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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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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2일 11시 02분 등록








알아보느냐가 문제지 내가 필요한 것을 다 갖춘 세상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를 읽으며 가장 필요한 때 이 책을 읽은 것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전에 읽으려고 시도했을 때 너무 단조롭고 따분해서 도저히 페이지가 넘어가질 않아 밀쳐두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그동안 1편의 주무대인 터키에 다녀 온 것도 원인이 되겠지만 전부는 아니리라, 완만하지만 분명히 달라지고 있는 내가 저자 쪽으로 슬며시 기울어진 것이다.


 

저자 쪽이라 함은 걷기지독함”, 그리고 마침내 이룬 성취이런 것들을 말한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걷기 위주인 것은 별로였다. 조금이라도 문화와 예술, 삶의 정수를 누리고 싶지 극기체험 같이 보이는 걷기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4년에 걸쳐 걸어낸 저자가 나를 걷기로 초대한다. (주로 5월에서 10월 사이에 걸음)


 

걷는 것에는 꿈이 담겨 있다. 그래서 잘 짜여진 사고와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내게 이런 말은 고마운 노릇이지만, 그는 지독하게 치밀한 사람이다. 누군가 하나의 열망을 발견하여 숱한 고난을 거치며 마침내 이루게 되는 데는 어떤 과정이 작용하는 것일까? 두 아들이 독립하여 떠나가고, 아내와 사별한 지 10년이 되었고, 우울증에 빠져 자살시도까지 했던 사람이 돌연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완주하여 다시 한 번 새로운 삶의 주인공이 되는 데는 어떤 메커니즘이 필요한 것일까. 그 대답은 이 책의 어디에나 있고, 또한 아무 곳에도 없다.’


 

무엇이 나를 자꾸 앞으로 떠미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길래 잠에서 깨자마자 나를 길로 던지는 것일까? 하루 평균 30킬로미터를 걷는 것이 단련이 되면 육체의 개념 자체가 무화되곤 한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순례의 전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몸의 단련을 통해 영혼을 고양하는 일이다.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머리는 신 가까이에 있다고나 할까.


 

문득 터키의 회전춤 세마가 생각난다. ‘세마는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젤랄레딘 루미에 의해 창안되었는데, 단순히 빙글빙글 도는 것만으로도 신과 교감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납득한 적이 있다. 두 손을 올리고 그저 돌기만 하는 소년들을 30분간 바라보면서 내 안에도 백색의 무구한 기도가 솟아 올랐던 것이다. 처음에 아동학대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딴판으로, 여행을 가서도 끊이지 않던 잡생각들이 가라앉으며 회전춤의 단순한 동작만큼이나 머리가 비워졌다. 그 때 비틀거리며 고통스러워하던 소년들이 갱신한 몇 분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는데, 저자도 그 얘기를 하고 있다.




마라토너에게 어느 날엔가 그를 훌쩍 추월할 수 있는 적수라고는 단 한 명뿐이다. 바로 자기 자신. 42킬로미터를 뛰어 근육이 마비돼버린 마라토너는 결승선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크로노미터(매우 정확한 시계)를 돌아본다. 그리고 행복은 바로 거기, 그가 단축한 몇 초 안에 숨어 있다.


나는 몇 초를 단축하기 위해 전부를 걸어 본 적이 없다. 성장기에는 대충 공부해도 평균이상이 나왔고, 돈은 있거나 없거나 했지만 어차피 돈이 일순위는 아니었다. 운동에도 별 취미가 없으므로, 세마춤을 본 경험으로 겨우 마라토너즈 하이를 짐작해 볼 정도로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땀을 흘린 적이 없다. 젊어서는 그리 살아도 되었다. 시간은 넘치도록 있었고, 내가 시도하는 일이 안 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같은 것은 내 사전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서서히 객기가 빠져나가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많지 정작 이루어 놓은 일은 없는 사람이라는 자각에 가슴이 철렁한다. 이제 내가 가진 최소한의 가능성을 빛이 나도록 닦지 않으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고령사회의 문턱에서 그의 책을 읽은 것이다.

 

 

저자는 죽은 아내를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답게 곳곳에서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자신의 침대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래서 절대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단언을 하기도 하고, 길 위에서 만난 고요와 몰입, 영혼의 평화가 내 삶의 담 위에 마지막 돌멩이를 쌓는 것을 도와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쩌면 절망의 끝에서 찾아냈을 걷기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다. 그는 비행청소년에게 교도소 대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석달 간 2000킬로미터를 걷게 하는 <쇠이유>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고, 이번에는 자동차로 화가와 함께 실크로드를 돌며 옛친구들의 모습을 멋진 그림으로 재탄생시켜 주었다. 그 친구들에게, 저자의 뒤를 따라 그 길을 걸어간 프랑스인들이 <나는 걷는다>에서 그 친구들이 나온 부분을 읽어주었다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마르코 폴로도 혼자는 아니었다. 나는 혼자 실크로드를 종단한 유일한 사람이라는 그의 자부심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왕에 하던 일이라도 새로운 자세로 접근해야 하리라. 나의 기질과 가치관에 부합하는, 상징적인 도전을 찾아내는 일도 중요하다. 이것이 내게 허락된, 내가 선택한 유일한 일인 것에 감사하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어 놓아 마침내 나의 만리장성에 도달해야 하리라. 쉽지는 않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삶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기에나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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