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한 명석
  • 조회 수 1391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5년 11월 4일 13시 15분 등록


일요일, 애들과 영화 <마션>을 보고 오니 엄마가 와 계신다. 나는 엄마가 연락없이 오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민망하고 뭐 그럴 것까지 없잖아 싶어 자책이 되지만 사실이 그렇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해도 내게도 계획이 있고, 또 상황이 적당하면 오시라는 전화를 드리곤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라면을 끓여 드시고, 맥주 한 모금이 땡겨서 드시려고 시도했으나 캔 꼭지가 떨어지는 바람에 못 드셨다고 한다.

 

노인은 뭘 해도 안 이쁘다. 무서운 일이다. 느닷없는 방문을 변명하듯, 가져오신 물건을 주섬주섬 펼쳐놓으며 일일이 설명을 하시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무너지는지! 부모자식의 연을 맺은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81세의 엄마는 낯설다. 그 평화롭고 넉넉하던 얼굴이 많이 추레해지셨다. 엄마 주변의 환경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동네친구들이 다 경로당으로 몰려갔는데 엄마는 경로당이 마땅치가 않다. 그곳에도 정치가 있는데 그게 싫으신 거다. 노인회장에게 아부하는 꼴들이 보기 싫다고 하신다. 오래된 친구 한 분은 몇 십 년이나 몸이 안 좋아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고, 엄마는 졸지에 혼자가 되셨다.

 

며느리는 무뚝뚝한 대신 투정 한 마디가 없다고 기특해하시지만 왜 알지 않는가! 오래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살가운 말이 오갈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아들은 바쁘지, 내 집에서 금쪽같은 내 아들과 살고 있지만 잘 못하면 하루종일 입 한 번 뗄 일 없는 절대고독은 이렇게 시작된다. 만만한 딸네로 와 봐도 맨날 컴퓨터만 들여다볼 뿐 종일 TV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은 똑같다. 가스가 송글송글 올라오는 맥주캔을 칼로 따서 맥주를 따라드리고, 감도 깎아드리고 했지만 엄마는 다음날 일찍 돌아가셨다. 스무 번은 더 들었을, 엄마의 레퍼토리에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 내가 불편하셨던 게다.

 

영화 <마션>을 보며 내내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화성인이라는 생각에서다.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하는 말은 종종 고난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뜻의 위로로 쓰이지만, 이 말은 진짜 무서운 말이다. 약속과 은혜, 사랑, 권력.... 그 어떤 것도 다 변하고 만다는 인생무상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들면서 내 안에 출렁이는 파고가 너무 거센 탓일까. 다른 일은 못해도 살아계신 한 엄마의 존엄성을 지켜드리겠다는 결심은 흐려진다. 내가 맞이하는 혼란 속에서 엄마는 뒷전이 되고, 나의 습관이나 사고방식 자체가 변하고 있다. 내가 변하고, 네가 변하고, 우리가 변하므로 이 땅은 내가 알고 있는 어제의 땅이 아니라는 생각은 과장해서 화성인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아무리 상황이 변해도 끝까지 변하지 않는 인간성과 신뢰를 믿으며 살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심리적, 경제적 갑을관계를 예민하게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요즘은 갑작스러운 퇴직 같은 변화도 많지만 일단 우리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변화는 나이듦인 거고, 나는 엄마를 통해 그 미묘함을 극명하게 느끼는 것이다.

 

다행히도 영화 속에 답이 있다. 폭풍우 때문에 화성에 혼자 남겨진 우주인이 살아 돌아온다는 단순한 스토리를 러닝타임 142분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것은 등장인물들의 근성이다. 주인공 맷 데이먼은 남아있는 식량을 아껴 먹는 동시에, 식물학자의 전문성을 살려 감자를 재배하고, 지구와의 연락에 골몰한다. NASA의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온갖 정치적 기술적 변수를 떠안고 그를 구출하기 위한 노력을 바친다. 그가 죽은 줄 알고 떠났던 우주선의 동료들은 목숨을 걸고 돌아온다.

 

마침내 맷 데이먼과 우주선이 접속하기로 한 날, 화성에 혼자 떨어지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그가 운다. 그간의 고초가 한 번에 몰려오고, 단 한 번의 구조기회가 실패할 경우 진짜 끝이라는 감회에서 오는 눈물일 게다. 조금만 시간과 각도가 어긋나도 둘은 만날 수 없다. “랑데뷰라는 말이 이렇게 엄숙하고 무서운 말인 줄 처음 알았다. 스스로 살아남으려는 무한한 노력이 있고, 한 사람을 구조하려는 주변의 엄청난 시도가 있기에 이 장면은 관객을 끌어들이고, 함께 울게 하고, 환호하게 만든다.

 

살아남고자 하는 자조가 먼저다. 조난의 공포 속에서 순식간에 쪼그라들지 않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는 멘탈갑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자조가 메시지가 되어 외부의 지원을 불러오고, “자조지원랑데뷰하여 구원이 오고, 한 편의 이야기가 탄생한다. 그러니 엄마. 평생을 자식을 위해 바쳤는데 니들은 엄마생각 이것밖에 않느냐고 한탄하지 마세요. 신세한탄을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을 걸요. 대신 매일 산책을 하고, 맛있는 것 챙겨드시고, 지금부터라도 자식이 아니라 엄마를 위해 사세요. 스스로를 위하지 않으면 아무도 엄마를 위해주지 않아요. 팔십평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건 정말 가슴아픈 얘기지만 그게 인생인가 보네요. 영화 한 편을 보며, 또 엄마를 보며 저는 오늘도 배웁니다.

IP *.230.103.185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36 얼마를 가지면 기쁠 수 있을까? 김용규 2015.10.15 1304
2035 스물다섯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연대 재키제동 2015.10.16 1256
2034 어른의 꿈 書元 2015.10.17 1301
2033 나이는 마음을 앞서간다 연지원 2015.10.19 1408
2032 Good to Great! 차칸양(양재우) 2015.10.20 1408
2031 못 생겨서 감사합니다! 한 명석 2015.10.21 1423
2030 스물여섯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가족 상봉 재키제동 2015.10.23 1471
2029 일하는 베짱이, 조르바 연지원 2015.10.26 1476
2028 주례 서 주세요! file 차칸양(양재우) 2015.10.27 1525
2027 너무 잘난 인간이라 책을 안 사줄까 하다가 한 명석 2015.10.28 1408
2026 미처 여쭙지 못한 그 말의 의미, 시처럼 살고 싶다 김용규 2015.10.29 1578
2025 스물일곱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가족 상봉 후기 재키제동 2015.10.30 1547
2024 가족 書元 2015.10.31 1268
2023 욕망이 소멸되는 시간, 자유 연지원 2015.11.02 1315
2022 내적 차별화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차칸양(양재우) 2015.11.03 1858
» 영화<마션>, 우리 모두 화성인이다 한 명석 2015.11.04 1391
2020 왜 자꾸 그렇게 가르치려 하십니까? 김용규 2015.11.05 1353
2019 스물여덟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재키제동 2015.11.06 1592
2018 어느 자격지심자의 고백 연지원 2015.11.09 1217
2017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는 두가지 방법 차칸양(양재우) 2015.11.10 20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