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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4년 11월 8일 15시 34분 등록

사람들이 대성당의 찬란한 색유리를 보기 위해 오는 레온,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주요 거점 도시다. 그곳에서는 부르고스 보다 더 많은 순례자들이 눈에 띄었다. 대성당 앞 카페 알바니에서 카페 솔로를 시켜 놓고 광장에 모여드는 여행자들의 아침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옆 테이블이 소란스러웠다. 6명이나 되는 페레그리노(순례자)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대화 내용이 아니라면 차림새로는 그들이 순례자라는 걸 쉽게 알 수 없었다. 순례자라기엔 너무나 말쑥한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반갑게 인사를 텄다. 아니나 다를까, 배낭을 벗어 던지고 그들은 오랜만에 아끼던 옷을 꺼내 입고 도시의 공기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아침 커피를 마시러 나왔다가 길 위에서 안면을 튼 인연으로 그렇게 반갑게 수다를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카페 알바니는 암암리에 알려진 페레그리노들의 아지트였던 셈이다. 그들 중의 한 미국 여자는 카미노를 두 번 째 걷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 세브레이로에도 가보았을 것이다.

오 세브레이로, 나의 파트너 좌샘은 그곳엘 꼭 가야한다고 벼르고 있었다. 욕심을 내서 히혼(Gijon)과 오비에도(Oviedo)까지 일정에 넣는 바람에 우리에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러다가는 포르투갈은 문턱에도 못 가보고 여행이 끝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 세브레이로 대신 다른 곳에 가길 원했다. 그러나 오 세브레이로에 가고 싶다가 아니라, ‘꼭 가겠다는 좌샘의 고집을 막을 권리가 없어서 망설였다. 그럼 우리 헤어졌다 다시 만납시다’ 그가 먼저 제안을 했다. 반가운 제안이긴 했으나 같이 가주었으면하고 내심 바라는 그의 마음에 기대 나 역시 그곳에 가보고 싶은게 진심이었는지 모른다.

미국여자에게 이미 가봤을 오 세브레이로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녀 옆으로 몸을 기울이며 "오 세브레이로에서 묵었었나요? 어땠나요?" 진지하게 물었다. 그녀는 그곳이 얼마나 특별한 곳인지 눈을 감아가며 설명을 했다. 그녀가 현재로 불러내는 오 세브레이로에서의 특별한 감흥에 전염된 나는 그 자리에서 "좌샘 오 세브레이로, 같이 갑시다" 하고 말았다.

오 세브레이로로 가는 직행 버스는 없었다. 먼저, 하루 두 대 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를 잡아타고 이름도 낯선 피에드라피타(Fiedrafita)라는 곳으로 가야했다. 스페인에 온 이래 처음으로 터널을 지났다. 차창 밖 풍경을 보니 말로만 듣던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아름다운 산악지대를 통과한다는 실감이 났다. 저녁 7시반이 넘어 피에드라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공기의 감촉이 달랐다. 그곳에서 오 세브레이로까지는 4.8킬로, 알베르게가 8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니 서둘러 택시를 타도 너무 아슬한 시간. 피에드라에서 일박하고 아침 일찍 그곳에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생각하고 있는데 좌샘이 호기롭게 외쳤다.

못 먹어도 go, 갑시다!”

마침 길 건너편에 택시 한 대가 보였다. 손을 흔드니 덩치 크고 인상 좋은 남자가 건너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행히 순례자들을 산 정상에 있는 오 세브레이로까지 태워다주는 일이 그의 주업 중의 하나였다. 그가 말했다.

알베르게 말고도 호스탈이 몇 개 있어요.”

이 시간에 방 얻는 게 어렵진 않을까요.”

제가 아는 호스탈로 데려다 줄게요. 그곳에 방이 있어요.

루비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 앞에 펼쳐지는 믿을 수 없는 풍광!

이것 봐, 이래서 내가 가자 한 거야.”

좌샘 어깨가 절로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로망을 버리지 못해 수십 권의 관련 독서를 하고 온 그녀와, 아무 정보도 없이 온 나의 감동이 어찌 같을까. 그러나 압도된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단어가 아닌가. 미터를 꺾지 않고 달리는 루비코, ‘바가지를 씌우면 어쩌지하는 걱정은 잠시, 우리는 창문을 내리고 쌉쌀한 공기를 폐에 가득 채우며 루비코, 오 마이 갓을 연발했다. 우리의 감동 속으로 루비코를 매번 끌어들이니 그는 우리 하는 꼴이 귀여웠는지(?) 허허 웃었다. 20여일, 긴 역사와 문명의 행로에 지친 우리의 눈이 이제는 태고의 자연이 뿜어내는 신령한 기운에 해방구를 맞이한 듯 기뻐 떨기 시작했다.

루비코는 10유로만 받았다. 자기가 소개한 카사 카롤로(Casa Carolo) 문 앞까지 가방도 들어다 주었다. 걱정이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보답은 진심의 허그 뿐.

루비코 고마워요, 내일 내려갈 때 꼭 당신 택시를 부를게요.’

루비코가 오른 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어느새 스페인어 몇 단어만으로도 생존이 가능해지고 있다. 아는 단어가 한 두개만 있어도 대충 상황이 파악되고, 내 바디 랭귀지 수준도 급 진화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을 사는 데 언어보다 더 중요한 건 진심, 그리고 선의의 미소다. 나는 이 두 가지 점에서 베테랑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하기로 하겠다.

카사 카를로에는 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위스 샬레처럼 산장 분위기가 나는 2층 앞 쪽에 하나 남은 방. 일부러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는 최고의 전망을 가진 방이었다. 흰 레이스 커튼으로 멋을 낸 접이식 발코니 문을 열고 나가니 사방으로 뻗어 내린 산 능선들과 그 사이로 멋스럽게 난 LU-633 도로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리고 거침없이 달려드는 자연을 향해 눈을 감았다. , 좋다. 아무런 준비도 예약도 없이 똥 배짱으로 올라왔는데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는 건가. 순례자 마을이 아니라면 어찌 이 가격에 이런 방에 묵을 수 있을까. 더구나 이곳은 오래된 교회 하나와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만 있을 뿐, 그야말로 적막과 고요가 천지를 가득 채운 천혜의 마을이 아닌가.

쌀쌀한 속을 달래려고 호텔 식당 겸 바에 내려가 이 지방 전통 수프 칼도 갈레고(Caldo Gallego)를 시켰다. 감자와 양배추를 넣고 푹푹 끓인, 그야말로 모양도 맛도 소박한 갈리시아 지방의 수프다. 식당에는 얼굴이 검어진 순례자들이 많았다. 그들이 순례의 후반부에 접어들었다는 게 느껴졌다. 많은 이가 순례자 전용 메뉴를 시켜 먹고 있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있다는 실감이 제대로 났다.

좌샘은 가방 던져 놓고 어둠이 내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내달린 지 오래다. 한 시간이 지나서 그녀는 돌아왔다. 우리는 옆 호스탈 바로 한 잔 하러 갔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산 비탈에 심은 포도나무들을 많이 봤다. 수확이 끝난 포도밭은 누렇게 단풍이 들고 있었다. 길 위에서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은 낯설고도 황홀한 경험이었다. 좌샘이 로컬 와인 한 병을 샀다. 그 지방의 익은 가을 냄새가 났고, 취기가 빨리 올랐다.

참 좋다, 그치?”

그 말이 품은 여운을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 이 기분으로 못 자. 아까워서 잘 수가 없어.’’

나도 같은 기분이었다.

좌샘 고마워요.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다 그대 덕분!”

 혀가 꼬이고 반말이 나왔다. 나는 그를 꼭 껴안았다. 그의 고집이 진정 고마웠다.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

먹던 와인병을 들고 우리는 방으로 돌아와 발코니 창을 활짝 열고 다시 술판을 깔았다. 레온 마요르 광장 수요시장에서 사온 갖가지 과일과 초리조, 치즈까지 펼치니 천국의 바가 따로 없었다. 불을 껐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별이 쏟아졌다. 그러나 곧장 그리움으로 달려드는 한 사람때문에 우리는 울적해졌다. 이런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 아니 이런 자리를 깔 수 있게 우리 마음 속에 낭만을 되살려주고, 나의 카미노를 가게 해준 사람. 잔 하나를 더 마련해서 그를 초대했다. 우리는 그가 옆에 있는 냥 건배를 했다.

다음 날 아침 유서깊은 그곳의 산타 마리아 교회에서 우리는 각자 마음의 경배를 올렸다. 교회 입구 한 구석에 순례자의 시가 적혀 있었다. 앉아서 노트에 그 시를 옮겨 적고 있는데 그곳 신부님이 다가와 엽서 한 장을 전해주었다. 그 시 전문이 적힌 엽서였다. '내 자신에 이르는 자유',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내 인생의 화두였다. 이 고장의 가장 흔한 재질인 돌로 만들어진 질박하고 작은 교회, 그러나 그 어떤 대성당에서보다 더 경건하고 성스러운 기도를 바쳤던 곳, 그곳에서 이 문구를 발견하게 되어 더 기뻤다. 

 

아래는 그 시의 한 부분이다.


Although I may have traveled all the roads,

crossed mountains and valleys from East to West,

if I have not discovered the freedom to be myself,

I have arrived nowhere.


(내가 동과 서에 이르는 모든 길을 걷고,

산과 골짜기를 건넌다해도

내 자신에 이르는 '자유'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무 곳에도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Although I may have traveled all the roads,

crossed mountains and valleys from East to West,

if I have not discovered the freedom to be myself,

I have arrived nowhere.

 

내가 동과 서에 이르는 모든 길을 걷고,

모든 산과 골짜기를 건넌다 해도

자신에 이르는 '자유'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무 곳에도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201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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