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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4년 10월 11일 14시 39분 등록

앞으로 격주로 토요일마다 편지를 보내게 된 로이스입니다. 저는 지금 변경연 가을 여행을 위해 스페인 세비야에 있습니다. 6일 마드리드에 도착해 중부의 여러 도시를 거쳐 어제 세비야에 도착했습니다. 모두가 잠든 신새벽, 호텔 로비에 내려와 노트북 끓어 안고 마음편지를 쓰는 이 기분, 참 특별합니다. 그리스 신전처럼 거대한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이곳의 호텔 공간이 그런 기분을 배가시킵니다. 다음 일정을 위해 휴식이 필요한 이 시간에 잠을 반납하고 이방의 공간에서 편지를 쓴다는 것, 무엇보다 편지를 받아줄 그대가 있다는 것, 참 근사한 일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저는 사람들과 두 가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여행일기를 함께 쓰는 일과 저녁마다 사람들을 선동해 낮에 본 도시의 야경을 보러 도시 속살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이 그것입니다.  

여름 여행에서 가볍게 시도한 여행일기의 반응이 좋아서 이번 여행에서는 좀더 자신있게 사람들에게 일기를 쓰자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호응해줄 줄 몰랐습니다. 첫날 아침 7시에 두 명을 제외하고 모든 이가 노트를 들고 호텔 로비에 모였을 때, 가볍게 전율이 일었습니다. 그들 속에는 10 8살 민우와 민경이도 끼어 있었습니다. 글쓰기처럼 좋은 도구를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돕는데 잘 활용하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마음입니다. 글쓰기를 가볍게 시도하기에 여행처럼 좋은 때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피곤한 일정에 아침마다 꼬박 나와 쓰는 것이 쉽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저와 함께 아침일기를 쓰는 사람이 줄지 않고 있다는 건 계속 이 일을 발전시켜 나가고 싶은 저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나 상대적으로 글에 친숙한 사람이 적은 이번 팀의 특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도시의 야경 탐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여행을 기획한 자로서 21명과 함께 여행하고 있지만, 기획자이기 이전에 저는 여행자입니다. 단체 여행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최대화하는 것, 그것이 기획자로서 제가 할 일입니다. 그럴 때의 기준은 언제나 저 자신입니다. 내가 여행자라면 어떤 여행을 원할 것인가를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가 진실로 만족스러울 여행이라면, 상대는 저절로 설득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내가 그 여행을 가장 잘 즐기는 사람이라면 손님들 역시 그러합니다. 그러니 여행의 만족에 대해서는 언제나 제 자신이 기준입니다. 저녁 풍경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로 결정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내가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가이드가 쉬는 시간, 저의 가이드(?)가 시작됩니다. 제가 믿는 바는 우연입니다. 어떤 경우든 우연이 우릴 어딘가로 이끕니다. 날마다 다른 도시를 방문하고, 우연이 가져다주는 그 도시의 밤 풍경을 보는 일은  즐겁습니다. 위험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늘 다른 감동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톨레도에서는 길을 잘못 든 덕분에 너무나 아름다운 성곽과 성문다리를 만났고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안았습니다. 마드리드, 코르도바, 그리고 오늘 여기 세비야, 단 하루도 풍경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모든 도시들은 저만의 색깔과 빛으로 몽환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오늘은 여름부터 찍어둔 메트로폴 파라솔에 갔습니다. 역시나 예상 이상이었습니다. 구시가지 한복판에 거대 현대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절대 이물스럽지 않았습니다. 어찌나 서로 잘 어울리는지, 오히려 이햐! 감탄만 터져나왔습니다. 대성당을 지나 '황금의 탑'이 있는 과달키비르 강에 이르기까지, 즐거운 탐험이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생일을 맞은 우리들의 기사 헤수스가 함께해서 더 즐거웠습니다. 헤수스는 바퀴가 6개나 달린 14미터의 거대한 버스를 각이 안나오는 좁은 구시가 골목에서도 멋지게 운전하는 최고의 드라이버입니다. 불금에 몰려나온 젊은이들로 가득한 거리의 활기찬 기운은 덤이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잠겨있을 시간인데도 열려있어서 아무도 없는 텅빈 '스페인광장'의 백만불짜리 미드나잇 야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알지 못하는 도시의 밤을 지도 하나 들고 탐험하는 일은 정말이지 중독성이 있습니다.

사실 위의 두 가지는 저 자신을 위해 시작한 일입니다. 내게 필요한 일이요, 또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내가 먼저 즐기고 선동하니 유쾌한 에너지가 사람들에게 흘러가 선순환을 일으킵니다. 길에설 때 얼마나 제 안의 생동감이 살아나는지, 저 자신도 깜짝 깜짝 놀랍니다. 저와 여행하는 사람들이 저에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여행이 얼마나 나를 살아나게 하는지, 그들을 살아나게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변경연 여행처럼 단체 여행을 많이 기획하고 있지만 점차 저 개인의 여행을 늘려갈 것입니다. 이번 여행이 끝나면 저는 일행과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보름 동안 더 여행을 더 합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면 방문하기 힘든 스페인 북부와, 스페인 못지 않게 매력적인 포르투갈을 둘러보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 리스본과 바르셀로나 구간의 항공과, 리스본과 바르셀로나 두 곳의 숙소만 예약했을 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사전에 미리 계획할 시간도 없었지만 우연에 맡기는 여행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를 알기 때문에 미리 정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한 대사가 생각납니다.

인생의 가장 훌륭한 감독은 우연이다.”

여행이 점차 제 삶 속으로 깊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스승님의 정신도 제 안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제 식으로 익어갑니다. 앞으로 길에 서는 날이 많아질 것입니다. 24일의 편지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서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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