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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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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9일 22시 15분 등록

남편은 짐을 싸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걸쳐 조금씩 나눠하던 작업의 막바지는 귀중품을 차에 옮겨 두는 일입니다. 좀 촌스러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좋은 날도 받았습니다. 때때로 엉덩이를 들썩이며 싫증내기도 했고 그보다 훨씬 자주 얼마나 더 살까 싶은 마음에 부러 정성을 거둬들이기도 했던 이 곳입니다. 5년 반이나 머물게 될 줄 알았더라면 조금은 더 아껴줬을텐데요. 이 자리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오늘밤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도저히 그냥 잠자리에 들 수가 없습니다.

 

요즘 진심으로 속상해하고 있었습니다. 바보같이 시간만 흘려보낸 것 같은 자신이 한심했거든요. 그런데 찬찬히 돌이켜보니 변한 것이 변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집니다. 그중 가장 분명한 변화는 역시 아이들이겠지요? 배 안에 품고 있던 아이가 이 집에서 나고 자라 벌써 엄마는 꿈이 뭐야?’라는 질문을 던질 줄 아는 꼬마 숙녀가 되었고, 지금 둘째보다도 더 아가야이던 큰 아들은 제 손으로 준비물 정도는 거뜬히 챙기는 든든한 형님으로 자랐습니다.

 

아이들을 이만큼 키우는 동안에 아이 엄마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정말로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늘 웃을 수는 없다는 것.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모질어야 할 때도 있고, 또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는 그 사랑을 전하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내가 힘든 건 세상이 날 미워해서도,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서도 아니었던거야. 어쩌면 세상도 내게 사랑을 전할 방법을 간절히 찾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조금 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어줘도 좋지 않을까. 오랫동안 저를 가두고 있던 지독한 저주가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불안정하기만 했던 세상과의 애착을 조금씩 다져가면서 고단하기만 하던 삶이 점점 흥미진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최선의 대상을 향해 최선을 다한 소중한 경험이 준 고마운 선물이었습니다.

 

이 타이밍에서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썩 영민한 엄마는 아닌 게 틀림없습니다. 아이들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곁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렇게나 헤매어 다녔으니까요. 하지만 별로 섭섭하진 않습니다. 느리고 고집센 바보라서 받은 도 많으니까요. 책이 그렇습니다. 글이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구본형이라는 큰 스승과의 인연이 그렇습니다.

 

그를 만나기 전 저는 늘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디를 그리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에 차지 않은 환경, 사람들, 그리고 저 자신까지. 여기가 아닐 수 밖에 없는 이유라면 누구에게도지지 않을 만큼 읊어 댈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이 집으로 이사오던 해 크리스마스 꿈벗여행에서 그를 만나기 전까지, 아니 그 이듬해 1월 연구원 응시원서를 쓰기 전까지만해도 스승이야말로 저의 세계를 그늘지게하는 대표적인 다른 어디의 사람이기도 했구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힘이었습니다. 그를 만나고 저는 난생 처음으로 마음의 최선에 몸을 맡기는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편해서도, 유리해서도, 쉬워서도, 나쁘지 않아서도 아닌 정말 너무 하고 싶어서한 첫 번째 선택. 그리고 그 사랑을 키워가기 위한 시간들.

 

이젠 알아차리셨죠? 제가 아이들을 통해 사랑의 비밀을 배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스승과 함께 했던 워밍업 덕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늘 재미있기만 한 건 아니구나. 아무리 좋은 사과나무 씨앗이라도 정성을 다하는 시간을 거치지 않고는 단 한알의 사과도 생산해낼 수 없는 거구나. 사과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기 전까지 불안한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거구나. 지금 여기서 그 힘을 키우지 않으면 다른 어디라도 마찬가지인 거구나. 여기가 나의 현장이라구? 그렇다면 필요한 모든 것도 지금 여기에서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만난 스승이 아이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제 귀여운 스승들은 아직도 저를 위한 풀타임 레슨들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저는 분명히 들었으니까요. 마음이 원하는 그곳으로 가라. 그리고 그곳에서 힘껏 배워라.

 

이제야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 사부와 친해질 때도, 아이들과 친해질 때도 딱 이 시기에 이만큼 힘들어 했었더랬습니다. 이 고비를 넘겨도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국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축복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꼭 그리 될 것입니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너무 조급히만 굴지 않는다면요. 괜한 헛수고를 하게 될 수 도 있다는 걱정에 너무 인색하게만 굴지만 않는다면요.

 

남편은 이미 잠자리에 든지 오래입니다. 저녁을 함께하며 이 집에서 산 5년 반동안 마음편지의 독자에서 필자로 승진했다고 자랑을 했더니 자진해서 짐정리 마무리를 청하는 멋진 남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서 사는 동안 좋은 일들이 참 많았었군요. 편지를 쓰다보니 알아차리게 되는 즐거운 증거들이 이리도 많은 것처럼요. 함께 있으면 어느덧 한층 더 깊은 차원을 경험하게 되는 신기한 체험이 다시 시작되나 봅니다. 앞으로 1년 그 짜릿함을 알알이 나누어 가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P.S. 시간은 흘러 여기는 새집앞 카페입니다. 아직 새집에 인터넷 연결을 못했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이 아니면 내일내로 홈피게재가 어려울 것 같아 백만번쯤 망설인 끝에 살짝 땡겨서 올립니다. 혹 여기도 예약게재기능이 있는 걸 저만 모르는 걸까요? 용규샘, 귀한 시간 축내서 정말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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