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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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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일 14시 14분 등록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슬슬 진행되어 나간다.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큰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만일 부엌에서 시식을 했다면 평범하거나 심지어 불쾌하게 느껴졌을 음식이 구름이 있는 곳에서는 새로운 맛을 띠고 구미를 돋운다. 비행기의 빠른 상승은 변화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우리는 비행기의 힘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 역시 언젠가는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많은 억압들 위로 솟구칠 수 있다고 상상한다.

 

몇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꿈을 꾸다 보면,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즉 우리에게 중요한 감정이나 관념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호텔방들 역시 정신의 습관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슷한 기회를 제공한다.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사실 목적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었다. 보들레르가 결론을 내린 대로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어디로라도 떠나는 것.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자 아테네라고 하지 않고 세계라고 대답했다. 지도의 어떤 땅덩어리에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선을 그어놓고 그것을 다른 땅과 구분하는 조국의 관념, 그것은 아닙니다. 조국은 내가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즉 내가 꿈을 꾸게 해주는 나라이고,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나라입니다.

 

만일 세상이 불공정하거나 우리의 이해를 넘어설 때, 숭고한 장소들은 일이 그렇게 풀리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바다를 놓고 산을 깎은 힘들의 장난감이다. 숭고한 장소들은 부드럽게 우리를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 이 나무들은 내 생각들을 올려놓을 수 있는 선반을 제공했다. 이 나무들은 근심의 소용돌이로부터 나를 보호했고, 그날 오후 나에게 거창하지는 않지만 살아야 할 이유를 주었다. 산은 누워 잠든 거대한 짐승의 등뼈처럼 굽이치고 있었다. 이 짐승은 언제라도 잠을 깨고 몇 킬로미터의 높이로 벌떡 일어나, 녹색 펠트저고리에 묻은 보풀을 털어내듯이 떡갈나무와 산울타리를 털어낼 것 같았다. 이 수많은 풍경들이 내 마음 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지금 이 순간, 내 평생 단 하루도 이 이미지들로부터 행복을 얻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큰 기쁨이 몰려 온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퉁이는 예술가들이 그려주거나 글로 써준 뒤에야 돌아보게 된다. 반고흐에게는 관객이 세상의 어떤 측면들을 좀 더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화가의 증표였다.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마찬가지로 반 고흐가 사이프러스를 그리기 전에 프로방스에서는 사이프러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데생이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도 연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즉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 해준다는 것이다. 지금 하늘이 잠들어있는 인류를 위해 펼쳐놓은 이 숭고한 광경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평생 떡갈나무를 많이 보아왔으나, 랭데일 골짜기에서 한 시간 동안 스케치를 해본 뒤에야 비로소 그들의 정체성을 제대로 감상하고,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우리의 취향에 대한 설명을 얻게 되며, ‘미학즉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는 능력도 생기게 된다. 빛은 대상을 위에서보다 옆에서 비추는 게 좋다. 회색은 녹색과 잘 어울린다. 거리가 널찍해 보이려면 건물 높이가 거리의 폭보다 높아서는 안 된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그런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없이, 그것에 대하여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하여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트리에스테, 취리히, 파리.



 

 

 

*** 전에는 알랭 드 보통이 잘 안 읽혀서 그 대단한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두 어 번 읽으려다 놓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술술 읽히네요. 그의 <여행의 기술> 중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짜깁기 해 보았습니다. 이런 저런 문장공부를 하던 중에 분위기를 바꾸고 싶으면 한 번 시도해 보세요. 저는 아주 재미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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