 전 약속도 지켰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받았고 갚을 길은 없습니다. 그가 떠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매일 그를 생각합니다. 여전히 슬프고 많이 그립지만 사부는 내 안에 살아 있으니 우리 인연도 살아 있습니다.


5년을 보내며 깨달은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이 있다는 점을 알았고, 그 둘을 함께 보는 것이 보다 지혜로운 것임을 알았습니다. 창조적 변환은 음과 양처럼 대극적인 요소를 융합할 때 나온다는 점을 알았고, 한겨울에 봄의 씨앗이 잉태되듯이 심연의 중심에 빛이 있음을 체험했으며, 삶은 모순이지만 모순이기에 역설 또한 가능함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문제에 대한 해법은 문제를 푸는 ‘해결’만 있다고 생각해서 전략과 방법을 습득하는데 치중했는데, 이제는 해결 외에 문제를 받아들여 녹이거나 의식 수준을 높여 어떤 문제를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것으로 ‘해소’ 할 수 있다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자율’은 ‘자기규율’이며 자신이 가장 강한 적인 동시에 잠재력임을 체감했습니다. ‘자유’란 ‘자기 이유’에 충실할 때 도달할 수 있음을 또한 깨우쳤습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더 쓰고 싶지만 마음편지는 여기서 멈추려고 합니다.

다른 인연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편지를 쓰며

몇 사람이 떠오릅니다.

미안하고 그리운 사람들.

이제 본격적으로 나라는 책을 읽고

자기라는 세계를 여행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5년 전에 떠났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합니다.

안에서와 같이 밖에서도.

고맙습니다.


* 다음 주 화요일(10월 7일)부터

  변화경영연구소의 양재우 연구원이 ‘마음편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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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30 13:09:25 *.62.219.134

흐뭇해 하실꺼야. ^^

여행 같이 가자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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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30 14:51:21 *.254.118.78

현재 단군의 후예 참여자 입니다. 승완님의 힘을 얻어 100일간 열심히 아침기상습관화를 실행하겠습니다..고생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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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30 23:44:49 *.77.214.44

승완 쌤! 쌤의 새로운 여정을 응원합니다!

재밌는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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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1 06:55:05 *.122.139.253

승완아,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많이 힘들었지?

 

나의 경우 예전에 고작(?) 1년 정도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정말 꾸준한 칼럼 쓰기가 어렵다는걸 알았거든.(머리가 많이 빠졌다는... ㅠ.ㅠ)

하물며 너처럼 5년을 계속해서 쓴다는 건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게다가 아직 너의 향내(혹은 지린내? ㅋ)가 자욱한 화요일에

마음편지를 이어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아찔하기만 하다.

 

어깨가 무겁고, 마음 또한 가볍지 않다만 열심히 고민하고 쓰다보면

나는 물론이고 마음편지를 읽는 사람들 모두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겠지?

 

여행 잘 다녀오고, 함 보자꾸나.

밥과 술, 찐하게 살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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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1 09:33:59 *.110.177.161

아 마지막 편지였구나. 그도안 수고 많았고. 또 다른 지평이 열릴 거라 기대한다. 언제든 콜 하고. 늘 응원했던. 누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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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1 12:05:49 *.230.103.185

지난 5년, 승완씨의 우드스탁이 원하는 삶을 조탁해 나가는데 결정적인 자원이 되어주리라 믿어요.

정말 수고 많았구요,


나도 책을 쓸 때가 되어서 감정이입을 해 보자면

사부 앞에 자랑스러운 책의 저자로 만나요. (내게 하는 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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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2 00:50:02 *.35.81.201

나는 그리울 것이다, 승완의 글.

언제부터인가 늘 승완의 화요일글에 대한 전작주의자였는데,

이제 홍승완 저의 책을 기다리기로 하마.


여행을 떠났나?

내게도 함 들려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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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2 12:14:45 *.150.236.8

감사했고 고생 많으셨어요. 언제나 선생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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