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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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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8일 08시 36분 등록

‘사랑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다시 부모님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물었다. 사랑. 이는 나의 영원한 화두중 하나이다. 첫 해외 나들이. 무엇을 살까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작은 곰 인형. 사십대 중년의 남성이 외국까지 나와서 웬 인형이냐고 핀잔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끌렸다. 생김새며 손에 감기는 보들보들한 감촉이 어린 시절 충족되지 못했던 욕구를 대리만족해 주는 것 같았기에. 이런 모습에 아직도 유아티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이것이 중요하게 다가오는 당면 과제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그 사랑을 주는 방법에 어수룩한 나에게는 말이다.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고 나의 어머니다. 그러기에 더욱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다. 태아는 자궁 속에서 10개월 동안 절대적 보호를 받는다. 연결된 생명줄을 통해서 산모가 생각하고 말하는 환경적 요소를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생각과 감정의 반복 및 학습을 한다. 탄생. 어둠속에 있다가 빛의 대면 시 느끼는 감정은 설렘이 아닌 두려움이다. 안전지대에서 도전지대로의 시발점. 공포를 헤치고 세상에 첫 울음의 고고를 외친다. 그 울음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 상징성의 알림이다. 그 울음은 내 존재를 인식해 달라는 나만을 봐달라고 하는 간절함이다. 첫 번째 각인(刻印)으로 탄생케 해준 어머니란 대상과의 조우. 형언키 어려운 감정의 교환이후 덥석 품에 안긴다. 따뜻함, 애정, 뭉클함, 무언의 감동들. 격정적 느낌으로 전해져오는 이 뜨거움의 정체는 무언가. 그렇구나. 이게 사랑이란거구나.

 

나는 늘 사랑에 굶주려 있다. 아니 사랑에 목말라 있다고 해야겠다. 이는 감정적 교류행위인 신체접촉에서 시작이 된다. 어머니란 사람은 나에게 어떤 애정을 쏟아 주었던 건가. 왜 나는 당신을 원망의 시각으로 바라봤었던 건가. 책상 정리중 발견한 연애시절 작은 사진 한 장. 재현해 볼까. 기억을 벗 삼아 그 장소에서 그때의 포즈로 촬영을 하였다. 다시 이곳을 찾은 지가 이십여 년이 되어가는 지금. 그런데도 여전히 어정쩡한 자세. 답답하다 느꼈는지 옆 사람이 볼멘소리를 한다.

“무슨 부부가 이러누. 좀 다정하게 찍어 봐요.”

다정하게? 어떻게? 적잖은 세월을 함께해 왔음에도 아직도 어색하다. 손을 잡거나 껴안는다는 것의 부담. 아니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가끔씩 나에게 던져지는 도발적 질문. 아직도 사랑해? 참 난감하다. 왜 여인은 그것을 꼭 그런 식으로 확인하려고 하는 것인지. 꼭 말로 해야 하는 것인가. 재촉에 마지못해 답변을 한다. 사탕해.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가 겸연쩍기에 우회적인 은유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왜 이토록 사랑이란 단어를 자연스럽게 표출하지 못하는 것일까. 누군가를 지향하는 사랑. 낯설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행위를 경험해본 기억이 가물가물하기에. 마눌 님과의 첫 데이트. 우리는 막걸리 한잔을 기울였다. 취기가 오르자 고만고만한 동년배로써 말이 놓아진다. 한 번 두 번 만남이 이어지자 연인사이가 그렇듯 복합적 상념이 일어나고. 지금 무얼 하고 지내고 있을까. 보고 싶다는 생각.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서로의 느낌과 사고를 공유한다. 손을 잡았다. 수줍게 스킨십도 한다. 나에겐 이런 진지한 교제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이상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가로막혀있는 무언의 장애물. 대책이 요구되었다.

 

알만큼 안다는 성인 남자로써 우습겠지만 나는 그랬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의 작전 실행. 날은 어둑어둑 하늘 저무는 가운데 일단 골목길로 유인. 대로가 아닌 좁은 골목길은 나름의 운치가 있다. 인생살이가 그렇듯 꼬불꼬불. 막다른 길목에 도달했다고 여겨질 때 또 다른 갈림길의 통로가 나타난다. 그래서인가. 나는 타지를 갈 때에도 넓은 길 보다는 이 같은 좁은 길 탐방을 애용한다. 여하튼 정해진 포스트인 담벼락에다 그녀를 드디어 세웠다. 쿵쾅쿵쾅. 어째 이리 떨린다냐. 이제 어깨를 쥐고 나의 입술을 포개면 된다. 가슴의 방망이질. 이런 소리가 너무 크다. 왜 이럴 땐 남녀가 눈을 감는지 처음 알았다. 황홀경에 빠지기 위한 무조건적 반응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쪽팔리기에. 혓바닥의 또 다른 쓰임새.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심장박동의 메트르놈이 최고치에 도달한다. 이것이 장자가 언급한 호접몽의 세계이겠지. 그 찰나 당황된 그녀의 돌발 반응. 힘껏 밀친다. 덕분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나.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정색하고 뒤돌아 뛰어가는 그녀. 시간이 멈춘다. 내가 그녀에게 한 행동은 무엇이지. 슬로우 비디오로 상황이 재연됨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가로등 불빛아래 나방 한 녀석이 무던히도 달려들던 그날. 총각 딱지를 뗀 마냥 어깨가 으쓱. 나도 이제 수컷이 되어가는구나. 이것이 사랑의 느낌인가. 입술을 매만지노라니 키득키득 웃음이 나온다. 바지를 털며 일어서는데 휘청. 휘파람의 템포는 Presto(매우 빠르게)가 저절로 된다. 내일 만나면 서로 어떤 표정들을 짓게 될지. 자정이 넘어가는 시각에도 가슴은 아직도 두근 반 세근 반. 야릇한 꿈들. 사랑의 초보자인 나의 첫 경험은 이러하였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였을까. 먹고사는 게 힘들었던 그 시절. 그런 단어를 내뱉는다는 게 사치였다는 생각도 들지만, 남들보다 감수성 예민한 나로서는 절대적 간절함 이었다. 당시 모든 게 미성숙한 입장에서 위안처 혹은 도피처가 필요했는데, 당신은 충족시켜주질 못하였다. 저녁이면 삶의 무게에 눌린 어눌한 몸을 이끌고 들어오는 당신. 하루벌이의 정산을 끝내고 나면, 내일을 위한 불면증인 잠을 억지로 청할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 엄마, 나 이러이러한 문제로 인해 힘들어. 엄마, 나 안아줘. 이런 표현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물론 당신이 먼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어 준적도 없었다. 너는 머리가 어찌 그러냐. 형이나 어쩜 그리 똑같니. 가슴에 비수로 박힌 단어들. 그렇기에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여인이 나에게 사랑 하냐는 의문부호를 던질 때면 난처해진다. 속으로 뱅글뱅글 무슨 말을 하여야 하는지. 아직도 나에게는 성숙치 못한 아이가 있는데, 아직도 나는 돌봄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내가 남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자신감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아는 이는 없었다. 가족들도.

 

요양병원. 거동이 힘든 당신의 소변을 고무호스로 받고, 대변으로 인해 얼룩진 침대 시트와 기저귀를 간다. 이 순간 그녀는 내 어머니의 신분이 더 이상 아니다. 사랑을 갈망하던 그 시절 그때 나의 모습이 이곳에 있다. 과거로 회귀해버린 당신의 손. 거칠고 메마르다. 이 손으로 우리 삼남매를 먹여 살렸지. 갈라져버린 손톱. 누구처럼 빨간 매니큐어 한번 발라보지 못하였다. 소녀시절. 봉숭아꽃 물들이며 살아갈 아름다운 세상을 당신도 꿈꾸었었겠지만. 일생의 십자가를 버텨온 발. 살을 파고들어 뒤틀려져 버린 굳은 발톱. 굽이굽이 고난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 어찌 이리 흉측하게 생겼을까. 마음이 아리다. 오물에 젖은 환자복을 갈아입히기 위해 벌거벗겨진 당신의 몸뚱이. 뼈만 보이는 앙상한 다리와 허공을 맴도는 희멀건 눈동자, 늘어진 유방. 가슴이 싸하다. 어떡해야하나. 물티슈로 몸을 닦았다. 부르터진 입술이 무어 할 말이 있는지 실룩실룩. 이런 당신을 자식에게 보여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는지. 무안한 듯 아직은 의식 있는 시선은 어디에 둘지 모른다. 두렵다. 나도 앞으로 이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말하고 싶다. 엄마, 어떡해요. 안아주고 싶다. 그토록 당신에게 바랐던 손길을. 그럼에도 나는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입관식. 생애 마지막 대면의 길. 당신을 부둥켜안고 오열을 하고 싶다. 그럼에도 그러질 못하였다. 엄마와 자식이란 끈으로 맺어진 불가분의 관계였지만 그런 행위를 받아본 적이 없었고, 당신과 나 사이 오랜 높다란 장벽으로 종내는 그것을 넘지 못하였다. 죽음을 처음으로 목격한 순간. 어떻게 할지 몰라 헝클어진 백색의 머리카락만 알알이 헤아렸을 뿐. 일생을 상처받은 당신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질 때도 나는 멀찍이 보고만 있었다. 그런 당신에 대한 원망. 이제는 아련한 시간 뒤의 그리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아직 그런 나를 놓지 못한다. 당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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