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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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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일 00시 37분 등록

 

요 몇 년 새 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습니다. 통계를 봐도 그렇지만 여우숲으로 찾아와 그런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들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최근 일주일 사이 여우숲에 앉아 그런 방문객을 두 쌍이나 만났습니다. 관련한 강의를 청탁한 공공교육기관도 있었습니다. 그 기관은 아예 교육프로그램으로 노년과 인생이라는 과정을 개설했다고 했습니다. 퇴직을 앞두었거나 노년을 바라보는 공직 근무자들을 위한 강좌인 것이지요. 나는 자연에서 다시 시작하다라는 주제로 4시간 정도 강의를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각각 다른 날 여우숲을 찾은 두 쌍의 부부가 가진 공통점은 남편의 은퇴 이후를 함께 고민하고 모색하는 여행을 하는 부부라는 점이었습니다. 한 부부는 몇 년 내에 기업을 떠나야 하는 직장인 남편, 다른 한 부부는 몇 개월 내에 정년을 하며 조직을 떠나기로 예정돼 있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모색을 품고 여행을 하는 부부일 수 있는 분들이라 퍽 다행한 일이다 생각했습니다. 노년을 앞둔 많은 부부가 그 고민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모습을 아주 많이 보았으니까요.

 

두 쌍의 부부 중, 내 생각을 깊게 전할 수 있었던 부부는 수개월 내 공직 은퇴예정자 남편이 있는 부부였습니다. 남편은 나와 평소 친분이 깊은 분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에게 늘 성실한 삶과 책임감을 배우려 했고 함께 공부도 해왔습니다. 그분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정년퇴직 이후를 위한 필살기를 연마하여 장착하고 계셨던 분입니다. 그분의 필살기 영역은 숲, 그와 관련한 자격증을 이미 갖추었고 최근에 더 유망한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시험에도 합격해 놓으신 상태였습니다.

 

그분이 내게 말했습니다. “이제 정말 떠납니다. 곧 떠납니다.” 그 짧은 문장이 당신 입을 떠나 내 귀로 오는 사이 그분의 눈동자에는 말로는 담지 못할 미묘한 감정이 짧게 스쳤습니다. 선험은 강렬한 것, 나는 내가 조직과 서울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그 최종 시한을 정한 날의 오래된, 그러나 생생한 감정 속으로 휙- 되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분은 필살기로 준비해 온 영역에 펼쳐진 기회 몇 개를 언급한 뒤 묻듯이 말했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해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복잡해서 찾아왔습니다. 이 편안한 여우숲에 앉아 생각을 정리해 보려구요.”

 

우리는 제법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긴 이야기 속에 담은 나의 조언은 조심스럽지만 간략한 것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는 것을 택하시면 어떨까요? 멈춰보는 것이지요. 다행이 연금을 받으실 수 있으니까, 놀아보는 겁니다. 수십 년 조직과 세상이 요구한 삶, 남편과 아버지로서 요구받았던 가장으로서의 생활로부터 벗어나 보시는 겁니다. 여행을 해도 좋겠고 홀로 영화를 보거나 미술관을 가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릴 없이 빈둥대보는 시간, 그 의도된 공백을 둬 보시는 겁니다. 이런저런 직함으로 불리던 내 정체성이 어떻게 허물어지는지, 아무도 일로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 내게 어떤 느낌인지, 아침이면 당연히 집을 벗어났다가 밤에 들어와 줘야 하는 가장의 모습을 허물면 어떤 상황과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지 처절하게 느껴보시는 겁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모두 그 순간을 마주해야 하니까 이 기회에 작정하고 만나보는 것이지요. 더는 세상에 접속하는 타이틀을 가질 수 없을 만큼 노쇠해질 때 모두는 그렇게 벌거벗은 나와 대면하게 돼 있으니까요.”

말은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그 경험은 너무도 생경하고 당황스럽고 아프기까지 하겠지만 제대로만 마주한다면 참으로 소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도하여 본래의 나를 만나보는 거의 최초의 의도된 시간일 테니까요. 이 시간동안 가능한 끝까지 가보시기를 권합니다. 사회적인 역할을 위해 썼던 나의 가면을 벗는다는 것의 두려움, 혹은 왜소함, 불안감 따위의 느낌을 피하지 말고 직시해 보세요. 그 끝을 제대로 붙들면 화려한 덧칠로 가득했으나 결코 그 옷의 주인은 아니었던 나를 만나고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운이 좋다면 그런 나를 떠나보낼 힘도 솟아오를 것입니다. 마침내 내 삶의 주인이 나인 삶을 향하는 옷을 찾아 걸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옷 따위는 필요 없다며 스스로 닫아걸었던 문을 박차듯 열고 벌거벗은 채로 나가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이야기가 흘렀고 어느새 산 그림자가 길어졌습니다. 이내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서로 고마움을 표하는 마음을 나누며 숲길을 조금 걸었고 따뜻하게 헤어졌습니다. 나는 조금 더 홀로 숲에 앉아 그림자가 짙어지는 시간을 누렸습니다. - 소리 요란하게 퍼질 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툭 흘러나왔습니다. “그 삶은 언제 살아보려 하는가? 오직 내가 내 삶의 주인인 그 삶은 언제?” 이 말에 귀기울여줄 대상도 없는, 그저 나무와 가을풀꽃 가득한 숲 속으로 내 혼잣말이 흩어지더니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숲에는 퍼뜩 날이 저물고 새소리만 깊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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