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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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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4일 11시 58분 등록

아내가 다시 입원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내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듣자마자 심장이 빠르게 콩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예정일이 두 달이나 남은 아이를 당장 낳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제 겨우 1.5kg 남짓 된 아기는 심폐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인공호흡기가 달린 인큐베이터를 갖춘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온갖 불길한 생각들이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구급차로 옮겨 타고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큰 아이는 처음 타보는 구급차 안에서 신이 났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의 천진함이 어쩐지 애처롭게 느껴졌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병원 스텝들이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는 검사실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는 2시간이 다 되도록 갖가지 검사가 이어졌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 싶을 즈음에 의사가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다행히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니 입원해서 며칠 더 경과를 살펴보자고 했습니다. 또 한번 최악의 상황은 면했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쏟아졌습니다.

이틀 동안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아내가 하던 모든 일들이 제 몫이 되었습니다.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보던 것과는 영 딴판이었습니다. 가끔씩 아내를 도와서 할 때와는 그 수준이 달랐습니다.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건 빛의 속도로 집을 어지럽히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뒷정리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 집안 일이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주말 동안은 완벽한 주부로, 그리고 간병인으로 지내겠노라 다짐했지만 일요일 점심때쯤 되자 슬슬 꾀가 났습니다. 일요일은 자장 라면을 먹어줘야 한다며 대충 끓여먹은 끼니의 잔재를 설거지통에 가득 쌓아둔 채로 빈둥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읽어야 할 책 생각도 나고, 월요일 아침이면 띄워 보내야 할 마음 편지 걱정도 떠올랐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언젠가 보았던 임어당(林語堂)의 글이 기억났습니다. "만약 완벽하게 쓸모 없는 오후를 완벽하게 헛된 방식으로 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아마도 저는 아직 살아가는 방법을 잘 모르는 모양입니다.

저녁 무렵, 빵이 먹고 싶다는 아내를 위해 가을 바람 속으로 나섰습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붉은 해와 모처럼의 산책이 즐거워 팔짝거리는 아이의 웃음 소리, 그리고 주머니에 들어있는 만 원짜리 한 장의 든든함까지, 주변의 온갖 소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가 흘러나왔습니다. 비록 뜻하지 않았던 사고(?)로 생긴 반 쪽짜리 주말이었지만, 그 덕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생긴 여유가 꼭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예정일까지 남은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후딱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11월 중순의 어느 날, 무사히 태어난 아이의 소식을 여러분께 전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 공지사항 ***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들이 "죽은 회사 내가 깨우기"(가제)라는 컨셉으로 책을 쓰고 있습니다. 경기불황, 취업난, 신종플루 등으로 어지러운 이 때에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을 전복하고 활기찬 직장을 내가 만드는 일종의 캠페인의 일환으로 이 책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버킷리스트처럼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 50가지를 독자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에 들어갈 내용 중에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1. 회사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선배들의 무용담이나 전설이 있다면?
2. 회사에서 저지른 어처구니 없는 실수담은?
3. 출퇴근길에 겪었던 기억에 남을만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4. 회사, 동료에게 받은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5. 직장에서 들었던 가장 기분 좋은 말과 기분 나쁜 말은?
6. 월급을 남다르게 써본 추억이 있다면?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간단히 적어서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성심껏 적어 보내주신 분께 구본형 소장님을 포함하여 공저자의 친필싸인이 담긴 책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본 편지에 답장으로 주시거나 또는 오병곤 연구원(kksobg@naver.com
)에게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IP *.189.22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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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9.14 12:05:29 *.66.16.102
음...참 쉽지 않은 시간들이겠지만, 그래서 지나고 나면 더욱 소중한 시간들로 남을거에요.
어쩐지, 선배라기 보다는 종윤아,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가족모두 힘내세요. 밝고 따듯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을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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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5 11:06:30 *.96.12.130
"종윤아, 힘내~" <-- 좋네요.

글에도 썼지만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어요. 그리고 덕분에 주원이랑 실컷 놀았어요. 좋은 소식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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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9.09.14 13:50:07 *.94.198.146
평소 좋은 따뜻한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와 엄마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길 바랍니다. 제 조카는 태어날때 미숙아로 태어나서 태어나기 전부터 산모와 아이가 이래저래 고생을 많이 했는데, 6살인 지금은 우량아가 되었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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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5 11:08:07 *.96.12.130
ㅎㅎ 앨리스님~ 잘 지내시죠? 조카 이야기를 들으니 기운이 나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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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09.14 15:59:03 *.108.48.236
저런!  큰 일이 있었군요.
뜻하지 않은 사건의 와중에 소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를 배워나가는
종윤씨의 모습이 든든하네요.
순산하기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빛의 속도로' 지나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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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5 11:10:44 *.96.12.130
덕분에 아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서 더 친해졌어요. 소소한 일상의 상실만큼 큰 비극이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글을 쓰면서 뒤적거린 인터넷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몇 꼭지 찾아 읽었던 덕에 그런 생각이 더 들었던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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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9.14 21:51:23 *.64.107.166
종윤씨..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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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5 11:11:12 *.96.12.130
네~ 선을 넘지 않고 멈춰서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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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주
2009.09.15 18:05:06 *.94.41.89
안녕하세요.
글 잘 읽어보고 있는 눈팅자입니다.
매일 매일 감동만 받고 가다가 오늘은  같은 경험을 하신 분이 생기신것 같아 잠시 작은 힘내란 희망하나 노아놓고 갈려고 합니다.
저도 다섯살 첫째가 있는데요. 작년에 둘째가 남매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갑자기 쌍둥이에 당황하기도 했는데요. 그래도 하늘의 뜻이다 싶어 낳기로 결정했지요.
그런데 아내가 6개월되면서 부터 조금씩 문제가 생겨서 입원을 했지요. 작은 병원에 가서 1주일정도 입원했다가 호전되어서 집에서 2개월을 지내다가 8개월째에 큰 병원으로 옮겨졌지요. 처음으로 가보는 종합병원에 아내도 저도 정신이 없었는데 호전이 되어 의사가 이정도면 안정기라고 하더라구요.

안정기라고 말한 그날 아내는 이쁜 남매둥이를 낳았습니다.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서 수술을 할 수 밞어 없는 상황이었구요.
요즘 의료기술이 좋아서 1.5kg이상이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은 녀석들 돌이 지나서 잘 걸어다니고 너무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답니다.

너무 걱정 마시구요.
산모에게 용기를 심어주세요.
아이들이 아빠, 엄마가 빨리 보고 싶으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그리고 아이들 폐 숙성 주사가 있는데요. 그걸 꼭 맞아두셔야 한답니다.

용기내시구요.
11월에 건강하게 출산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쌍둥이 아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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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6 17:02:52 *.96.12.130
쌍둥이 아빠님께서 적어주신 글을 아내와 함께 읽고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아내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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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9.09.16 23:09:51 *.9.248.163
오라버니,,,
아가 건강하게 태어날테니,
걱정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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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7 14:43:28 *.96.12.130
그래~ 잘 될 거라 믿어. 고맙다~ 공저 프로젝트는 잘 되가? 이 달 말에 희석이 오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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