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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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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6일 11시 12분 등록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p.24) 『그리스인 조르바』의 초반부에 나오는 말로, 조르바가 새로 만난 주인과 나눈 대화입니다. 많이 회자되는 구절이죠. 특히 다음의 짧은 물음과 답변은 강렬한 울림마저 줍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소설 속 화자는 조르바를 처음 만난 날에 단박에 매료되었습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p.22)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이들은 그러지 않겠지만, 풍문만 들은 이들은 조르바를 열정적인 베짱이 정도로 오해하더군요.

 

조르바가 자유와 열정의 화신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는 손재주가 좋고 일할 때에는 성실하기까지 합니다. 조르바는 서두에 인용한, 인간이 자유라는 구절 앞에서 책임감이 묻어나는 말을 했죠.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 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르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주인이 자신과 함께하며 산투르(작은 기타의 일종)도 치라는 말에, "기분 내키면 치겠지요" 하면서 덧붙인 말입니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 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조르바를 이해하고 싶다면, 이 말도 기억해야 할 겁니다. 조르바는 개미와 베짱이 비유에서 분명 베짱이 쪽이지만, 먹고 노는 베짱이가 아니라 일하는 베짱이입니다. 무분별하게 자유를 추종하는 방종의 인물로 오해 받기도 하지만, 사실 조르바는 소원과 의무를 모두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자유를 누리며 살지 못하다보니, 조르바의 자유로운 모습을 동경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아닐까요?

 

조르바와 함께 여행하기로 결정한 주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하느님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자, 갑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조르바가 조용히 덧붙입니다. "하느님뿐만 아니라 악마도!" 이것이 조르바의 자유이고, 균형입니다. 의지적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 같은 균형이란 말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죠. 조르바는 오직 현재를 사는 인물이었고, 그 현재라는 놈이 산투르를 치는 일, 주인이 시킨 과업을 해내는 일 등으로 변모하는 것일 테고요.

 

조르바에게서 삶의 균형을 이루는 기술을 발견합니다. 지금 이 순간으로의 '몰입' 말입니다. 그것은 취사선택하지 않는 몰입일 테죠.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라면, 그것이 의무든 소원이든 그저 몰입하는 것입니다. 소원지향형의 사람들은 의무를 간과하기 쉽습니다. 늘 그렇게 살아왔기에 자신이 책임감 없는 사람이라는 점도 이해하지 못하곤 하더군요. 반면 의무지향형의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을 억누르며 삽니다. 책임감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조르바가 의무를 어떻게 완수해 내는지, 어떻게 자신의 소원에 흠뻑 젖어드는지 궁금하여 6년 만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펼쳤습니다.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배움이 가득한 책을 읽는 일은 독서의 기쁨입니다. 책의 내용을 내 삶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구절마다 음미하고 배움마다 실천하며 읽고 있지요. 가을이 깊어질 무렵, 낙엽으로 둘러싸인 벤치에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독서의 재미와 성취감을 만끽하고 싶기에 오늘도 마음이 끌리는 만큼 책장을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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